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터리 업계에선 흑연이 큰 화제입니다. 중국이 이달 초부터 흑연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인데요. 물론 아직까진 흑연 수출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제 흑연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중국이 흑연 수출을 전면 통제한다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데요. 연필심으로 알려진 흑연이 왜 배터리 업계와 연관성이 깊을까요? 지금부터 흑연이 배터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핵심 광물로 평가받는지 알아볼게요.
연필심이 음극재 핵심이라고?
2차전지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 네가지 핵심 소재로 구성됩니다. 흑연은 배터리 소재 중 음극재에 필요한 핵심 광물인데요. 음극재는 배터리의 충전 속도와 수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흑연이 어떤 물질인지 감이 안잡히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필심이나 샤프심이 바로 흑연입니다.
연필심이 어떻게 배터리 핵심 광물로 사용되냐구요? 그 이유는 바로 흑연의 원자 구조 때문입니다. 흑연을 원자 단위로 자세히 살펴보면 탄소 여섯개가 모여 육각형을 이룬 구조를 갖고 있는데요. 이런 형태의 원자구조가 벌집처럼 층층이 쌓여있죠.
현재 전기차에 주로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양극재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음극재가 저장한 후 재방출하는 과정에서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원리를 사용합니다. 리튬이온을 더 많이, 빠르게 저장하고 방출할수록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충전 속도를 높일 수 있죠. 또 음극재가 리튬이온을 저장할 땐 배터리 내 구조 변화와 다른 소재와의 반응을 막아 배터리 안정성과 수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흑연은 육각형 구조 사이사이에 리튬이온을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 덕분에 음극재 핵심 광물로 사용되기 시작했죠. 물론 저렴한 가격도 배터리 업계에 흑연이 확산되는데 한몫했습니다.
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광석에서 직접 채굴하는 천연흑연이 있습니다. 천연 흑연은 광산에서 흑연 광석을 채굴한 뒤 이를 잘게 부수고, 불순물을 걸러 순도를 높여 생산합니다. 이 과정을 '선광'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높은 순도의 흑연 광석을 만들면 둥글게 가공해 구형 흑연으로 만듭니다. 이 과정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죠.
다른 하나는 직접 채굴하지 않고 석유화학 공정 부산물로 만든 인조흑연입니다. 인조흑연은 제철이나 석유화학 공정 부산물인 '침상코크스'를 활용해 생산합니다. 날카로운 '침'과 같은 모양이라고 해서 침상코크스 입니다.
침상코크스는 '콜타르'라는 화학물질에서 얻을 수 있는데요. 콜타르는 제철이나 석유화학·정유 공정의 부산물입니다. 콜타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고온으로 열처리를 하면 침상코크스가 나옵니다. 침상코크스를 분쇄하고 3000℃ 이상의 전기로에 넣어 열을 가하면 흑연의 결정구조가 만들어지죠.
천연흑연 음극재는 리튬이온 저장 용량이 크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조흑연 대비 불규칙한 구조를 갖고 있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힙니다. 이에 비해 인조흑연계 음극재는 천연 흑연보다 배터리 수명이 길고 출력이 높지만, 생산 비용이 높죠.
중국 의존도 낮춰라
흑연은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이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KDB산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흑연 정련량의 91%를 중국에서 담당했죠. 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국내에서 수입한 중국산 천연흑연과 인조흑연의 양은 각각 전체의 94.5%, 97.7%에 달했습니다.
결국 중국이 빗장을 잠그면 흑연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모잠비크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도 흑연 생산량을 늘리고 있지만 아직 중국의 영향력을 따라가기엔 갈길이 먼 상황입니다.
또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선 중국산 광물 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전기차 배터리에 중국산 광물이나 소재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될 경우 세액 공제 혜택과 최대 7500달러(약 976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서죠.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흑연 생산 과정을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주요 핵심 광물들의 중국 의존도를 50% 이하로 낮추기 위해 세계 주요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언제 중국이 흑연 수출 통제를 다시 강화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국내 업체 중 흑연에 가장 진심인 곳은 포스코퓨처엠인데요.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흑연계와 인조흑연계 음극재를 모두 생산하고 있습니다. 천연흑연은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투자한 탄자니아 소재 마헨지 광산과 마다가스카르 소재 몰로 광산에서 채굴하고 있습니다. 인조흑연은 원재료인 침상코크스를 자회사 포스코MC머티리얼즈을 통해 자체 조달하면서 국산화에 성공했죠.
포스코퓨처엠은 흑연계 음극재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천연흑연계 음극재 생산능력을 현재 7만4000톤(t)규모에서 2030년 18만2000t까지, 인조흑연계 음극재는 8000t에서 15만3000t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현재 흑연계 음극재는 전체 시장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급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흑연 내재화는 꼭 필요한 실정이죠. 과연 국내 업체들은 흑연 내재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이 '탈(脫)중국'에 성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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