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은 매년 가을 주요 대기업집단의 재무안정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라는 돌발 변수로 사업적 변동성이 증폭했다. 그룹별 사업수익성이나 재무안정성도 편차가 커졌다. 시계가 불투명해진 상황 속에 신평사 보고서를 토대로 삼성·현대차·SK·LG·포스코·한화·GS·한진 등 주요 그룹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쟁점을 짚어본다.[편집자]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덮친 올 상반기 포스코는 창사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2분기 사상 첫 분기 적자(별도재무제표 기준 영업손실)를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신용평가 3사는 포스코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영업실적은 악화했지만 재무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고 봐서다.
포스코에 관건은 철강 시장이 언제 회복되느냐다. 하지만 신평사들은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확산되고 중국의 물량 공세도 누그러들지 않아 단기간 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 사상 첫 적자에도 재무구조 안정적
올 상반기 포스코그룹의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2.5% 감소한 28조2674억원에 머물렀다. 영업이익은 8730억원으로 1년 전보다 61.6% 급감했다. 영업이익률은 3.1%로 반토막 났다. 코로나19 여파로 포스코그룹의 핵심사업인 철강부문이 지난 2분기 적자를 내면서다. 다행인 점은 실적 부진이 재무건전성 악화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용평가 3사는 포스코그룹의 실적이 악화됐지만 재무안전성은 여전히 우수하다고 공통적으로 분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영업실적 위축에도 불구하고 잉여현금흐름(FCF)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 상반기 포스코그룹의 잉여현금흐름은 1조502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4.6% 증가했다.
FCF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영업이익+감가상각비+무형자산상각비)에서 퇴직금·법인세 지급, 영업활동을 위한 운전자본투자, 설비투자, 연구개발비투자 등을 뺀 현금지표다. 실질적인 가처분현금으로, 외부에서 기업의 '기초체력'을 판단할 때나 기업이 배당금을 책정할 때 근거로 쓰인다.
악조건 속에서 포스코그룹의 FCF가 오히려 증가한 것은 투자를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포스코는 3년간 2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중기 전략을 발표했지만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기평은 "2019년에만 6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투자지출은 2조8000억원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올해 6조원을 투자하겠다던 연초의 투자계획도 지난 4월 5조2000억원, 지난 7월 4조7000억원으로 축소하고 있다. '불황형 잉여현금흐름 흑자'인 셈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회사채를 통해 선제적으로 3조3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며 "이 덕분에 현금흐름이 좋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 이후엔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 운전자본 감축을 통해 현금유출을 최소화했다"고 덧붙였다.
◇ 해외 철강법인 적자는 부담
안정적 현금흐름은 우수한 재무건전성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말 포스코그룹의 부채비율은 72.5%, 차입금의존도는 30.3% 수준이다. 보통 부채비율은 200% 이하, 차입금의존도는 30% 이하 때 기업이 안정적이라 본다.
한기평은 "2019년 이후 영업수익성 저하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이어지면서 순차입금이 9조원 내외로 유지되고 있다"며 "주요 재무안정성 지표도 매우 우수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철강 수요 회복 시점이다. 신평사들은 빠르게 회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점차 분절화되고 있는 교역환경과 중국 철강산업의 공급 확대기조를 감안할 때 철강부문의 실적이 단기간 내에 2018년 이전 수준을 회복하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철강 시장 회복이 느려질 경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스코의 해외 철강법인이 받는 압박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등지에 생산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들은 작년 4분기부터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독보적 시장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국내 시장과 달리 해외에서는 시장 지배력이 낮은 데다 지난해부터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신평은 "향후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해외 철강법인의 실적 회복 여부가 그룹 철강부문 이익 안정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