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후 행보는 무엇보다 삼성의 신뢰 회복에 맞춰질 공산이 크다. 이 부회장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가석방 승인이 '경제상황'에 대한 고려를 명분으로 했지만 정경유착, 사법정의 등을 앞에 둔 사회적 반발 여론 역시 만만치 않아서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총수 구속으로 훼손된 그룹 이미지를 '착한 삼성'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 이 부회장 복귀 후 가장 큰 숙제란 얘기다.
'차가운 시선' 경영활동 재개에 부담
지난 9일 법무부 가석방 발표 직후, 시민단체와 노동계, 정치권 등에서는 이 부회장에 '특혜'가 주어진 것이라며 반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경우 "삼성 재벌 총수만을 위한 가석방 특혜를 이번에 또 받은 셈"이라며 "사법 정의는 땅에 떨어졌으며 법치주의는 역사적 퇴행을 맞이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특히 현 정부와 밀접하게 호흡하는 여당에서도 이번 가석방 조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대변인 논평을 통해서는 '법무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일부 대선 주자는 "곱빼기 사법 특혜", "누가 봐도 특혜"라며 정부 결정을 비난했다. 지지층 상당수가 가석방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23일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 부회장의 광복절 가석방에 대해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해야 한다'는 응답은 66.6%, '특혜 소지가 있으니 하면 안 된다'는 28.2%로 각각 집계됐다. 그러나 지지 정당별로 응답자를 재분류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가석방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1.8%로 찬성(40.5%)보다 우세했다.
이같은 부정적 시각은 이 부회장 향후 활동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과오를 씻어내고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아 수행하는 게 그에게도 급선무인 이유다.
'백신 조달'·'준법 강화'로 여론 달랠 듯
시민사회에 대한 기여 중 이 부회장이 가장 기대를 받으면서도 반향도 이끌 수 있는 의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확보'가 꼽힌다. 여당의 논평에서도 "삼성이 백신 확보와 반도체 문제 해결 등에 있어 더욱 적극적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된 바 있다.
특히 삼성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의 위탁을 받아 수억회 분의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를 국내 사용으로 돌리는 협상에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기대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역당국은 현재 방미대표단을 꾸려 모더나와 협상할 예정인데, 삼성바이오에서 이달말부터 시범 생산하는 물량 일부를 국내에서 사용토록 하는 안이 여기서 다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된 후 준법을 더욱 강화하는 경영활동으로도 삼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을 실을 전망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 요구로 지난해 3월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구속된 이후 3일 만에 내놓은 첫 옥중메시지에서도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부당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재판에 미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재범 방지 기조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준법 강화에 대한 내부적 조치 필요성도 높다. 삼성 준감위는 오는 17일 정기회의를 예정하고 있는데 이 부회장이 여기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작년 5월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는데, 이번에도 준감위에서 삼성의 신뢰 회복, 준법 의지 공표를 위해 그에게 어떤 요구를 할지도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