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한진칼'을 검색하면 유독 많이 보이는 공시. 바로 '전환가액ㆍ신주인수권행사가액ㆍ교환가액의조정(안내공시)'공시인데요.
지난해 9월부터 무려 8차례나 같은 제목의 공시가 올라왔어요. 8개 공시에 담긴 숫자는 다르지만 공시의 목적은 하나. 한진칼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의 행사가격이 바뀌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예요.
▷관련공시: 한진칼 5월 3일 전환가액ㆍ신주인수권행사가액ㆍ교환가액의조정(안내공시)
◇ 3000억원 BW 발행한 한진칼
공시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려면 먼저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해요.
단어를 풀어서 보면 회사의 새로운 주식을 인수할 권리(신주인수권=워런트)가 붙어 있는(붙을 부: 附) 사채(회사가 발행한 채권)란 의미. 영어로는 BW(Bond with Warrant)라고 하는데요. 즉 채권과 신주인수권이 결합한 금융상품이죠.
신주인수권부사채는 기업이 자금조달을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기업이 발행한 BW를 산 투자자는 중간 중간 이자를 받을 수 있고요. 만기 전에 빌려준 돈을 갚으라고 회사에 요구(조기상환청구권)할 수도 있어요. 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워런트)만 따로 떼서 다른 투자자에게 팔아 차익을 거둘 수도 있어요. 잘만 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채권 중 하나.
한진칼은 지난해 5월 자회사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300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어요. 기업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는데요. 특정인에게 발행하는 사모방식과 불특정 다수에게 발행하는 공모방식. 당시 한진칼이 발행한 BW는 공모방식이었어요.
▷관련공시: 한진칼 2020년 6월 1일 주요사항보고서(신주인수권부사채권 발행결정)
◇ 행사가격 8만2500원→ 5만7200원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은 놔두고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만 따로 떼어내 사고 팔 수 있는데요. 한진칼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워런트 이름은 '한진칼3WR'.
한진칼3WR은 지난해 7월 16일부터 거래를 시작했어요. 당시 한진칼3WR 종가는 2만1950원.
워런트를 가진 투자자는 주가가 얼마이든 관계없이 정해진 가격에 회사에게 주식을 발행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요. 이 가격을 행사가격이라고 해요.
한진칼3WR의 상장 당일 행사가격은 BW 발행 당시와 같은 8만2500원. 같은 날 한진칼 주가는 9만7400원(종가 기준).
그럼 얼핏보기엔 시세보다 무려 1만4900원 저렴한 가격에 한진칼 주식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니 누구나 워런트에 투자한다고 생각할 수도!
하지만 시장에서 워런트(한진칼3WR)를 매입한 투자자라면 워런트 가격 2만1950원에 행사가격 8만2500원을 더한 10만4450원이 실제 매입원가여서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9만7400원에 주식을 사는 것보다 비싸죠.
상가를 매입할 때 권리금(워런트)과 건물·토지가격(행사가격)을 합쳐야 투자원금이 되는 것과 같은 논리.
따라서 당장 워런트를 매입했더라도 주식을 달라고 요구하긴 어렵죠. 그래서 워런트에 투자한다는 것은 앞으로 주가가 대폭 오를 것이라 기대하고, 실제로 주가가 투자원금(워런트 매입가격+행사가격) 이상이 됐을 때 행사(주식 발행 요구)해서 차익을 추구하는 투자 방식이에요.
그런데 기대와 달리 한진칼 주가가 더 떨어진다면 워런트도 점점 더 투자가치가 낮아지겠죠. 따라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할 때는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감안해서 행사가격도 조정한다는 조건을 달아놓는데 이를 리픽싱이라고 해요.
한진칼3WR의 행사가격은 지금까지 무려 8차례나 리픽싱을 받으며 계속해서 내려갔어요. 그만큼 한진칼 주가 하락폭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
상장 당일 8만2500원이던 워런트 행사가격은 약 두 달뒤인 지난해 9월 3일 7만7000원으로 조정. 이후 계속 주가가 떨어지자 6만8300원(10월 5일), 6만7500원(12월 3일)로 내려가더니 지난 4월에는 5만7600원까지 도달했어요.
가장 최근 공시인 3일 전환가액ㆍ신주인수권행사가액ㆍ교환가액의조정(안내공시)를 보면 워런트 행사가격이 5만7200원까지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 경영권이슈 사그라지니 워런트도 휴짓조각
8개월동안 무려 8차례에 달했던 연이은 리픽싱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3자 연합(KCGI·조현아·반도건설)의 경영권 분쟁과 무관치 않은데요. BW발행 당시만 해도 조원태 회장과 3자 연합의 경영권 분쟁분위기는 매우 치열했고, 한진칼 주가도 오른 상황이어서 워런트에 쏠린 투자자의 관심도 높았어요.
특히 3자 연합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워런트(한진칼3WR) 120만개를 공개매수하기도 했죠. 당시 조원태 회장도 한진칼 보유주식 70만주를 담보로 200억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워런트 매수를 위한 종잣돈 마련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었죠. (다만 조 회장은 실제로 워런트를 매입하진 않았어요.)
한진칼 BW 발행 1년이 다가오는 지금은 조 회장과 3자 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조 회장의 승리로 끝난 상황. 지난 3월에 열린 한진칼 정기주총에서 3자 연합은 주주제안서를 내지 않고 모든 안건에 기권표를 던졌어요. 또 지난 4월 3자 연합은 한진칼 주식의 공동보유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 사실상 해체 선언을 했어요.
경영권 분쟁이슈가 사그라지면서 주가도 급속히 떨어지자 리픽싱 조항에 따라 워런트 행사가격도 계속 내려간 것이죠. 현재 일반투자자를 제외하면 워런트(한진칼3WR)을 손에 쥐고 있는 곳은 그레이스홀딩스(KCGI, 80만개)와 반도건설 계열의 대호개발(14만8745개) 한영개발(14만8745개) 반도개발(54만8745개). 이들은 아직까지 워런트를 행사하지 않았어요. 즉 한진칼 주식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상황.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매입한 워런트 단가는 1개당 2만5000원(공개매수가격 기준)이고, 행사가격은 8번의 리픽싱을 거쳐 현재 5만7200원까지 내려왔죠. 행사가격이 워런트 투자자에게 유리한 리픽싱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들의 투자원금(워런트 매입가+행사가격)은 1주당 8만2200원 수준. 그런데 한진칼 주가는 5만1300원(7일 종가). 따라서 워런트를 행사한다면 시장에서 5만1300원이면 살 수 있는 주식을 굳이 8만2200원에 매입하는 꼴이어서 행사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 결국 휴짓조각처럼 워런트를 들고만 있는 상황이죠.
◇ 일부는 "손해 커지기전에 바꾸자"…대량 행사 가능성은 낮아
다만 계속해서 한진칼 주가와 워런트 행사가격이 동반 하락하면서 일부 투자자는 손해가 더 벌어지기 전에 주식으로 바꿔달라는 권리 행사(신주인수권 행사)를 했어요.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공시시스템 '카인드(KIND)'에 BW행사로 인한 상장 안내 공시가 올라온 건 총 5번. 1주(8만2500원), 144주(6만8300원), 2만9458주(6만8300원), 303주(6만8300원), 144주(6만2700원)가 신주인수권 행사로 새로 주식이 발행돼 상장했어요. 이로인해 한진칼의 총 발행주식이 3만50주 늘어났죠. 괄호 안에 숫자는 BW행사가격. 뒤로 갈수록 행사가격이 낮아졌죠.
가장 최근인 이달 3일자 전환가액ㆍ신주인수권행사가액ㆍ교환가액의조정(안내공시)를 보면, 아직 행사하지 않은 금액이 2978억원어치(BW 권면 금액 기준)에 달해요. 처음 3000억원어치 BW를 발행했으니 아직 99%에 달하는 워런트는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워런트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 3자연합 측은 당분간 한진칼 주가가 급격하게 오르지 않는 이상 워런트를 행사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해요.
다른 투자자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한진칼 주가수준에서는 권리금(워런트 매입가격)은 둘째치고 행사가격조차도 주가보다 높은 상황에서 굳이 워런트를 행사한다면 오히려 손해만 보는 상황이어서 굳이 행사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한진칼은 작년 7월 BW를 발행할 당시 이러한 투자위험을 증권신고서에 설명했어요. 결국 투자위험은 경고에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됐고, 현실을 가장 체감하는건 3자 연합이 되고 말았죠.
금번 공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신주신수권증권 행사가액은 90,600원(예정)으로 향후 행사가액 대비 주가가 하락할 경우 신주인수권증권 가치도 하락할 수 있습니다. 2023년 6월 3일(채권 만기 1개월 전)까지 행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떠한 보상 없이 행사기간이 종료되어 신주인수권증권이 소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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