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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사태 후 투자자 보호 어디까지 왔나

  • 2022.09.13(화) 08:00

주요 거래소, 공동협의체 구성
금융위는 디지털자산업법 발의

지난 5월 가상자산(코인) 가격이 줄줄이 폭락한 '루나 사태' 이후 업계에선 투자자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각 가상자산이 어떤 위험성을 지녔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이다. 특히 '묻지마 투자'를 막기 위해 충분한 투자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러자 주요 거래소들은 협의체를 만들어 가상자산 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제2의 루나 사태'를 막기 위한 24시간 대응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의 정의와 사업 범위, 의무 사항 등을 규정한 법인 업권법을 만들 계획이다. 업권법이 만들어지면 가상자산 산업이 법 테두리 안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루나 사태로 떠오른 투자자 보호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업계 안팎으로 높아진 것은 루나 사태 때문이다. 지난 5월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USD는 불안정한 운영 방식과 금리 인상으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이 더해지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루나 사태가 일어나기 한달 전인 4월, 루나 가격은 개당 110달러를 웃돌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루나 사태로 60달러대로 반토막이 난 뒤 0.0001달러로 급락하며 사실상 가격 가치를 잃었다. 이 기간 동안 사라진 루나의 시가 총액은 약 50조원이다. 루나의 가격은 지금도 0.0004달러대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루나는 한때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가총액이 4위에 오를 정도로 규모가 큰 코인이었다. 문제는 테라의 불안정한 운영 방식에도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투자자들이 루나를 사들였다는 점이다. 테라USD는 개당 가격이 1달러로 고정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일반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지급 준비금을 갖추는 식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추후 투자자들이 코인을 대거 매도할 경우를 대비해 그에 상응하는 자산을 보관하는 것이다. 하지만 테라USD는 별도 지급준비금을 갖추지 않고,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질 때마다 투자자들이 보유한 테라USD를 루나 1달러어치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시장에 풀린 물량을 줄였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는 것이다.

문제는 테라USD를 루나로 바꾸려는 이들이 늘어나려면 루나의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야 한다는 점이다. 루나의 가격이 낮아지면 테라USD의 가격도 개당 1달러로 고정되지 않고, 결국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두 코인의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안정한 운영 방식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루나를 사들였고, 결국 루나 사태와 함께 투자자 피해가 이어졌다.

거래소, 협의체로 공동대응

루나 사태 이후 '5대 거래소'라고 불리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는 닥사(DAXA)라는 공동 협의체를 만들어 대대적인 투자자 보호에 나섰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정보 비대칭 해소다. 거래소들은 각 가상자산에 대한 설명서 격인 '백서'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업비트와 코인원 등은 기존에 영어로 작성된 가상자산 백서를 번역해 한글로 제공 중이다. 다른 거래소들 역시 올해 10월 안으로 가상자산 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투자 관련 교육 영상을 시청한 투자자들만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도 생겨났다. 올해 6월 국회에서 협의체 운영 계획을 발표한 박준상 고팍스 부대표는 "가상자산 투자 관련 교육 동영상을 만들어 신규 투자자들이 이를 반드시 시청해야만 거래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2023년 1월까지 투자자 교육 영상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거래소들은 코인을 상장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동 평가 항목과 심사 가이드라인도 만들 계획이다. 운영이 불안정한 코인을 상장하지 않기 위해 기술성, 사업성, 안정성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미 상장한 코인들은 보유자 수, 보유 물량, 거래량 등을 모니터링하고 위험 가능성이 감지됐을 때 이를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당시 함께 운영 계획을 밝힌 강명구 코인원 부대표는 "기존에 거래를 지원하던 가상자산도 주기적으로 위험 평가를 실시해 거래 유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투자 주의 환기를 위한 가칭 '가상자산 경고제'를 도입해 유통량과 가격 변동이 큰 종목, 불공정 거래 행위로 시장 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경고하는 등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업권법 제정 나서

정부도 투자자 보호와 가상자산 업계 진흥을 위한 업권법 제정에 나섰다.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를 관리할 법적인 근거가 없어 투자자 보호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가상자산과 관련된 법은 2020년 국회를 통과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전부다. 하지만 자금세탁 등 금융 범죄를 목표로 만들어진 법이다보니 업권법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업권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들고 가상자산 시장의 근간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상자산을 증권형 코인과 비증권형 코인으로 나눠 각각 다른 법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증권형 코인은 부동산, 명품, 채권 등 실물자산을 연동한 코인을 말한다. 금융위는 증권형 코인을 증권상품으로 보고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예정이다. 반대로 비증권형 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결제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코인을 말한다. 이 코인엔 새로 마련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적용한다.

눈길을 끄는 건 금융위가 유럽연합의 '미카' 법과 일본의 관련 법 등을 참고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들겠다고 밝힌 점이다. 미카는 유럽연합이 만든 세계 첫 가상자산 기본법으로 코인의 발행 조건과 거래소의 의무, 사업자의 공시 의무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에도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가 마련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일본의 가상자산 관련 법을 거론한 점에도 관심이 높다. 일본은 금융청이 허가한 가상자산만 자국 거래소에 상장할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신뢰하기 어려운 코인을 금융당국에서 분별하는 것이다.

업계에선 투자자 보호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이번 금융위의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업권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하지만 루나 사태 이후 정부에서도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는 만큼, 이번 금융위 법안이 사실상 가상자산업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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