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김민성 기자] "지난해 삼성전기 패키지사업 매출 2조원 중 1조2500억원을 세종사업장이 담당했습니다"
삼성전기 세종사업장에서 만난 임승용 삼성전기 패키지세종제조팀장(부사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임 부사장의 말처럼 세종사업장은 1991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삼성전기 실적의 중심역할을 해왔다.
지금껏 세종사업장을 대표하는 제품은 패키지기판이다. 패키지기판은 여러 부품 간 전기 신호가 전달될 수 있도록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가 인쇄된 기판를 말한다. 반도체에 전류가 흐를 수 있도록 일종의 도로 역할을 담당한다. 이 밖에도 외부 충격과 오염, 습도로부터 고가의 반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세종사업장은 패키지기판 중에서도 반도체 FCCSP(Flip-Chip Chip Scale Package) 기판 생산에 특화됐다. FCCSP란 반도체 고밀도화에 대응하기 위해 범프로 칩을 실장하는 플립칩본딩 기술을 사용한 기판을 말한다. 플립칩본딩(Flip Chip bonding) 방식은 금선으로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와이어본딩(Wire bonding) 방식 대비 전기저항이 작고 속도가 빠르며, 작은 폼팩터 구현이 가능하다.
FCCSP는 반도체 칩의 크기와 거의 동일하다. 반도체와 기판 사이 전기적 신호 이동 경로가 짧아 높은 성능과 낮은 전력 소모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덕분에 FCCSP는 주로 스마트폰 AP용 반도체 칩에 사용된다.
패키지기판 제조 공정 'A to Z' 살펴보니
이날 세종사업장에선 반도체 패키지기판이 제작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판도체 패키지기판은 회로 배선을 구현하는 전공정과 표면처리를 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엔 △회로 형성 △적층 △도금 공정 등이 있고, 후공정으론 SR(Solder Resist) 공정이 있다. 기자들에게는 노광공정을 제외한 대부분 공정이 공개됐다.
우선 회로 형성 공정을 통해 기판 위에 고객사의 설계대로 회로를 구성해야 한다. 푸른색 필름 형태인 포토레지스트(Photo Resist·감광제)을 기판에 얇게 펴바른다. 이 필름은 특정 파장에만 반응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필름을 펴바른 기판은 클린룸 안으로 이동하게 된다. 클린룸 안에선 노광 공정이 진행된다. 노광 공정은 빛을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 위에 설계된 회로 패턴을 복사해 내는 공정이다.
우선 '마스크'라고 불리는 유리판에 미리 컴퓨터로 고객사가 요청한 회로패턴을 설계해둔다. 이후 포토레지스트가 도포된 기판 위에 마스크를 올려 레이저를 쬐면 사진을 찍듯 회로가 웨이퍼 위에 남는다. 노광 공정은 클린룸 내에서 진행되는 탓에 실제 공정 모습은 살펴볼 수 없었다.
적층 공정에선 회로 형성이 끝난 핵심 반도체용 기판에 위아래로 기판을 붙여가며 여러 층을 만든다. 층과 층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도록 절연층을 겹쳐 쌓은 후 일정 온도와 압력을 가한다.
적층 공정은 삼성전기의 기술력의 핵심이다. 최근 패키지 전체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반도체를 한 기판에 묶는 경우가 늘면서 패키지기판의 층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기판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는 적층 기술과 임베딩(Embedding·수동 소자를 기판 사이에 내장하는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국내 기판 업체 중 유일하게 임베딩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이 회사는 세종사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바탕으로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용 FCCSP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적층공정 다음으론 도금 공정을 볼 수 있었다. 도금 공정은 적층된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레이저 드릴로 비아(Via)라고 불리는 구멍을 뚫는 과정이다. 각 층간 전기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Via에 금속으로 배선을 형성해 연결한다.
이후엔 SR 공정을 통해 기판에 절연물질을 입힌다. 이 절연물질은 초록색으로 이뤄져 있다. 흔히 반도체하면 생각나는 초록색 기판은 SR공정을 통해 입혀진 초록색 절연잉크가 도포된 모습이다. 초록색 절연물질은 회로의 손상을 막고 반도체 기판의 성능 저하를 막는 역할을 한다.
세종사업장 내 모든 공정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대부분 원활하게 진행됐다. 실제 공장 안에서 근무 중인 직원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대신 모든 공정의 가동 현황이나 수율 등은 모니터링룸에서 모두 점검이 가능했다.
실제 삼성전기 공장 입구 근처엔 모든 공정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선 공장 내 온도나 습도, 클린룸 내 먼지나 파티클(오염물질) 상태가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각 공정마다 초록색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정상 가동 중이라는 의미다. 삼성전기에 따르면 곳곳의 센서를 통해 30초마다 공정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이 있을 경우 화면에 바로 표시된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모니터링룸에서 온도나 습도, 클린룸 상태 등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다"며 "공장 내 온도나 습도가 일정하지 않거나 클린룸에 파티클이 일정 수준 이상 있을 경우 기판이 오염되거나 전기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준비도 한창
"뒤쪽을 보시면 건물 공사 현장이 보이시죠? 세종사업장 내에 기존보다 한세대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신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세종사업장 1·2공장 건물 뒤로 건축자재가 분주히 운반되고 있었다. 내년 5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신공장은 현재 철근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삼성전기는 세종사업장 신공장에서 기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제품을 개발·생산하고 신규 성장동력을 확보하게다는 구상이다.
최근 반도체 패키징은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초미세화 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필요로 한다. 특히 새로운 반도체 적층 방식인 2.5D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2.5D는 여러 반도체 칩을 수평으로 붙여서 단일 패키지에 통합하는 기술로, 기존 구조보다 전력 통제가 쉬워 발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2.5D 패키지가 고성능 반도체 구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재 이를 구현할 수 업체는 많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기는 신공장에서 고성능 반도체용 2.5D 반도체 패키지기판을 생산하고 미래 사업성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밖에도 삼성전기는 신공장을 통해 전장용 센서 부품 등 미래 사업 강화를 위한 제품 생산에도 나설 계획이다. 또 원활한 생산을 위해 신공장엔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통합 생산이 가능한 설비·인프라, 물류 자동화 생산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현재 신공장 공정률은 약 57% 정도로, 내년 5월 공장 1층에 투입된 장비들은 모두 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라며 "공장 2층과 3층은 개발되는 프로세스나 공정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오는 2025년까지 준비를 모두 마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공장에선 기존보다 한세대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얼마나 할 수 있냐'가 아니라 '할 수 있냐 없냐'가 더 중요한 만큼 설비투자보다는 기술에 포커싱을 맞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