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금융위)가 가상자산(코인)업법 제정에 나선다. 그동안 가상자산 업계엔 이렇다 할 법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규제라곤 자금세탁 등 금융범죄를 막기 위해 만든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가상자산의 정의와 사업자의 의무를 짧게 설명한 것이 전부다. 업권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된 이유다.
금융위의 가상자산업법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위가 전부터 가상자산을 성격에 따라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누고, 각각 다르게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큰 가닥은 잡혀가는 모양새다.
금융위 법안에 관심 쏠리는 이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달 대통령 업무 보고를 통해 가상자산 업계의 책임있는 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시장의 근간이 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오래전부터 가상자산업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20년 3월 특금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가상자산이 처음 제도권 안에 들어올 때도, 일각에선 제대로 된 업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특금법을 대표 발의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법이 통과된 직후 업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상자산 관련 법안만 해도 김 의원이 발의한 '가상자산법'을 포함해 13개에 달한다.
기존에 발의된 법안들이 많지만 금융위의 디지털자산기본법안에 기대가 모이는 이유는 정부의 기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이후 국정과제로 해당 법 제정을 꼽았던 만큼, 탄력을 받아 제정까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증권형·비증권형 나눈다
법안은 가상자산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눠 규제할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이다. 금융위는 예전부터 코인을 두 종류로 분리해 각각 다르게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코인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나누는 이유는 코인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코인은 금융자산의 일종인 비증권형으로 보고, 부동산이나 명품 등에 조각투자하는 데 사용되는 코인은 사실상 증권상품의 성격을 보이기 때문에 증권형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증권형 코인엔 자본시장법을, 비증권형 코인엔 새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적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코인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구분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이를 두고 앞으로 많은 논쟁이 오갈 전망이다.
어떤 규정 참고할까
코인 분류 기준뿐만 아니라 디지털자산기본법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를 두고도 관심이 많다. 금융위원장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유럽연합 미카(MiCA·Markets in Crypto Assets)법과 일본 관련 법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맞게 보완해 안을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해외 관련 법을 참고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이 거론한 미카는 올해 6월 유럽연합에서 만든 세계 첫 가상자산 기본법이다. 가상자산의 정의, 발행 조건, 거래소 규제 등을 담은 법이다. 눈에 띄는 점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공시 의무 규정을 포함한 것이다. 그동안 코인 투자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해 '묻지마 투자'를 하던 행태를 바로잡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이 일본의 관련 법을 함께 거론하면서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도입될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일본은 금융청의 허가를 받은 가상자산만 거래소에 상장할 수 있는 코인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시행 중이다. 금융당국의 심사를 받은 코인만 일본 안에서 사고팔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금융당국이 허락한 코인만 업비트, 빗썸 등에 상장할 수 있는 식이다.
한편 업계에선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 중인 가상자산 규제안의 영향도 크게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국제 가상자산 규제의 틀이 될 전망이다. 해당 규제안은 올해 10월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