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IT(정보기술)업계 전시·박람회에 '언택트(Untact·비대면)'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하반기 삼성전자의 '언팩(신제품 공개 행사)'은 온라인 개최가 기정사실화됐고, 최근 신제품을 출시한 LG전자도 모든 판촉행사를 온라인에서 진행 중이다.
매해 IT업계 신조류를 보여주며 열리던 세계적 초대형 전시회들도 온라인 중심으로 행사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제각각 커다란 부스를 혁신제품으로 치장해 미래 사업방향을 소개하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던 이 업계 전시·박람회 문화 전반에도 '포스트 코로나'라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삼성, 첫 '온라인' 갤럭시 언팩 유력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매년 두 차례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스마트폰 신제품 공개 행사 '갤럭시 언팩'을 올해 하반기에는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것을 유력 검토중이다. 공개일은 오는 8월5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통상 상반기에 '갤럭시S' 시리즈, 하반기에 '갤럭시노트' 시리즈 신제품을 각각 공개해 왔다.
삼성전자는 최근 수 년간 8월께 미국 뉴욕에서 업계 관계자와 미디어 등 수천 명을 초청해 갤럭시노트 시리즈를 공개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규모 현장 모임이 불가능해지면서 온라인 행사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언팩에서는 '갤럭시노트20' 시리즈와 '갤럭시폴드2' 등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지만 곧바로 실물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번 온라인 언팩이 성사되면 삼성전자가 최초로 전략 스마트폰을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사례가 된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번지기 직전인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갤럭시S20' 시리즈 언팩 행사를 가진 바 있다.
이어 예정된 삼성개발자컨퍼런스(SDC) 역시 올해는 온라인으로 여는 쪽에서 가닥이 잡히고 있다. SDC는 삼성전자의 IT·모바일(IM)사업부문의 미래 혁신 기술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초대형 현장 행사다. 첫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폴드'와 두번째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플립'의 시제품을 공개한 게 2018년,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SDC였다.
특히 SDC는 2013년부터 줄곧 10월말~11월초 미국에서 열려 왔는데, 이 나라가 현재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이란 게 변수다. 이 때문에 올해 현장 행사 강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안팎에서 나온다. 일각에서는 가을 이후 기온이 낮아지면 코로나19 바이러스 활동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현장 행사 개최에 더욱 부담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SDC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결정된 사안은 없지만 사업부에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전시·박람회를 여는 것이 사람의 안전문제와 직결되다보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미국은 국내보다도 상황이 심각해 올해 전시·박람회를 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 애플·LG도 행사·판촉 '온라인' 대체
지난 22일 시작해 26일까지 열리는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도 현재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행사는 애플이 세계 2300만여명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아이폰·아이패드·맥 운영체제(OS) 등의 차기 업데이트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자리다. 개발자들이 이에 맞춰 앱을 개발하라고 지침을 잡아주는 행사인데 온라인 개최는 올해가 처음이다.
행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본사에서 열리고 있지만 외부 참가는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다. 애플은 이번 WWDC를 무료로 공개해 전세계 이른바 '앱등이(애플 골수 마니아)'들의 관심을 모으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행사에는 애플이 코로나19로 생산 차질을 빚은 탓에 기대를 모았던 신제품 공개가 빠졌다. 하지만 이날 애플은 올 연말 출시될 맥북·맥PC부터 자체 설계한 칩을 탑재하는 등 '탈(脫) 인텔'을 선언하며 관심을 끌었다.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를 이용해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 수 있는 '디지털 자동차 키' 기능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LG전자도 최근 출시한 전략 스마트폰 'LG벨벳'의 언택트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7일 개최한 신제품 발표 행사도 온라인 패션쇼 형태로 꾸몄다. LG벨벳 색상에 맞춰 의상을 입은 패션 모델들이 등장해 런웨이를 선보였고, '디에디트', '영국남자' 등 유명 유튜버가 신제품을 영상으로 소개했다.
이달에는 LG벨벳의 유럽 진출을 앞두고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에서 각각 온라인 공개행사를 열었다. LG전자 각 법인의 유튜브와 페이스북 채널을 통해 생중계하는 방식이다. 앞서 지난 10일에는 브라질에서 LG 'K시리즈' 온라인 공개행사를 열기도 했다.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통해 제품을 소개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형식이다. 여기에는 약 100여명의 현지 기자들이 참석했다.
LG벨벳은 LG전자가 과거 전성기를 누렸던 '초콜릿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을 목표로 내놓은 새 브랜드의 전략 스마트폰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지만 지속된 스마트폰 사업 부진에 반전 계기를 마련한다며 판촉에 사활을 걸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글로벌 마케팅 활동을 언택트 중심으로 전개할 계획"이라며 "비대면임에도 제품의 특장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해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 IFA·CES도 '현장 행사' 최소화
IT 기업 단독 개최행사가 아닌 세계 IT업계 3대 전시·박람회도 속속 온라인 행사로 전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의 경우 33년만에 처음으로 행사가 전면 취소된 바 있다.
이어 오는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IFA 2020'와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릴 세계 최대 IT박람회 'CES 2021'도 온라인 중심 개최가 현실화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관람객을 제한하고 행사 기간은 단축하는 식이다.
IFA 2020의 경우 하루 최대 1000명만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참여 기업과 미디어 등 사전에 초대한 인원만 현장에 올 수 있다. 통상 일주일간 진행하던 행사 기간도 3일로 줄였다. CES 2021 역시 온라인 행사의 비중을 높이는 한편, 오프라인 행사는 전반적으로 축소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향후 전시·박람회의 형태가 비대면 방식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지속되고 있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어서다. 사회 전반에 '언택트' 문화가 스며들면서 전시 형태도 온라인으로 바뀌어 갈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예측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장 접촉 없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 때 진행하는 오프라인 행사들이 고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소비 욕구를 진작하는 효과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전시 형태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효과적인 온라인 마케팅 방식에 대해서도 심오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