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사업을 이끌던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이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삼성전자측은 '일신 상의 이유'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사장이 최근까지 활발한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갑작스러운 사의가 의아하다는게 업계 반응이다.
삼성의 사장급 인사가 절차상 뚜렷한 후임자 선정없이 단행됐다는 점에서 이 사장 사임을 둘러싼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8일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이 사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후임 생활가전사업부장으로 현 대표이사이자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을 겸직 위촉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생활가전사업부장은 당분간 후임자 없이 한 부회장이 겸임하게 된다.
이 사장은 1986년부터 생활가전 분야에서만 36년가량 근무했으며 냉장고개발그룹장과 생활가전 개발팀장 등을 역임한 '가전 전문가'다.
그는 무풍 에어컨과 비스포크 시리즈 등 신개념 프리미엄 가전제품 개발을 주도해 지난 2020년 1월 생활가전사업부장(부사장)으로 부임했으며, 그해 말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내에서 생활가전 출신으로 사장 자리까지 오른 것은 이 사장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의 승진은 회사 안팎으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인사 발표에서 이 사장 승진과 관련해 "오늘날의 생활가전 역사를 일궈낸 산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라며 "이번 사장 승진을 통해 가전사업의 글로벌 1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관련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연말 정기 인사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생활가전 사업 책임자를 갑작스럽게 교체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삼성전자는 보통 12월초에 정기 사장단 인사를 시작으로 조직 개편과 부사장 이하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이 사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외부 행사 전면에 나서는 등 활발한 경영 행보를 보였다. 이번 인사 발표 닷새 전인 지난 13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전자 개발자 행사(테크 포럼)에 한종희 부회장과 함께 나란히 참석, 회사의 비전과 사업에 대해 공유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사장이 일신상 사유로 물러났다고 하지만 삼성전자 같이 인사 시스템이 체계화된 조직에서 정기 인사를 앞두고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뚜렷한 후임자 없이 교체한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세탁기 품질 이슈 등으로 부담을 느껴 스스로 물러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비스포크 그랑데 AI' 드럼 세탁기 유리문이 파손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바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공식 사과하고 해당 모델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사전 점검과 무상 도어 교체 서비스를 제공했다. 대상이 된 드럼세탁기는 9만여대에 달했다.
제품 품질 이슈를 사퇴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설명하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품질 문제 때문이라면 정기인사에서 물러나는게 일반적"이라며 "이 사장은 승진한지 2년밖에 안된 신임 사장급인데 이번 인사로 대표이사 보좌역을 맡아 경영자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 사임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개인적인 사유라는 것 외에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당초 20일로 예정했던 IFA 출장자 모임도 취소했다. IFA는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데, 전시회를 동행 취재했던 기자들과 삼성전자 관계자간 모임이었다. 이날 모임에는 한종희 부회장을 비롯해 주요 경영진들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이 사장 사임 등을 계기로 생활가전사업부 내 무언가 큰 변동이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