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8년 만 사법 족쇄를 완전히 벗었다. 대법원이 지난 16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2018년 1월 기소 이후 7년 9개월간 이어진 재판이 종지부를 찍었다.
핵심이었던 미술품 배임 혐의는 모두 무죄로, 일부 횡령만 유죄로 인정됐다. 실형 위험이 사라지면서 조 회장은 모든 법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독립경영 2년 차를 맞은 효성그룹의 글로벌 확장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첫 글로벌 R&D 센터…유럽 인증·개발 동시에
효성중공업이 유럽 시장 공략의 본격 신호탄을 쐈다. AI 인프라 확산으로 전력기기 산업이 이례적 '슈퍼사이클'에 진입한 가운데 회사는 지난 15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아른험(Arnhem)에 '유럽 연구개발(R&D) 센터'를 열고 개소식을 가졌다.
이번 R&D 센터는 효성중공업의 첫 글로벌 연구 거점이자 미래 전력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전초기지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술 신뢰성과 환경 기준을 요구하는 전력 시장이자, 재생에너지 전환을 선도하는 친환경 산업의 중심지다.
신설 연구소는 차세대 전력 차단기(GIS) 개발에 집중한다. SF₆는 전력 설비의 절연(전기 누설 방지)에 널리 사용돼 왔지만, 이산화탄소보다 수만 배 높은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대표적 온실가스로 꼽힌다. 효성중공업은 SF₆를 완전히 배제한 '그린(Green) GIS' 기술을 통해 유럽의 탄소중립 전력망 전환 흐름에 발맞추겠다는 목표다.
향후에는 초고압 직류 송전(HVDC)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다. HVDC는 대용량 전력을 장거리로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핵심 기술로 신재생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필수적이다. 효성중공업은 이러한 기술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생산부터 송전·분배까지 전력 인프라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토탈 그리드 솔루션' 구축에 나선다.
아른험은 세계 최고 전력설비 시험·인증기관인 KEMA가 위치한 곳으로, 효성중공업은 실시간 시험 데이터를 확보해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는 선순환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
조 회장은 "효성의 DNA는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해외 연구기관과 협력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전력기술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개소식에는 우태희 효성중공업 대표를 비롯해 홍석인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 네덜란드 기후정책 및 녹색성장부 관계자,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 전력회사와 연구기관 인사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수주·투자·외교까지…조현준, 전방위 글로벌 드라이브
효성중공업은 이미 북미와 아시아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와 GIS(가스절연개폐장치) 분야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6월 북미에서 단일 계약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2641억원의 GIS 수주에 성공했으며, 미국 최대 송전망 운영사와 765킬로볼트(㎸)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생산능력 확충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창원 공장의 CAPA(생산능력)를 40% 늘린 데 이어 내년 말까지 미국 멤피스 공장도 40% 증설할 계획이다. 총 11조원 규모로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HVDC 프로젝트 수주에도 그룹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조 회장은 지난 15일 일본 도쿄 게이단렌에서 열린 '한미일 경제대화'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 참석해 3국 간 에너지 협력 전략을 논의했다. AI 전환 가속으로 글로벌 전력망 재편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효성중공업 전력기기 사업을 중심으로 한 협력 확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은 에너지 세션 주요 토론자로 나서 AI 시대 전력 인프라 확충과 공급 안정성 확보를 위한 3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AI 확산으로 글로벌 전력 인프라가 급변하는 시점에 효성은 기술력과 신뢰성을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기업"이라며 "조현준 회장이 완전한 경영 복귀를 이룬 만큼 글로벌 전력기기 시장에서 효성의 존재감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