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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바꾼 HMM, 어디로 갈까?

  • 2022.02.23(수) 12:20

새 대표에 김경배 전 현대글로비스 사장 내정
'매각 신호탄' 분석…인수비용·전환사채 등 숙제

최근 HMM의 대표이사 교체는 2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배재훈 대표가 연임하지 못한 점, 신임 대표로 현대차그룹 출신 김경배 대표가 낙점됐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이 2가지를 바탕으로 HMM의 채권단이 현대차그룹 등을 상대로 매각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HMM의 새 주인 찾기는 갈 길이 멀다. 최근 HMM의 기업가치가 치솟아 적잖은 인수 비용이 필요한 데다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해운업황이 언제 다시 침체될지 예측할 수 없어서다.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등 채권단이 보유한 전환사채(CB)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HMM 대표 전격 교체

/그래픽=비즈니스워치

HMM 채권단은 최근 경영추천위원회를 열고 김경배 전 현대글로비스 사장을 신임 HMM 대표로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오는 3월 주주총회 승인 이후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이번 신임 대표 인사를 두고 채권단이 HMM 매각 준비 단계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배 대표 대신 현대차그룹 출신 김 대표를 택하면서다.

배 대표는 2019년 HMM 대표로 선임된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끌었다. 지난해 1년 연임된 데 이어 이번에도 한 차례 더 임기가 연장될 가능성도 열려있었다. 하지만 채권단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대표를 교체했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이번에 대표를 교체한 건 내부적으로 HMM이 어느 정도 경영 정상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라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HMM 매각 가능성에 대해 언론에 계속 발언하는 것을 보면 이런 예상에 더욱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김 내정자가 현대차그룹 출신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HMM의 인수 후보로 꾸준히 올라왔다. 김 내정자는 1990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10년간 보좌했다. 이후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비서실장 역할도 수행했다.

해운사를 경영한 이력도 눈에 띈다. 김 내정자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현대글로비스 사장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김 내정자는 현대글로비스 매출을 3조1927억원에서 16조3583억원으로 5배 넘게 끌어올렸다. 2018년부터는 현대위아로 자리를 옮겼다. 업계 관계자는 "HMM 채권단이 김 내정자를 신임 대표로 내정한 건 현대글로비스 등에서 보인 경영 성과도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분과 실리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HMM 인수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M&A여서다.

HMM은 과거 현대그룹의 기둥이었던 현대상선이 전신이다. 2000년 '왕자의 난'을 통해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으로 갈라 선 뒤 HMM은 현대그룹이 이끌어오다 2016년 채권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 현대그룹과 신경전 끝에 그룹의 '종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며 적통성을 이어받았다. 재계에서 현대차그룹에 HMM 인수 '명분'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중인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실리도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HMM을 합병하게 되면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현재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그룹 지배 강화를 위해선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19.99%)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글로비스의 기업 가치가 높아질수록 정 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 주식도 많아지는 셈이다.  ▷관련기사: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무산…지배구조 어찌할꼬(2월 8일)

사업 시너지도 기대된다. 현재 현대글로비스는 국내에서 생산한 현대차와 기아의 신차와 중고차를 해외에 실어 나르는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노력을 하곤 있지만 여전히 현대차와 기아에서 나오는 매출 비중이 높은 상황이다. 현대글로비스의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의 연결 매출액 60.6%가 현대차(35.1%)와 기아(25.5%)에서 나온다. 

반면 HMM의 주요 매출의 93.7%가 컨테이너선에서 나온다. 현대글로비스와 HMM이 합병을 하게 되면 두 기업 모두 한 쪽에 편중돼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현대차, 기아 등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비판을 항상 받아왔다"며 "만약 HMM과 인수합병을 한다면 이런 내부거래에 대한 눈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설만 자꾸 도는 이유

/사진=HMM 제공.

현대차그룹은 아직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인수 의지는 본격적인 HMM 인수합병(M&A)전이 막이 올라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6년 채권단이 HMM 인수를 타진하자 "인수 의지가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현대차는 2020년 오랫동안 보유했던 HMM 소액 지분도 모두 처분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외에도 포스코, CJ그룹, SM그룹 등이 인수 후보군에 올라왔지만 실제적인 움직임을 보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특히 유력 인수 후보 중 하나였던 포스코는 지난해 "산은으로부터 HMM 인수에 대한 어떤 제안이나 제의를 받은 적이 없었고 내부적으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이 HMM의 인수에 망설이는 이유는 높은 인수 비용과 해운업황의 불확실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인수 후보군에 올랐던 기업 관계자는 "해운업이라는 사업 자체가 워낙 경제 상황에 흐름을 많이 타는 업종이고 불확실성이 워낙 커 인수에 나서기 쉽지 않다"며 "현재는 해운업이 호황이라곤 하지만 언제 다시 침체기에 진입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엔 HMM 기업가치가 상당히 올라 금액적으로도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현재 산은(20.69%)과 해양진흥공사(19.96%)가 HMM의 지분 40%를 넘게 보유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HMM의 인수는 인수 기업이 산은의 HMM 지분 20.69%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방식대로 인수가 진행될 경우 HMM 인수에 필요한 금액은 약 3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관계자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3조원을 인수 비용으로 내는 게 쉽지는 않다"며 "그동안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가 HMM 인수 유력 후보로 떠올랐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 중인 약 2조7000억원의 전환사채(CB)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이다. 만약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받겠다고 요구하면 HMM의 지분 84%를 넘게 산은(36.02%)과 해양진흥공사(48.29%)가 보유하게 된다. 주식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기업들이 쉽사리 인수에 나서지 않는 이유다.

익명을 요청한 한 관계자는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면 HMM을 인수할 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인수에 나서게 될 기업 주체와 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 간의 대의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산업은행 등이 전환사채와 관련한 향후 계획과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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