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KBI동국실업이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공시를 발표했어요.
▷관련공시: KBI동국실업 5월 25일 주요사항보고서(유상증자결정)
유상증자는 새로운 주식을 찍어 대가를 받고 팔아 자본금을 늘리는 것을 말해요. 대가를 받지 않고 신주를 찍는 것을 무상증자라고 하죠. '증자(增資)'라는 말은 한자어 그대로 자본금을 늘린다는 뜻이에요. 신주를 찍어 전체 주식수가 늘어나면 자본금도 증가해요. 자본금은 '발행주식수×액면가'이기 때문.
KBI동국실업은 왜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한 걸까요. 공시를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아요~
총 발행주식수의 30% 신주 찍어 채무상환
KBI동국실업은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 대표 사업으로 최근 전기차로 화제를 모은 아이오닉5의 부품을 조달하고 있어요. 현대차뿐만 아니라 기아차, BMW, 아우디, 벤츠 등 해외 업체에도 부품을 팔고 있는데요.
KBI동국실업은 이번 유상증자로 신주 2035만6234주를 찍어낼 계획. 총 발행주식수(6686만1743주)의 30%에 달하는 물량이에요.
KBI동국실업은 제3자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
유상증자 방식에는 주주배정, 제3자배정, 일반공모 3가지 방식이 있는데요. 주주배정은 기존 주주들에게 지분율 만큼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 일반공모는 주주와 제3자, 제4자 등 특정하지 않은 다수를 대상으로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이에요.
제3자배정은 특정 사람 몇몇만 콕 집어서 신주를 판매하는 방식. 3자배정이라고 해서 회사와 전혀 무관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특정한 자'라고 이해하는 게 맞아요. 기존 주주든, 회사와 관련이 있든 없든 특정 누군가를 콕 집는 경우를 3자 배정이라고 해요. 자본시장법에서도 제3자배정이란 단어 대신 ‘특정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의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특정한 자(회사 주식을 소유한 자를 포함)에게 신주 청약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
-자본시장법 제165조의6 제1항 2호
KBI동국실업의 신주를 배정받을 제3자는 KBI국인산업. 비상장사인 KBI국인산업은 경북 구미와 전북 군산에서 폐기물소각장 및 폐기물매립장 사업을 하고 있어요. KBI동국실업의 최대주주(지분율 25.9%)이기도 해요.
신주의 발행가액은 786원. 이 가격은 1개월, 1주일, 최근일의 주가를 평균해 기준주가를 구한 뒤 여기에 10%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이에요. 일반적으로 주주배정이나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는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기도 하는데 제3자배정 증자는 할인율을 최대 10%로 제한해요. 제3자배정은 '특정인'에게만 판매하는 방식이니까 특혜를 주지 말고 최대한 시세와 가까운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하라는 취지이죠. 그래도 시세보다는 싼 가격이에요.
주식을 찍어서 파는데 받는 돈은 없다?!
KBI동국실업은 신주 2035만6234주를 찍어 주당 786원에 주식을 파니까 총 160억원의 현금을 확보해요. 이 자금은 모두 채무상환, 즉 빚을 갚는데 쓰기로 했어요. 하지만 공시를 끝까지 보면 실제 KBI동국실업이 이번 유상증자로 받는 돈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이번 유상증자의 주금 납입예정일(신주를 넘겨준 대가로 KBI동국실업에 돈이 들어오는 날)은 6월 1일. 유상증자결정공시가 5월 25일에 떴는데 불과 1주일 만에 KBI국인산업이 KBI동국실업에 유상증자 대가를 지급한다는 뜻인데요.
사실 주금납입일을 빨리 잡은 건 넘겨줄 돈이 없기 때문. 공시의 <20. 기타 투자판단에 참고할 사항>을 보면 '(4)주금 납입방법'에 "신주에 대한 주금납입은 제3자배정 대상자가 회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채권을 주급 납입일에 주식납입금으로 상계한다"고 쓰여 있어요.
이 말은 기존에 KBI동국실업에 KBI국인산업에 빌린 돈이 있는데 이번 유상증자로 찍어낸 신주를 건네주는 걸로 지난 채무를 갚는다는 뜻이에요.
결국 이번 유상증자로 신주를 찍어내 확보한 160억원을 채무상환자금에 쓰겠다는 건 기존 KBI국인산업에 빌린 돈을 갚는데 사용한다는 의미인 거죠.
KBI동국실업은 지난해 KBI국인산업으로부터 234억원의 현금을 빌렸어요.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제품생산에 필요한 재료구입비 등 운영자금에 사용하려고 돈을 빌렸다고 하는데요.
KBI동국실업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어요. 버는 것보다 나가는 비용이 더 많다보니 2017년~2018년에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다 2019년부터 당기순이익으로 돌아선 상황.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최대주주인 KBI국인산업으로부터 자금수혈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번 유상증자로 신주를 찍어 지난해 빌렸던 돈 234억원 중 160억원을 갚으면 KBI동국실업이 KBI국인산업으로부터 갚아야 할 채무는 74억원으로 줄어요.
유상증자로 총수일가 지배력 커져
KBI동국실업이 재무상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최대주주인 KBI국인산업은 지난해 영업이익 415억원, 당기순이익 231억원을 기록했어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만큼 KBI동국실업에 자금을 빌려준 것이죠.
자금을 빌려준 대가로 이번 유상증자로 찍어낼 신주를 받으면 KBI국인산업의 KBI동국실업 지분율은 더 늘어날 예정. 현재 지분율 25.9%에서 유상증자 이후 43%로 늘어나요.
유상증자로 인한 지분율 확대는 단순히 KBI국인산업에 한해서 볼 문제는 아닌데요. 이유는 KBI국인산업의 주요 주주가 박유상 KBI그룹 고문, 박효상 KBI그룹 회장, 박한상 KBI그룹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이기 때문이죠.
박유상, 박효상, 박한상 등 총수일가 3명은 KBI국인산업 지분을 각각 44.44%, 27.78%, 27.78%씩 합계 100%를 갖고 있어요. 총수일가 3명이 KBI국인산업을 완전지배하고 있는 형태. 더군다나 총수일가는 KBI동국실업의 지분(박유상 5.66%, 박효상 2.49%, 박한상 2.09%)도 보유 중.
10% 할인한 가격에 KBI국인산업이 KBI동국실업의 지분율을 높이면서 총수일가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지배력을 확대한 셈이죠.
소액주주들이 체크해야할 점
지난해 말 기준 KBI동국실업의 소액주주는 4164명. 총 발행주식수의 절반을 소액주주들이 가지고 있어요. 삼성전자 소액주주수(386만7960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소액주주가 적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죠. 단 한명의 소액주주라도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은 기업이라면 주식회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을 다해야 해요.
이번 유상증자로 소액주주들이 반드시 체크해야 할 부분은 늘어난 신주가 언제 상장되는지 인데요. 공시를 보면 신주의 상장예정일은 6월 17일이에요. 이날부터 유상증자로 발행한 신주가 총 발행주식수에 합쳐져요.
유상증자로 찍어낸 신주 물량은 총 발행주식의 30%에 달해 상당히 많은데요. 만약 이 물량이 한꺼번에 매물로 나온다면 당연히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다행히 이번 유상증자는 특정인에게 배정하는 제3자배정이자 사모방식(50인 미만)이라 신주물량 전체를 1년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어요. 이를 보호예수가 걸려있다고 표현해요. 사모방식의 유상증자인데다 1년간 보호예수가 걸려있어 KBI동국실업은 이번 유상증자 결정 공시를 내면서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받기도 했죠.
보호예수로 상장 후 1년간 팔지 못하지만 1년 뒤에는 거래가 가능한데요. 그럼에도 신주물량이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적어요. KBI국인산업이 가지고 있는 KBI동국실업 지분은 사실상 총수일가의 몫이기 때문. 회사 매각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팔 가능성은 희박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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