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년 5개월 동안 이어온 불법 승계 재판에 첫 번째 마침표를 찍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당 합병·회계 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는 5일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합병의 필요성, 합병 장애 사유 전부 검토 등 이사회의 실질적인 검토 의결을 통해 추진 결정됐다고 보고,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삼성물산 합병 TF 경영진 이사회는 악화된 경영 상황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이 삼성물산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검토 판단해 이 사건 합병을 추진하였을 뿐이고, 이재용 회장이 이 사건 합병의 추진 여부를 전반적으로 결정했다고 볼 수가 없다"고 부연했다.
합병이 사업적 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도 합병을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측 판단이다. 재판부는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했고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는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합병의 주된 목적에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강화와 삼성그룹 승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삼성그룹의 핵심 수뇌부였던 미전실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를 조작해 합병비율이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고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를 왜곡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삼정회계법인이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분식회계 고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이 회장은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로 이 회장의 경영 활동 제약이 완화되면서 향후 경영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그간 이 회장은 3년여 동안 95차례 법정에 섰다. 앞서 국정농단 재판까지 고려할 경우 9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미전실의 부활 여부도 관심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굵직한 인수합병(M&A) 등을 주도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만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1심 판결해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법 리스크 해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