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에 불이 났고 바닥에는 물이 새고 있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는 작년 말 취임 직후 회사를 침몰하는 배에 비유했다. 최악의 장기침체로 3년 연속 적자에 빠진 상황. 그는 “먼저 리테일 적자라는 불을 끄자”며 곧바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진통 끝에 전체 직원의 21%(337명)가 떠났다.
구조조정 태풍이 국내 산업 전반에 휘몰아치고 있다. 최악의 장기불황에 빠진 금융투자업계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은 방송통신업계 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인건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작년 말 65개 국내외 증권사의 임직원수는 4만241명으로 2011년 말보다 8.6%(3814명) 줄었다. 2년 새 322개 지점이 문을 닫았다. 주식 거래 감소로 증권사 수익이 급감하면서 구조조정은 시작됐다. 2010년 8조원에 육박하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현재 5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한정태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증권업종의 돈 벌기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체력이 약한 중소형사 뿐만 아니라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대형사까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매년 3000억원의 고정비를 절감했다”며 “3000억원은 일평균거래대금 1조3000억원에서 벌어들이는 연간수탁수수료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은 3년째 진행형이다. 2011년 100여명의 직원을 내보낸 삼성증권은 또 구조조정 카드를 만지고 있다. 올해 임금도 동결했다. NH농협증권과 합병을 앞둔 우리투자증권도 감원설이 돌고 있다. 이재진 우리투자증권 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달 농협금융지주의 인수합병조직(PMI)에서 인력 효율화 방안이 내려왔다”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상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전국 19개 지점을 5개로 줄이는 ‘초대형 거점 점포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은행도 구조조정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씨티은행은 기존 190개 지점 중 30%(56개)를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작년에 이어 대규모 감원도 예상되고 있다. SC은행도 올 초 200명 규모의 명예퇴직을 실시했고, 100여개 지점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외국계 은행뿐만 아니다. 국민과 신한, 우리 등 5개 주요 은행의 직원은 작년 말 6만8954명으로 1년 전보다 270명 넘게 감소했다.
비대한 조직을 가볍게 하기위한 선제적 구조조정도 있다. 임직원 3만2451명을 둔 KT다. KT는 이달 중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명예퇴직을 실시한다. 6000여명이 신청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KT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8.72%(작년말 기준)다. 경쟁사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3배에 이른다. 김미송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해 연간 3000억원의 이익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