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나은수 기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땐 도크(선박건조장)가 텅텅 비어있었어요. 불과 몇 년 만에 이렇게 변했네요. 울산 조선소에도 봄이 온 것 같아요"
지난 22일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만난 한 직원의 말이다. 그가 입사했던 시기는 국내 조선업이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을 때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시황은 급변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물동량이 증가해 선박 주문이 몰렸다. 환경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현대중공업의 강점인 친환경 선박 수요까지 급증했다. 이제는 일감 부족이 아닌 일손 부족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활기 찾은 울산조선소
이날 울산조선소에 들어서자 자재를 옮기며 발생하는 기계음과 갖가지 소음이 귀를 때렸다. 용접 불빛들도 곳곳에서 번쩍였다. 도크 주변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근로자들이 조선소의 활기를 더했다.
이날 버스로 이동하면서 본 9개의 도크는 모두 선박들로 차 있었다. 현대중공업의 야드 면적은 울산조선소, 군산조선소 등을 포함해 약 636만m²(약 192만평)에 달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크기다.
이영덕 현대중공업 상무는 "현재 야드에 깔려있는 게 47척이고 그 중 배 모양으로 작업을 진행 중인 건 24척 정도 된다"며 "블록부터 선박 모양의 형태를 갖춘 것까지 포함하면 50척 정도 동시에 건조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총 38척의 선박을 인도했다. 한달에 배 3척을 건조한 셈이다. 올해는 46척(특수선 2척 포함)을 건조 및 인도할 계획이다.
특히 도크에 차있는 친환경 선박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전체 수주 잔량은 155척으로 그중 LNG(액화천연가스)선이 53척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이 현재까지 건조한 LNG선이 총 95척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2년간 주문이 몰린 셈이다.
이만수 현대중공업 프로젝트 매니저는 "LNG선은 친환경 선박이자 이윤이 많이 남는 고부가가치 선종"이라며 "현대중공업은 이 선박을 가장 많이 만드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조선사들의 LNG선 건조 능력은 다른 조선사에 비해 월등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국내 조선사는 친환경 선박 수주를 거의 석권했다.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지만 국내 조선사들은 꾸준한 연구개발을 통해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 매니저는 "현대중공업은 계속 엄격해지는 국제 규격에 발 맞춰 관련 기술 개발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며 "중국도 따라오곤 있지만 아직은 (기술력 측면에서)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LNG 운반선 앞에 섰을 땐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워낙 커 선체를 한눈에 담지 못할 정도다. 이날 본 LNG 운반선의 제원은 길이 299미터(m), 높이 35.5m다. 선체 길이는 63빌딩 높이(250m)보다 길고 선체 높이는 아파트 14층 크기에 달했다.
승선도 쉽지 않았다. 승선을 위해선 배 옆에 설치된 간이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거나 계단을 이용해야했다. LNG선의 크기를 체감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 승선했는데 어느덧 땀으로 옷이 젖을 정도였다.
이날 승선한 LNG운반선은 현대중공업이 2020년 하반기 수주한 뒤, 2021년 12월 건조에 착수한 선박이다. 통상 LNG선은 건조부터 인도까지 1년 6개월이 소요된다. LNG선은 다른 선종 대비 설계 과정이 더 복잡해 건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 컨테이너선의 경우, 건조부터 인도까지 약 9개월이 소요된다.
이 매니저는 "이 배는 17만4000입방미터(㎥) LNG선으로 오는 6월 인도될 예정"이라며 "이 선박에 들어가는 LNG 양은 우리나라에서 한나절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고 말했다.
이어 "LNG 화물창은 극저온(영하 163도)과 고압력을 견뎌야하기 때문에 많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며 "특히 화물창을 국산화하기 위한 정부, 기업의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젠 인력이 부족하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향후 3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해 289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4000억원대 가까운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속되는 주문에 고부가가치 선박을 골라 수주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표정은 밝지만은 못하다. 다른 조선사와 마찬가지로 울산조선소 역시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일손 부족에 공정이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당근책을 내놓고 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외국인 채용 확대에 나서며 인력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HD현대 조선 계열사 3사는 약 8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추가 채용할 예정이다. 내국인은 직고용 형태로 인력 수혈에 나선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이 제도를 확 바꿔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며 "내국인 증가를 위해 직영으로 많이 채용하려고 하며 올해도 200~300명 채용할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