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마트폰 시장 변화가 심상치 않다. 미국 정부 제재로 중국 화웨이 기세가 꺾인 게 발단이다.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도 양강체제를 지키지 못했다. 샤오미를 비롯해 다른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세를 키우고 있어서다. 14억 인구의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에서는 강력한 교체 선수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애플은 물량으로도 삼성을 위협하고 있다. 삼성의 판매량 1위 수성도 위태롭다. 격변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현황과 전망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중국의 대표선수 '교체'
"샤오미의 다음 목표는 삼성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는 올해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중국 샤오미(小米)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샤오미는 지난 2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애플의 점유율을 추월했다. 10년 넘게 시장 1위를 기록 중인 삼성전자와의 격차도 점점 줄이고 있다. 카날리스의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조사에서 샤오미의 점유율은 17%로, 애플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83% 성장한 수준이다. 삼성전자와의 점유율 격차도 2%포인트로 좁혔다.
샤오미가 처음 애플을 제친 건 지난해 4분기였다.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동기 대비 31.5% 증가한 4340만대였다. 하지만 올 초 아이폰12를 기대 이상으로 흥행시킨 애플은 올 1분기 시장 점유율 15%로 2위를 탈환했다. 샤오미는 전년동기 대비 69.1% 증가한 4940만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해, 점유율 14%로 뒤를 바짝 쫓았다. 1위 삼성전자를 뒤쫓는 2·3위가 작년 말부터 엎치락뒤치락 한 셈이다.
샤오미의 성장은 중국 밖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이룬 것이란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중국 스마트폰 기업은 14억 인구를 앞세운 중국 내수 시장의 비중이 큰 편이다. 하지만 샤오미의 경우 중국 시장보다는 인도나 유럽 시장에서의 성장세가 더 강했다.
샤오미는 올 1분기 실적발표에서 전 세계 100여 개 시장 중 △스페인 △러시아 △폴란드 △말레이시아 △인도 등 12곳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인도에서는 특유의 가성비 높은 제품을 내세워 15개 분기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화웨이의 점유율을 빠르게 흡수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1분기만 해도 유럽 스마트폰 시장에서 21%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애플(20%)과 시장 2위를 놓고 겨뤘다. 하지만 점유율은 급격하게 낮아졌다. 지난해 4분기는 5%까지 떨어졌고, 올해 1분기는 상위 5위권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에 비해 점유율 한 자릿수를 유지하던 샤오미는 작년 1분기 점유율 10%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는 17%로 화웨이(12%)의 점유율을 따라잡았다. 올해 1분기는 점유율 19%로 안정적인 3위에 자리 잡으며 선두권과의 격차도 좁히고 있다.
화웨이의 급추락
샤오미의 선전 이면에는 같은 중국 출신 화웨이(華爲)의 추락이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미국 정부의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점유율이 급락했다. 미국은 화웨이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현재 화웨이 스마트폰은 미국의 기술·서비스에 접근이 불가능하다. 즉, 구글의 유튜브나 크롬 등의 서비스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OS)인 '하모니'를 개발해 스마트폰에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쉽게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 올해 1분기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에서는 작년 3월에 출시된 P30 시리즈 3종이 보급 대수 상위 5위 안에 모두 들었다. 소비자들은 하모니 OS 기반의 최신작 P40보다 구글 서비스가 가능한 전작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화웨이는 미국 장비와 기술로 생산한 반도체도 구매하지 못해 생산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현재 화웨이는 플래그십 기기 생산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부품 부족에 대응하고 있는데, 올해 1분기 플래그십(최고사양 모델) 판매량도 700만대로 떨어졌다. 화웨이의 플래그십 판매량이 1000만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6년 4분기 이후 약 4년 만이다.
오는 29일 공개 예정인 플래그십 스마트폰 P50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도 낮을 수밖에 없다. P50 시리즈에도 자체 OS인 하모니가 탑재될 전망이어서다. 또 화웨이는 매년 3월 플래그십 신제품을 공개했는데, 올해는 4개월가량 연기됐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제재뿐 아니라 반도체 수급 부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한다.
화웨이의 시장 지배력은 올해 더욱 쪼그라들 전망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화웨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는 4%로 낮아졌다. 지난해 2분기 20%를 기록하며 삼성전자(20%)를 위협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도 화웨이의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이 지난해 1억7000만대에서 73.5% 감소한 4500만대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년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은 3위였던 중국 대표 화웨이가 샤오미, 오포, 비보 등에 밀려 7위까지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중국의 힘
하지만 중국 기업의 빈자리는 결국 중국 기업들이 채우고 있다. 중국에서의 집안싸움도 치열하다. 샤오미가 중국 외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편, 중국 본토에서는 중국의 BBK일렉트로닉스(부부가오, 步步高)의 관계사들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BBK는 오포, 비보, 리얼미 등의 여러 스마트폰 제조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오포와 원플러스가 합병해 덩치를 더 키웠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 결과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떨어진 화웨이의 점유율은 BBK 관계사에 몰리는 양상이다. 화웨이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29%에서 올해 1분기 15%로 줄어들었는데, 이 기간 사이 비보와 오포의 점유율은 각각 7%포인트, 8%포인트 상승했다. 압도적 시장 1위였던 화웨이를 몰아내고 이제는 비보와 오포가 1위를 다투는 것이다.
브랜드가 갈려 있지만 BBK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전 중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집계한 올 1분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BBK의 비중은 △오포 11% △비보 10% △ 리얼미 4%를 합해 25%가 넘는다. 1위인 삼성전자(22%)보다도 높은 점유율이어서 사실상 업계 1위인 셈이다.
BBK 중에서도 오포그룹만 떼어놓고 봐도 비중이 상당하다. 카운터포인트의 5월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오포와 자회사(원플러스, 리얼미 등)의 합산 점유율은 16%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2위다. 근소하지만 애플(15%)과 샤오미(14%)보다 앞선 수준이다.
박진 카운터포인트 애널리스트는 "오포 그룹은 프리미엄 원플러스와 함께 접근성이 높은 다중 브랜드 전략을 내걸어 5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2위를 차지했다"며 "오포 제품군은 화웨이 이후 중국 시장을 지배할 차기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BBK의 이런 위세는 샤오미가 올 2분기 글로벌 2위를 기록했음에도 호들갑스럽지 않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에서 "샤오미는 앞으로도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스마트폰 2위 브랜드 자리를 굳건히 다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오포와 비보를 조심스럽게 의식한 표현이란 게 업계 해석이다.
다른 중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샤오미가 타격을 입을 개연성이 커서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고급형(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샤오미와 오포, 리얼미 등 중국 기업들은 모두 중저가폰을 중심으로 시장 지배력을 넓히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