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의 주력인 IT용 부품 사업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과 손을 잡았지만 이들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다. 삼성전기는 IT 부품 비중을 낮추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전장 부품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IT 부진 길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기의 주요 매출처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6.3%(1조5399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32.2%보다 4.1%P(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삼성전기가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한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원인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부진이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대한 수주 비중을 높였다. 실제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지난 2021년 상반기 26.3%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수요가 대폭 감소했고, 중국 내수 경기 침체까지 이어지면서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부진도 지속됐다. 이에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의존도는 올해 1분기 41%를 기록하는 등 다시 증가했다.
이는 삼성전기의 주력 제품인 MLCC(적층세라믹콘덴서)와 카메라모듈, 반도체 패키지 기판 등이 대부분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부품인 탓이다. 결국 매출 대부분을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나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에선 당분간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의존도를 낮추긴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전방 IT 수요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여서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중국 스마트폰 수요가 쉽게 회복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어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의존도는 현재 수준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가시적인 회복세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부품 업체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장서 미래 찾는다
삼성전기는 좀처럼 수요 회복이 되지 않고 있는 IT 부품 위주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전장용 부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래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도 IT 대신 전장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장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전기차·자율주행이 삼성전기에 있어서 기회 요인이다"라며 전장이라는 성장 파도에 올라타 자동차 부품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기 컴포넌트 사업부에서 전장용 MLCC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는 MLCC 핵심 경쟁력인 원료와 설비를 내재화했고, IT용 MLCC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장용에서도 점유율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며 "올해 자율주행 및 전기자동차 생산 증가로 삼성전기의 전장용 MLCC 비중은 10% 수준에서 올해 21%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만 90%가 넘는 컴포넌트 사업부의 MLCC 의존도는 고민거리다. 이에 대해 삼성전기는 파워인덕터를 '제2의 MLCC'로 키워 높은 MLCC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파워인덕터는 배터리에서 발생한 전력(파워)을 반도체가 필요로 하는 전력으로 변환시키고 전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핵심 전자부품이다.
삼성전기는 지난 7월 전장용 파워인덕터 양산에 나섰다. 자동차에 한 대엔 스마트폰보다 2배 이상 많은 파워인덕터가 사용된다. 전기차·자율주행 등 수요가 늘어나면서 오는 2030년엔 자동차에 필요한 파워인덕터 탑재 수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양산을 시작한 '커플드(Coupled)' 파워인덕터도 향후엔 차량용 반도체용으로도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커플드 파워인덕터는 두개의 코일을 하나로 결합해 기존 제품보다 절연 및 저항값 등 전기적 특성이 우수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삼성전기는 현재는 성능이 높은 IT용만 양산하지만 미래 자율주행 기술이 더 고도화·보편화된다면 전장용 커플드 파워인덕터도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기의 주력인 MLCC 외에도 카메라모듈 등 광학솔루션 분야도 전장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삼성전기는 미국 완성차 업체와 자율주행용 카메라모듈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삼성전기는 업체명과 수주규모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상대 업체가 테슬라로 추정하고 있다.
전장 부품의 수주 확대로 삼성전기 컴포넌트·광학솔루션 사업부의 공장 가동률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컴포넌트 사업부와 광학솔루션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각각 64%, 66%의 가동률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말 대비 6%P, 7%P 증가한 수준이다.
삼성전기는 점차 공장 가동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원택 삼성전기 전략마케팅팀 부사장은 지난 7월 열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전화회의)에서 "전장용과 서버용 MLCC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공장 가동률 역시 전반적으로 오를 것이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