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는 반대 방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관건은 'IRA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제도 변화 가능성'이다. 그간 IRA 세액공제로 전기차 캐즘을 버텨온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우려는 클 수밖에 없다. 친환경차 보조금도 줄이거나 폐지해 전기차 시장 자체가 더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지배적이다. 이 경우 캐즘 허들을 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배터리 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배터리 3사, 올해 누적 AMPC '1.4조'
업계는 트럼프 재집권 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 또는 폐기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화석연료와 내연기관 자동차에 우호적인 트럼프가 대선 기간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이른바 '바이드노믹스'의 핵심 정책인 IRA를 전면 폐기할 것"이라고 재차 공언한 데 따른 고민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AMPC 축소 가능성이다. AMPC는 바이든 정부가 배터리 및 친환경 에너지 등 산업의 투자·생산을 늘리기 위해 미국 내국세법을 개정, 세액공제 혜택을 지급하게 한 제도다.
특정 기업이 미국에서 첨단 제조 기술을 활용해 관련 품목 제품을 생산하면, 해당 기업에 세액공제 형태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배터리 셀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은 kWh당 10달러 등 총 45달러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AMPC는 캐즘을 버틸 주요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AMPC 의존도는 지속 증가, 올 3분기 누적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거둬들인 AMPC 규모는 총 1조3788억원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3사 영업이익(6532억원) 2배가 넘는 수준으로 파악됐다.
AMPC 축소·폐지 시나리오를 두고 배터리 기업들이 머리를 싸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우려가 현실로 이어질 경우, 특히 AMPC 수혜를 직접적으로 보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올 3분기 누적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은 AMPC 1조11027억원을 포함해 800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SK온은 AMPC 2112억원을 더해 영업손실 7676억원을 기록했다. AMPC를 제외하면 각사는 약 3000억원, 1조원의 적자를 낸 셈이다.
북미를 중심으로 이어진 대규모 투자에도 노란불이 켜졌다. 미국에서 배터리를 많이 만들수록 보조금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앞다퉈 생산거점을 현지에 세워왔다.
현 기준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서 운영 중이거나 운영을 목표로 건설 중인 생산거점은 총 13곳이다. △LG에너지솔루션 6곳 △SK온 4곳 △삼성SDI 3곳 등이다.
"韓 산업군 중 '배터리' 가장 취약"
아울러 트럼프가 IRA 전기차 보조금에도 손을 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캐즘은 보다 장기화할 전망이다. 이에 배터리 업황 반등 시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최근 한국신용평가는 "한국 산업 중 트럼프 재집권 시 가장 부정적일 분야는 '이차전지(배터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성장이 둔화하더라도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등으로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능하지만, 배터리업계는 전기차향 수요가 70% 이상이라 타격이 상당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일각선 "IRA 전면 폐지보다 소극적 방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불확실성에 따른 위기 대응은 필수라는 목소리가 중론을 이룬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투자 속도 조절을 검토하고,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등에 더욱 집중 할 방침이다.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전현욱 SK온 부사장은 "미국 대선 이후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전기차 수요 변동에 대한 손익 변동성을 줄이고자 ESS 등 전기차 외 배터리 애플리케이션 수요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당장 AMPC에 칼을 대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사장은 지난 1일 '배터리산업의 날'에서 "미국 대선 후 소비자들에게 가는 보조금에는 큰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자들이 받는 보조금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잘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