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 수 없을까.' 원자재를 사고 파는 기업과 투자자들이 공통으로 지닌 고민이다. LPG(액화석유가스) 유통업체 SK가스도 LPG 미래 가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LPG 국제 공급가에 따라 재판매 가격이 시시각각 책정되기 때문이다. 도입가를 판매가보다 낮추는 안정적 유통 구조가 필수다.
SK가스는 선물(先物) 시장에서 거래되는 LPG 파생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통상 원자재 유통기업에 선물 등 파생상품은 위험회피(헤지) 용도로 쓰이지만 올해 SK가스는 파생상품 거래로 특히나 톡톡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SK가스는 올해 3분기 매출(이하 연결재무제표 기준) 9566억원, 영업이익 502억원의 실적을 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매출은 10.1%, 영업이익은 25.7% 줄었다. 매출은 2015년 2분기 9637억원 이후 5년 만에 분기 기준 1조원을 밑돌았고, 영업이익은 지난 1분기 863억원을 찍은 이래 두 분기 연속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5.2%로 지난 1분기 7%를 기록한 뒤 연중 최저다.
전반적으로 부진한 성적표지만, 재무제표의 영업이익 밑단에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당기순이익이 716억원으로 전년 동기 210억원보다 약 3.4배 늘며 영업이익을 웃돈 것이다.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258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1541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이유는 파생상품에 있다. 이 회사는 올해 LPG 파생상품 거래·평가 손익이 3분기까지 총 1181억원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같은 항목에서 1229억원 적자였다. 파생상품 거래·평가 손익 합산액은 올해 분기별로 ▲1분기 419억원 ▲2분기 492억원 ▲3분기 270억원이었다. 지난해 매 분기 적자를 봐 연간 1448억원의 손실을 본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성과다.
SK가스는 LPG 선물 거래로 미래 가격 변동 위험성을 회피한다. 파생상품을 통해 LPG 구매금액을 해당 시기 공급가격보다 낮게, 혹은 판매가격을 높게 설정하면 실제 거래가 이뤄질 때 그만큼 차익이 생긴다.
이 회사는 파생상품 거래 목적으로 영국 런던 대륙간거래소, 미국 뉴욕상업거래소 등과 '페이퍼 스왑'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일정 기간 고정된 계약금액을 설정한 뒤 실제 거래가 이뤄질 때 차액을 정산받는 구조"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올해는 LPG 가격이 예년과 달리 하절기에도 이상 급등했다. LPG 가격은 올해 4월 배럴당 230달러로 저점을 찍은 뒤 ▲5월 340달러 ▲6월 350달러 ▲7월 360달러 ▲8월 365달러 ▲9월 365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공급처인 미국에서 허리케인이 발생해 시장 물량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 덕에 SK가스의 파생상품 전략이 빛을 봤다. SK가스가 올해 선물 계약을 통해 구매한 LPG 물량은 1226만톤으로 판매 물량 1098만톤보다 더 많다. SK가스는 "헤지용 파생상품 중 일부를 조기 실현하면서 트레이딩 이익이 발생했고, 작년보다 LPG가격이 오르면서 평가이익도 나타났다"며 "여름에도 LPG가격이 높게 유지돼 '마진 픽스(margin-fix, 손익고정) 목적의 파생상품 관련 이익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까지 평가손실을 봤던 파생상품을 올해 현금화하며 발생한 실물이익도 이 회사 영업이익에 더해졌다.
파생상품을 통한 SK가스의 LPG 거래 규모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올해만 벌써 LPG 2324만톤을 선물로 거래했다. 10년 전인 2010년 연간 59만톤을 선물로 거래했던 것과 비교해 약 40배 늘어난 규모다.SK가스 관계자는 "에너지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옳은 사업적 방향이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