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 2년 만이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을 다국적 제약사(빅파마)와 어깨를 겨루는 혁신 신약 개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사업 추진과 대형 인수합병(M&A)도 진두지휘하겠다고 했다.
셀트리온그룹은 29일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기업의 미래 비전과 사업 전략을 공유했다. 앞서 셀트리온그룹 상장 3사(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는 지난 28일 열린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서 회장을 사내이사 겸 이사회 공동의장으로 공식 선임했다. 서 회장은 2021년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룹을 둘러싼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현직에 복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날 서 회장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오너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복귀를 결정했다"면서 "다시 돌아온 이상 웬만한 파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배를 만들어 놓고 떠나겠다"고 강조했다.
①바이오시밀러→신약 개발 기업으로
먼저 서 회장은 향후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60%, 신약 40% 수준으로 매출 구조를 바꿔 나가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셀트리온은 기존 바이오의약품보다 효능과 편의성을 개선한 바이오베터(바이오의약품 개량신약)를 앞세워 신약 사업에 진출해왔다. 여기서 나아가 새로운 플랫폼을 적용한 혁신 신약 개발 비중을 높이겠다는 설명이다.
서 회장은 "일차적으로 올 10월 미국 규제 당국으로부터 램시마SC(피하주사 제형)를 신약으로 허가받고 연내 약가 등재까지 마무리할 것"이라며 "이외에도 안구에 직접 투여해야 하는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를 제형을 바꾼 바이오베터로 개발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신규 플랫폼을 확보해 혁신 신약 개발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면서 "2024년부터는 이중항체 신약 6개, 항암 신약 4개 등 총 10개 신약 임상을 개시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실제 셀트리온은 지난 1월 영국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기업 익수다 테라퓨틱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개발 중인 ADC 관련 파이프라인은 6개가 넘는다. 서 회장에 따르면 이중항체 신약 후보물질 발굴은 곧 마무리될 예정이다. 미국 라니테라퓨틱스와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경구용(먹는) 항체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트라이링크바이오테크놀로지와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도 개발 중이다. 회사는 오는 6월 말까지 mRNA 플랫폼을 내재화할 계획이다.
②디지털 헬스케어·의약외품 신사업 추진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약외품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은 서 회장의 장남 서진석 이사회 의장을 중심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서 회장은 "시대 변화에 맞춰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비대면 진료에 대응할 체계를 만들 것"이라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어느 정도 기초 연구를 마쳤고 그룹사 합병 이후 별도 연구소를 세울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는 지난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의 일환으로 과민대장증후군 환자의 질환을 관리해주는 스마트폰 앱을 출시한 바 있다.
의약외품 사업의 경우 기존 의약품 사업을 통해 구축한 해외 직판망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서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미국 병원에서 수술포나 의사 가운 등 의약외품을 일회용으로 바꿨고 해당 시장 규모가 3조원 정도"라며 "해외 시장에서 셀트리온 브랜드 입지를 공고히 다졌고 직판망까지 갖춘 만큼 의약외품 사업으로 매출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③3-4조 재원 M&A에 투자
대규모 M&A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서 회장은 "하나의 신약을 보유한 기업보다는 신약 개발을 위한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을 우선순위에 놓고 검토하고 있다"면서 "문어발식 경영이 아닌 전후방 사업을 중심으로 미국, 인도, 한국 등 여러 국가의 기업을 관찰 중"이라고 했다.
특히 서 회장은 지난해부터 미국 월가의 파트너와 대규모 M&A를 준비해왔다고 했다. 그는 "상반기 내 인수 대상 기업이 10개로 압축될 것"이라며 "현금성 자산, 채권, 개인적으로 보유한 주식 스와핑 등을 활용해 4조~5조원 재원으로 M&A에 나설 생각"이라고 했다. 상황에 따라 M&A 규모는 확대될 수 있지만 M&A를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셀트리온이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5512억원이다. 또 셀트리온은 301만2503주, 셀트리온헬스케어는 313만2331주의 자사주를 보유 중이다. 시장 가치(29일 기준)로 환산하면 각각 4534억원, 1873억원 규모다. 자사주는 M&A의 투자 재원으로 활용 가능하다. 여기에 서 회장이 보유한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11.19%의 가치는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대규모 M&A를 위한 실탄은 충분하다는 의미다.
이날 서 회장은 셀트리온그룹 3사 합병에 대한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다. 셀트리온그룹은 지난 2020년부터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분식회계 논란으로 지연돼왔다. 분식회계 논란은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회계 처리 기준 위반에 대해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서 회장은 "3사 합병 관련 행정절차는 7월 마무리된다"면서 "금융시장이 안정화되면 구체적인 마일스톤을 제시한 뒤 이후부터 최대 4개월 내 합병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