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리튬을 확보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다. 배터리 업계를 비롯 완성차업계, 소재업계까지 리튬 확보전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광물로 이른바 ‘하얀 석유’로 불린다. 지난 1년간 가격이 4~5배 상승한 리튬의 수요는 오는 2030년경 현재 대비 5배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튬 확보전은 가격 변동성에 따른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2030년경 리튬 수요 5배 급증할 것
지난해 반도체 공급난과 고금리 등 영향으로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이 줄어든 반면 전기차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향후 전기자 시장의 확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각 기업들은 주요 자재의 원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당시 세계 2위 리튬 생산업체인 칠레 SQM으로부터 2021년부터 2029년까지 탄산리튬과 수산화리튬 5만5000t을 확보했다. 지난해에는 △유럽 리튬 생산업체 독일 벌칸에너지로부터 수산화리튬 4만5000t △호주 라이온타운로부터 수산화리튬 원재료 리튬정광 70만톤t △미국 광물업체 컴퍼스미네랄로부터 탄산 수산화리튬 생산량 중 40% 등을 확보한 바 있다.
SK온은 지난해 10월 호주 자원개발 업체 레이크리소스의 지분 10%를 확보하고, 친환경 고순도 리튬 총 23만t을 장기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칠레 SQM 및 호주 글로벌 리튬 등과 연이어 계약을 맺었다.
최근 몇 년 간 이들 국내 주요 전기차 배터리업체가 확보한 리튬 공급규모는 100만t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성능 전기차 1600만대 배터리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LG화학도 지난 17일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과 총 20만톤 규모의 ‘리튬정광’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리튬정광은 리튬 광석을 가공해 농축한 고순도 광물로, 배터리 핵심원료인 수산화 리튬을 추출할 수 있다.
국내 기업이 북미산 리튬정광을 확보한 것은 LG화학이 최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에 따른 세제 혜택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배터리 핵심 소재의 지역 편중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이달 호주 업체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미국에서 점토 리튬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아르헨티나 염호 개발 프로젝트 등을 기반으로 오는 2030년까지 30만t의 리튬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배터리용 리튬 수요는 지난해 52만9000톤(t)에서 2030년 273만9000t 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금액으로는 132억1600만달러(약 17조1500억원)에서 821억6400만달러(약 106조6000억원)로 6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원자재 가격 변동성 잡는 게 목적
국내 기업들이 리튬 확보에 속도를 올리는 주요인 중 하나는 리튬 공급망을 다변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자재들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리튬 국제가격이 ‘kg당 위안’으로 표기되는 까닭도 거대한 중국 시장 영향이 크다. 다만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양상이 이어지면서 공급망 위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도입된 IRA도 리튬 확보전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IRA는 북미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서 채굴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배터리에 한해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올해는 전체 광물 중 40% 이상을 충족해야 세액공제가 적용되는데, 2027년엔 80% 이상을 넘어야 한다. 때문에 북미 내 원재료 확보부터 공장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반을 갖추는 전략에 최근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가격’이 꼽힌다. 최근 14주간 리튬 국제가격이 30% 이상 하락하기도 했으나, 중장기적 측면에선 우상향 가능성이 커 리튬 선점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의 특성 중 하나가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고 때문에 업계가 공을 들이는 부분은 원가를 최대한 낮춰 이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에 있다”며 “리튬은 가격 변동성이 큰데 배터리 가격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커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중장기적으로 원자재 변동성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업계가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리튬 국제가격은 최근 3년간 10배 이상 치솟았다. 지난해 11월엔 kg당 581.5위안(약 10만9000원)으로 2020년 대비 최대 15배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다. 1t에 1억원이 넘는 가격이다. 신고가를 올리던 리튬 가격은 지난해 말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383.5위안까지 내려왔다. 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중국에서 전기차 수요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 탓이 컸다.
“가격 하락세는 단기…중장기적 우상향”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 CATL가 올해 하반기부터 전략적 협력 관계인 완성차 고객사를 대상으로 리튬 가격 할인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점도 주효했다. 통상 배터리 가격은 탄산리튬 원가에 따라 변동되나, 추후 3년간 CATL은 탄산리튬 현재 시가의 절반 수준인 t당 20만 위안에 고정해 배터리 가격을 산정하기로 했다. 적용 대상은 중국 자동차업체들인 니오, 리오토 등 4개사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CATL이 중국 내수 시장을 대상으로 리튬 가격 및 배터리 가격을 고정 제안했다는 점에서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중국 전기차 수요가 재개방에 따라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증권가도 리튬 가격의 하락세는 단기에 그치고, 그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보조금 종료에 따라 단기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주요 업체들의 대규모 증설로 리튬 수급이 둔화되는 시기여서 리튬 가격이 약보합 기조를 보이는 것”이라며 “전기차 성장의 중장기적 성장 기조와 미국 IRA,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s Act) 등 보호 무역주의 기조가 리튬 가격 하단을 지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리튬을 둘러싼 확보전은 글로벌 완성차업체를 넘어 국가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8일 세계 10위 리튬 매장국 멕시코는 리튬 국유화를 선언했고, 세계 1위 리튬 매장국 칠레는 내달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아르헨티나도 리튬을 ‘전략광물’로 지정해 기업들의 채굴권을 정지시켰다. 볼리비아는 2008년 리튬을 국유화했다.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 등 3개국엔 전 세계 리튬 중 53%가 매장돼 있어 ‘리튬 삼각지대’로 불린다. 아울러 테슬라와 GM, 토요타도 리튬 공장 건설 및 광산업체 지분 인수를 통해 리튬 확보·공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