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잠시 관련 분야에 눈을 돌렸던 제약업계가 다시 기본으로 회귀하고 있다. 한동안 감염질환 관련 영역에 집중됐던 제약바이오업체들의 기술거래가 다시 항암제 등 원천기술 영역으로 돌아오는 추세다. 특히 중추신경계(CNS) 분야의 기술거래가 두드러진다.
이미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면서 후발주자들이 코로나19 이전의 파이프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코로나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중단한 기업들이 줄을 이는 가운데 항암제와 CNS 기술도입에 나선 기업들이 쏟아졌다.
제약바이오 기술거래 다시 '항암제·중추신경계'로
올 한 해 전 세계 제약바이오업계의 기술거래는 감염질환 분야가 가장 활발했다. 대형 제약사는 물론 바이오벤처 등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앞다퉈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뛰어들면서다.
이베스트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감염질환 관련 파이프라인의 기술거래는 코로나19의 심각성이 커졌던 지난해 1분기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후 지난해 2분기엔 최고 건수를 기록, 기술거래 영역에서 압도적 1위를 지켜온 항암제 분야를 앞질렀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이전 파이프라인 기술거래가 제자리를 찾고 있다. 감염질환 분야의 기술거래는 지난 10월 급격하게 감소했다. 반면 항암제와 CNS 분야 등 원천기술 파이프라인의 기술거래는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기술거래에 변화가 일고 있는 이유는 후발 기업들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포기하고 자체 파이프라인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시장은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이 선점한 만큼 기존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내에서만 20개 이상의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나섰지만 성과는 부진한 상태다. 조건부 허가를 획득한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를 제외하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국산 치료제는 현재까지 없다. GC녹십자, 부광약품, 일양약품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포기했다.
반대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막대한 현금을 확보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기술을 사들이거나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 중이다. 바이오벤처 모더나의 경우 메신저 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서 올 1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 77억 달러(약 9조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추신경계 계열 신약 재조명"…투자·기술거래 활발
특히 주목할 점은 CNS 분야의 기술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 4분기에만 파킨슨병, 편두통, 조현병 등 CNS 관련 기술거래는 5건을 넘어섰다. 미국 제약 기업 수퍼너스 파마슈티컬은 지난 10월 파킨슨병 치료제 확보를 위해 아다마스 파마슈티컬을 4억 달러(약 4776억원)에 인수했다. 지난달엔 화이자가 바이오헤븐의 편두통 치료제를 인수했고, 미국 바이오 기업 뉴로크린 바이오사이언스는 일본 소세이 헵타레스와 신경정신질환 신약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도 올 4분기 항암제와 CNS 파이프라인 강화를 위한 투자와 기술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SK바이오팜은 지난달 중국 현지에 CNS 제약사 '이그니스 테라퓨틱스'를 설립, 1억8000만달러(약 218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주목을 받았다. SK바이오팜이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의 중국 진출을 위해서다. 엑스코프리는 아시아, 유럽, 북미 시장 등으로 빠르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또 정밀 표적치료제 신약개발 전문기업 보로노이는 지난달 고형암 치료제를 미국 피라미드바이오사이언스에 1조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한미약품도 지난달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제 후보물질을 나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에 기술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체코 바이오 기업 소티오바이오텍과 1조2127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암세포에 정확하게 도달해 공격하는 약물기술인 ADC에 관한 계약이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코로나19 이후 현금이 쌓이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CNS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CNS 분야는 미충족 의료 수요(unmet needs)가 높아 코로나19 이전 가장 주목받았던 분야다. 또 지난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으로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조건부 승인하면서 CNS 계열 신약이 재조명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하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항암제 분야 다음으로 거래가 많았던 CNS 분야가 다시 2위를 찾는 모습"이라며 "2년간의 팬데믹 이후 CNS 관련 거래가 처음으로 감염병 분야 거래를 앞지르며 제약바이오 딜이 코로나19 이전 위치로 돌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