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 2분기 3조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며 3개 분기 동안 8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매출이 증가하고 적자 폭이 전 분기 대비 크게 개선되며 실적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인공지능(AI)용 HBM(고대역폭 메모리)3와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등 수요가 늘면서 실적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상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 낸드 추가 감산도 결정했다.
3개 분기 연속 적자…누적 손실 '8.2조원'
26일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영업손실 2조8821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0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뒤, 올 1분기에도 3조4023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폭을 키운 바 있다. 3개 분기 누적적자가 8조1828억원에 달한다.
다만 적자 폭은 감소세에 진입했다. 전 분기 대비 적자 규모는 5202억원 감소했고, 영업손실률도 66.9%에서 39.4%로 줄었다. 전사적인 비용 절감 노력을 지속하는 가운데 재고평가손실이 감소하면서 영업손실 폭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김우현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이날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분기에는 낸드 가격이 지속 하락함에 따라 약 5000억원 수준의 재고평가손실을 인식했다"면서도 "전 분기 대비 크게 줄어든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 1조원 가량의 재고평가손실을 인식한 바 있다. 재고평가손실은 기업의 제품·원재료 등 재고자산의 취득원가가 현재 시가보다 높을 때 예상되는 손실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는 매출원가로 비용 처리하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된다.
SK하이닉스는 하반기에는 추가로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재고평가손실을 선반영해 향후 재고가 감소하고 메모리 가격이 안정권에 접어들면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김우현 CFO는 "하반기에는 재고 감소 가속화와 가격 안정화가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규모는 미미할 것"이라며 "일부 제품의 경우 환입도 발생 가능하며, 이 경우 손익의 회복에는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2분기 매출은 7조3059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3.6% 증가했다. 전 분기 대비 D램과 낸드 판매량이 늘었다. 특히 D램의 평균판매가격(ASP)이 상승해 매출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PC, 스마트폰 시장 약세로 DDR4 등 일반 D램 가격은 하락세였지만, AI 서버에 들어가는 높은 가격의 고사양 제품 판매 증가로 D램 전체 ASP가 1분기보다 높아진 것이다. 챗GPT를 중심으로 한 생성형 AI 시장 확대로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HBM3와 DDR5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김우현 CFO는 "HBM 제품을 포함한 그래픽 D램 매출은 그동안 D램 매출의 한 자릿수 비중을 차지했지만, 지난 4분기 10%를 넘어선 이후 빠르게 증가해 2분기에는 2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AI 시장 성장 따라간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에도 AI 메모리 수요 강세가 지속되고, 메모리 기업들의 감산 효과도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우현 CFO는 "하반기는 모바일 신제품 출시 등에 따라 상반기 대비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 측면에서도 감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수급 환경이 더욱 개선될 것"이라며 "AI향 서버 시장은 연평균 30% 성장해 전체 서버 수요는 연평균 한 자릿수 후반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려 실적 개선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AI용 메모리 HBM, 고성능 D램 DDR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만큼, AI 기반 메모리 시장에서의 선도적 입지를 지속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DDR5 128GB 이상 고용량 서버 모듈과 HBM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성장하며 내년까지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재고 감소 속도가 더딘 낸드 제품의 감산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추가 감산을 통해 재고 정상화 시기를 앞당긴다는 복안이다.
김우현 CFO는 "메모리 수요는 2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높아진 재고 수준을 정상화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며 "특히 낸드는 D램에 비해 업계의 재고 수준이 더 높고 수익성도 낮아 5~10% 수준의 추가 감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올해 연결기준 투자금액을 지난해 대비 50% 축소하는 기존 계획도 유지한다. 제한된 투자 규모 내에서도 올해 수요 성장을 주도할 HBM3, DDR5에 필요한 생산능력(CAPA) 확보를 위해 생산성 향상, 장비 납기 단축과 투자 절감 노력은 지속한다.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는 재무상태도 개선될 전망이다. 2분기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은 30조81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2조500억원 증가했다. 차입금 비율은 54%, 순차입금 비율은 41%로 전 분기 47%, 37% 대비 상승했다.
김우현 CFO는 "연초에 선제적 자금조달로 자원을 확보했고, 2분기부터는 매출이 증가하면서 투자 등 현금 지출 규모는 제한적"이라며 "하반기에는 현금흐름이 지속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낸드플래시 반도체 세계 2위 업체인 일본의 키옥시아와 4위인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의 합병 논의에 대해서는 "아직 합병과 관련해 구체적인 조건이 확인된 바가 없다"며 "양사 합병이 키옥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해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의 직접 주주는 아니지만, 키옥시아의 주요 주주인 사모펀드의 핵심 투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