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과 사모펀드 KCGI가 오는 23일 정기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펼친다. KCGI가 연합군을 꾸려 조원태 회장 해임을 시도한지 2년 만이다.
이번 표 대결 역시 KCGI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 모양새다. 캐스팅보트를 쥔 산업은행이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줄 거란 전망이 실리면서다. 이번 주주제안이 거절될 경우, KCGI가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번 한진칼의 정기주총 관전 포인트를 세가지로 요약해 봤다.
2년 만의 재대결
KCGI가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제안할 내용은 △전자투표 도입 △이사 자격 기준 강화 △사외이사 후보 제안 등 세가지다.
KCGI는 이번 주주 제안에 나선 배경에 대해 "한진그룹 자산총액의 75%, 매출액의 71%를 차지하는 대한항공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뚜렷한 실적개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진칼은 2020년말과 2021년 3분기말 누적 기준 각각 2200억원, 163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라며 "자회사의 호실적이 지주사의 기업가치제고로 이어지도록 이사회가 노력해야 함에도 한진칼은 시장과의 소통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CGI는 2020년에도 주주 제안에 나선 이력이 있다. 당시 KCGI는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 연합'을 결성하며 조원태 회장 해임을 시도했다. 결과는 3자 연합의 패배였다.
이번 주주 제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제안은 이사 자격 기준 강화다.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실형 확정판결을 받은 자를 이사직에 둘 수 없도록 한 내용이다. 이는 이사 결격 요건 강화를 통해 향후 조현민 사장이 사내이사로 진입할 수 없도록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월 KCGI는 보도자료를 통해 "조현민 사장 선임은 과거의 후진적 지배구조로 회귀를 의미한다"며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사를 계열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회사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외이사 후보로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를 추천한 것도 눈에 띈다. 서 후보자는 한국관리회계학회장을 지낸 회계전문가로 2004년 포스코 사외이사로 선임된 뒤, 감사위원장직을 지냈다. KCGI는 "서 후보자는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 및 이사회 독립성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한 전문가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누구 손 들어줄까
결국 이번 주주 제안 안건 승인은 산업은행의 선택에 달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KCGI의 우호 지분과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을 단순 비교했을 때 KCGI의 지분이 조금 더 많은 상황이다.
2021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KCGI의 우호지분은 대호개발(반도건설) 17.02%, 조현아 전 부사장 2.06% 등이다. KCGI의 지분 17.41%를 합하면 총 36.49%에 달한다.
조 회장의 우호지분은 약 4%p가량 못 미치는 32.08%다. 세부적으론 조 회장 18.87%(조 회장 일가 지분에서 조 전 부사장 지분 제외), 델타항공 13.21% 등이다.
결국 이번 주주 제안은 지분 10.58%를 보유한 산은의 손에 달린 셈이다. 산업은행은 2020년 1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원 과정에서 총 5000억원을 투입해 지분 10.58%를 취득했다.
업계에선 산은이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자칫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항공 빅딜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산은이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 안정을 택할 거란 전망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한진칼 측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진칼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 역시 "산은의 가장 큰 목표가 항공 빅딜 성사이므로 경영권 안정 차원에서 조 회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 3자 연합을 꾸렸던 KCGI-반도건설-조 전 부사장 연합군의 연대는 약화된 상황이다.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는 반도건설은 KCGI의 이번 주주 제안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데다 조 부사장 역시 지난 2년 전보다 지분율이 5.79%에서 2.06%로 떨어졌다.
KCGI, 엑시트 염두?
만약 이번 주주제안이 거절될 경우, KCGI가 엑시트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KCGI의 한진칼 펀드 만기 시점은 올해 3월 말까지다. 다만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을 경우 최대 2년까지 운용 기간 연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주제안을 통해 KCGI가 엑시트를 위한 운을 띄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수익 실현이 우선인 사모펀드 특성상 언제든 투자금 회수에 나서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강성부 KCGI 대표는 직접 엑시트 가능성을 밝히기도 했다. 강 대표는 지난 2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KCGI 펀드는 큰 수익 구간에 진입했고 회사가 대폭 개선돼 엑시트를 위한 여건은 조성됐다고 본다"며 "매각은 부분 매각보다는 전량 매각이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케이홀딩스(KCGI)는 2018년 11월 한진칼 주식 532만2666주를 주당 2만4557원에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지분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케이홀딩스가 보유한 주식수는 1162만190주로 1주당 평균 단가는 3만원대 초반으로 예상된다. 당장 투자금 회수에 나서더라도 약 3400억원(22일 한진칼의 종가 6만200원)의 차익을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