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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잣대'에 멈춘 정유 투자…"씨앗까지 걷어가는 정부"

  • 2025.05.20(화) 16:31

박주선 대한석유협회장 "수출 500억불 산업에 '횡재세' 낙인"
민생 외면 비판 속, 수익률 1.8%…대기업 뺀 공제에 업계 반발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석유협회

"세금은 부과하고, 지원은 뺏는 구조입니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협회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정부의 정유업계 정책 기조를 비판했다.

그는 "정치권이 언론 보도를 근거로 왜곡된 주장을 펴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고율의 세금 부담과 투자세액공제 배제 등 정부 정책의 역차별이 정유산업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취임 이후 연임을 거쳐 3년째 협회를 이끌고 있다. 이날 그는 "국내 정유업계는 구조적 한계와 글로벌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산업 존립의 기로에 놓였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수출 1위도 해봤는데…끝없는 '기름값 프레임'

국내 정유산업은 이미 내수 중심 산업의 범주를 벗어났다. 지난해 기준 국내 원유 수입액은 약 85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500억달러가 석유제품 수출을 통해 회수됐다. 

단순 수출 규모만 놓고 봐도 정유산업은 반도체·자동차·일반기계 등 전통적인 수출 주력 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정유제품은 지난 2022년 국가 수출 품목 2위, 2023년 4위를 기록한 대표적 '수출 효자' 품목이다.

전체 매출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이후 매년 50% 이상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엔 58%를 넘기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 2012년에는 반도체·자동차를 제치고 6개 분기 연속 수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정유사들이 고유가에 편승해 '횡재 이익'을 챙긴다는 비판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정유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은 1.8%에 불과, 이 기간 중 6개 연도는 순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6%대였던 것을 고려하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휘발유 소비자가격의 절반가량은 세금이 차지한다. 가령 유가가 10% 하락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하 폭은 절반 수준인 5%에 불과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국제 유가와 국내 주유소 가격 사이엔 통상 2~3주 시차가 존재하고, 유가가 오를 땐 언론 보도가 집중되지만 하락기에는 주목도가 떨어지면서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소비자들 사이에는 '로켓 앤 페더(Rocket & Feather)' 현상에 대한 오해가 확산된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다.

로켓 앤 페더(rocket and feather)  : 원윳값의 인상은 소비자가에 바로 전가되지만 인하는 반영되지 않는 현상. 원윳값 인상은 소비자가를 로켓처럼 치솟게 하지만 인하는 깃털처럼 미미한 영향을 준다는 말

OECD 유일 중유 과세국…"정책 설계 왜곡"

박 회장은 정유업계가 처한 구조적 불이익의 대표 사례로 '중유 과세 문제'를 꼽았다. 중유는 정유사들이 원유 대신 정제 원료로 활용하는 대체 원료다. 원유 대비 10~20% 저렴하면서도 휘발유·경유 등 고부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수익성 확보에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중유가 '완제품'으로 분류돼 개별소비세가 부과된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휘발유·경유·등유처럼 세금이 붙는 제품을 생산할 경우, 정유사들은 중유 투입 시 이미 낸 세금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다. 반면 항공유나 납사처럼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제품을 생산할 경우에는 이 같은 공제 혜택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박주선 대한석유협회 회장이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석유협회

이로 인해 정유사들은 매년 약 300억원 규모의 세금을 환급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중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 업계가 면세 혜택을 누리는 것과 비교하면 업종 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개별소비세는 원래 소비용 완제품에 부과되는 세금인데, 중유는 휘발유 같은 석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원료"라며 "이런 중유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건 조세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결국 제조원가만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글로벌 관점에서도 한국의 제도는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철강이나 시멘트 업계는 완제품 연료인 유연탄을 원료로 쓰면 세금을 면제받는데 정유사에만 예외를 두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66개국이 중유를 정제 원료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개별소비세를 그대로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유럽과 미국은 물론, 아시아 주요국들까지 모두 환급 또는 면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SAF 투자도 막힌다…"속 빈 강정"

정유업계가 체감하는 또 다른 구조적 불이익은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에서의 대기업 제외다. 이 제도는 경기 침체기에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이 일정 금액을 투자할 경우 세액 일부를 환급해주는 구조다. 본래 2023년 말 일몰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연장을 수 차례 시사하며 업계에 투자 유인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개정안에서 정부는 돌연 대기업을 제외한 채 중소·중견기업만을 적용 대상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정유업계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 정책 혜택에서 배제됐다. 업계 전반에서는 투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은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침체기에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인데 정부가 먼저 연장을 약속해 놓고 연말에 대기업만 제외한 건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지금 정유사들은 영업이익 적자에 단기순이익도 없는 상태인데, 최소 1조원이 필요한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미래 사업에 어떻게 투자를 감행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정유사들은 이윤을 창출한 기업이 아니라 오히려 속 빈 강정이 돼버린 상황"이라며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실제 지난해 대기업들이 투자한 설비 가운데 약 9000억원 규모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 환급이 불발됐다. 정유업계 중 대표적 사례는 S-OIL(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다. 해당 프로젝트는 2023년부터 약 9조원 규모로 추진되고 있는 대형 정유·석유화학 복합 설비 투자 사업이다. S-OIL의 경우 해당 프로젝트 관련 투자분 중 약 1300억원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 지난해 단기 손실로 반영됐다.

그는 "S-OIL의 샤힌 프로젝트 사례는 정부 방침을 믿고 투자한 대표적 케이스"라며 "정유업계는 '좌초위기 산업'으로 불릴 만큼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에너지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 확충과 기술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원유 수요 감소 △기후변화 압력 △전기차 보급 확대 △고정비 부담 등에 더해 정부 지원에서조차 배제, 산업 자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지만 지금의 구조로는 정유업계가 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아무리 정부 재정이 어려워도 수출을 떠받쳐온 정유산업의 씨앗까지 걷어가는 일은 없어야 하며 최소한의 여력은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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