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황 괜찮나요?"
4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에 다니는 A씨가 4일 미국 IT 고객사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공급망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중국 업체와 납품 경쟁하는 이 회사는 제품 품질과 함께 안정적인 제품 공급망을 강점을 내세웠는데, 이번 비상계엄으로 이 강점마저 흔들리게 된 것이다. A씨는 불안정하고 복잡한 국내 정치를 고객사에 설명하는 데 진땀을 뺐다.
비상계엄이 6시간 여 만에 해제됐지만, 그 여진이 재계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불안정한 국내 정치 환경이 전 세계에 공론화되면서, 국내 기업의 해외 영업 활동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트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를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놀랍다" "충격적이다" 등의 반응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HD현대는 4일 오전 7시30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조선업계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선주와 약속한 선박 납기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분야다. 불안정한 국내 정세 탓에 선박의 납기일이 늦어지면 그간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은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돼 사장들은 비상경영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내 기업 전반으로 보면 당장 기업 가치가 떨어졌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비상계엄 여파에 장중 한때 2% 넘게 떨어졌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환율 변동 폭이 커진 것도 부담이다. 4일 새벽 원·달러 환율은 1446.5원까지 치솟았다가 계엄 해제 후 1411원으로 다소 안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소재 등을 수입하는 기업들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문제는 비상계엄 사태가 국내 정세를 계속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상대로 내란죄 고발과 탄핵 추진을 공식화했다. 비상계엄에 이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정세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과 유럽은 정치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한국 경제가 정치적 리스크와 분리되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벌 신뢰도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도록 협력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