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업체들이 선방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에 비상등이 켜졌다. 중국업체가 앞세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성장세가 주춤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도 중국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K-배터리 성장세 주춤
2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ESS(에너지저장시스템) 시장을 합친 배터리 판매 실적은 812GWh(기가와트시)로 전년 대비 86% 성장했다. 이 기간 전기차 시장은 690GWh로 76% 성장한 데 비해, 전기차뿐만 아니라 ESS 분야에서도 중국 시장이 급성장하며 ESS 시장이 177% 고성장했다.
1위는 작년에 이어 중국 CATL이 차지했다. 전년 대비 145% 성장하며 시장점유율이 40%까지 올랐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2위인 LG에너지솔루션의 성장률은 19%에 그쳤다.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19%에서 12%로 떨어지며 CATL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5, 6위를 차지한 삼성SDI와 SK온도 중국업체에 비하면 성장 폭이 낮았다. 삼성SDI는 전년 대비 67%, SK온은 83% 성장한 반면 중국업체인 △CALB(140%) △궈시안(Guoxuan, 156%) △EVE에너지(260%) △신왕다(Sunwoda, 267%) 등은 모두 세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작년 중국 외 전기차 시장의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탓이다. SNE리서치 측은 "한국 3사의 주력 시장인 유럽 전기차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한 가운데, 중국 배터리 기업 및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업체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ESS 시장의 경우 신재생 발전과 연계한 안전성 기반의 저출력 시장이 확대되면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업체들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SNE리서치는 "2020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을 기록했지만 2021년부터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며 북미 시장에서도 LFP 배터리가 대세가 됐다"며 "향후에도 LFP 배터리로의 전환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배터리 소재 생산량 절반 이상
중국업체들의 힘은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도 드러났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4대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은 전체 배터리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양극재는 4대 소재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어 중요도가 높다. 양극재 비용에 리튬, 코발트, 니켈 등 원자재 메탈 가격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배터리 소재 생산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작년 생산량 기준 4대 소재에 대한 중국의 생산 점유율은 △양극재 60% △음극재 84% △전해액 72% △분리막 68%에 달했다.
소재별로 봐도 중국업체의 비중이 높았다. 양극재의 경우 삼원계 NCM(니켈·코발트·망간)은 한국의 에코프로가 1위를 차지했지만, LFP은 위넝(Yuneung), 다이나노닉(Dynanonic), 궈시안, BTR 등 중국업체들이 상위권을 장악했다. 음극재 역시 중국 주요 공급사인 BTR, 즈천과기(Zichen), 샨샨(Shanshan)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리막 시장도 CATL과 BYD 등 주요 배터리사에 분리막을 공급하는 중국의 상해에너지(SEMCORP)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미국 IRA를 계기로 한국 배터리 소재사에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SNE리서치는 "급속히 확대가 예상되는 미국, 유럽 시장에서 배터리 업체와 4대 소재 업체의 동반 진출 또는 합작회사 형태의 진출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글로벌 자동차 OEM과의 직접 계약 형식도 등장하고 있다"며 "향후 이 시장을 선점하는 소재 업체들이 업계 구도를 새로이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