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申丑)년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한 재계 주요 대기업집단 총수들은 '달라진 새해'를 기대하고, 또 기약했다. 기업인들의 신년사에는 매년 '변화'와 '혁신'이 열쇳말로 담겼지만, 올해는 정말 작년과는 달랐으면 하는 바람과 반드시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유독 강하게 표현됐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라는 초대형 경영 변수 탓이다. 이를 떨쳐내고 올해를 재도약하는 한해로 만들겠다는 스스로의 각오와 임직원들에 대한 당부가 최고경영자(CEO)들의 신년사에 절박하게 담겼다.
대부분 총수들은 비대면으로 새해 인사를 전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연휴 중이었던 새해 첫날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기후 변화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같은 대재난은 사회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리고 이로 인한 사회 문제로부터 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다"며 "사회와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SK그룹은 코로나 상황을 고려해 매년 열던 대면 신년회를 취소했다. 대신 그 예산을 결식 취약계층 지원에 보태기로 했다. 최 회장은 "SK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만 잘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허락한 기회와 응원 덕분"이라며 "기업이 받은 혜택과 격려에 보답하는 일에는 서툴고 부족했던 점을 반성하면서 기업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작년에 이어 신년사를 담은 디지털 영상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그는 "2021년에는 LG의 고객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해 고객에 대한 세밀한 이해와 공감, 집요한 마음으로 고객 감동을 완성해 LG의 팬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취임 이후 첫 2019년 신년사에서 'LG만의 고객 가치'를, 2020년에는 '고객의 페인 포인트에 집중할 것'을 당부한 데 이어서다.
구 회장은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더욱 개인화되고 소비 패턴도 훨씬 빠르게 변하면서 고객 안에 숨겨진 마음을 읽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이제는 고객을 더 세밀히 이해하고 마음 속 열망을 찾아, 이것을 현실로 만들어 고객 감동을 키워갈 때"라고 역설했다. LG 관계자는 "구 대표만의 '고객 가치 실천'에 대한 경영 철학이 매해 구체화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작년 코로나19 속에서도 그룹 기업가치가 상승하는 성과를 이룬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2021년은 '신성장동력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 지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친환경 ▲미래기술 ▲사업경쟁력 영역에서 성과를 가시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작년 10월 회장에 오른 그는 "2021년을 미래 성장을 가름 짓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삼아 새로운 시대의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우리의 마음과 역량이 합쳐진다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임직원을 독려했다. 그는 지난 3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어난 협력업체 직원의 사망 사고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도를 표하고, 품질과 안전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첫 업무일인 4일 별도 시무식이나 신년사 없이 경기도 평택 반도체 2공장을 찾는 것으로 2021년 경영 행보를 시작했다. 평택 2공장은 D램, 차세대 V낸드, 초미세 파운드리 제품까지 생산하는 첨단 복합 생산라인이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한 데 이어, 올해부터 시작할 파운드리 생산을 위한 설비 반입식이 이날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반입식 참석에 이어 반도체부문 사장단과 중장기 전략을 점검했다. 그는 "2021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삼성으로 도약하자. 함께 하면 미래를 활짝 열 수 있다. 삼성전자와 협력회사,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신화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달 말 4년 가까이 이어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올해를 전기(轉機)로 삼자는 각오는 총수들마다 예외가 없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단절과 고립'의 시대에도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는 도전은 계속되어야한다"며 "앞으로의 2~3년은 산업 전반의 지형이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간이 되겠지만 위기 극복에 앞장서고 지속가능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가장 한화다운 길'을 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GS그룹 허태수 회장은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온라인은 신년 모임을 열어 직접 경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디지털 역량 강화와 친환경 경영으로 신사업 발굴에 매진할 것"을 강조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우리만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역설했다.
또 LS그룹 구자열 회장은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다시 매어 본연의 소리를 되찾는다는 뜻의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서로를 격려해주자"며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미래선도형 신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현금 창출'을 최우선 순위로 놓고 경영할 것을 강조했다. 작년말 법적 리스크를 해소한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고객의 믿음과 사랑"이라며 "사회에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