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해운사 '머스크'(Maersk)는 최근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투자해 아시아 육상물류사업자 LF로지스틱스를 인수했다. 머스크는 지난달 항공 화물 업체도 인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육-해-공 운송의 연결고리를 강화해 사업 경쟁력을 더욱 극대화하려는 행보다.
반면,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은 역대급 실적을 내면서도 투자는 언감생심인 상황이다. 채권단 관리 속에서 과감한 투자는 부담스러운데다, 조만간 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 관리 체제가 변경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바다-하늘-땅 연결하려는 해운업 공룡 '머스크'
글로벌 해운업계가 해상운임 상승 영향으로 역대급 호황을 맞으면서 과감한 투자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머스크다. 이 회사는 최근 LF로지스틱스 인수를 공식 발표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물류 사업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홍콩을 기반으로 성장한 LF로지스틱스는 14개국에 물류센터 223곳을 보유했으며, 지난해 매출액은 13억달러(1조5000억원) 수준이다. 인수 대금 규모인 30억달러는 머스크의 지난 3분기 해상운송 영업이익(53억달러, 약 6조2900억원)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머스크는 LF로지스틱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류 사업자를 인수하면서 사업 경쟁력을 높여왔다. 이에 따라 전략적 협력 사례까지 잇따라 내놓고 있다.
실제로 머스크는 전세계 21개국에 진출한 독일계 항공 물류 업체 세나토 인터내셔널을 지난달 인수했고, 최근에는 세계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의 항공·해상 물류사업을 내년부터 4년간 운영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해운업에서 번 돈을 과감하게 재투자해 경쟁력을 더욱 확보하려는 행보가 성과로 곧장 이어지는 사례로 풀이된다. 머스크는 지난 3분기 해상운송 사업 부문 매출액이 131억달러(15조5400억원)로 전년 71억달러에서 곱절로 껑충 뛰는 등 역대급 실적을 내놓고 있다.
HMM은 '눈치만'
머스크가 아시아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면, 국내 최대 해운사 HMM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해운조사기관 피어스에 따르면 아시아→미주서안 항로의 컨테이너선 물동량 점유율은 HMM이 2019년 7.3%에서 지난 3분기 누적기준 6%로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머스크는 6.4%에서 7.7%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해운업계의 투자 소식이 시장 점유율에 반영되려면 시간이 많이 흘러야 할 것"이라면서도 "미주 서안 노선의 적체가 심각하게 이어지면서 운임이 올라가고 사업자 수도 예전보다 크게 늘어나 기존 선박만 갖고 있는 곳은 점유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HMM 역시 글로벌 해운업 호황 덕에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이 회사 지난 3분기 매출액은 4조원이 넘고, 영업이익은 2조2700억원에 달했다. 영업익의 경우 전년보다 8배 이상 치솟은 것이다. 증권업계는 HMM의 4분기 실적 전망도 밝게 보고, 내년도 견조한 실적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HMM은 이에 따라 중장기 성장전략도 수립하고는 있지만, 과감한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 관리 체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산은은 HMM 지분 20.69%를 보유했고, 해양진흥공사는 19.96%를 갖고 있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사채(CB)를 포함하면 이들의 HMM 지분 합계는 71.68%에 달한다.
채권단은 그러나 경쟁력 강화의 주체는 HMM이라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건 산은이 아니라 HMM이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채권단 관리주체에서 산은이 빠지고 해양진흥공사가 남는다. HMM 입장에선 관리 주체가 바뀌는 상황을 준비하고 또 적응하는 것이 신사업보단 급선무인 셈이다. 미래에 다른 주체에 매각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사정도 존재한다.
HMM 관계자는 "현재는 해운업 이외의 육상 물류 등 사업 확대에 대해선 딱히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며 "환경 변화에 따라 시기적으로 더 중요한 일을 우선 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