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매년 그랬듯이 다사다난한 모습이 이어졌다. 우선 상반기에는 갖가지 기록이 쏟아졌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사상 최고점을 다시 썼고 공모주 투자 열풍을 등에 업은 기업공개(IPO)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증시가 대외 변수에 휘둘리면서 방향성을 잃기 시작했다.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힌 채 3000선 진입에 만족해야 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미국 뉴욕 증시처럼 양대 지수를 대표할 수 있는 간판 상장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 같은 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지원 정책과 인재 확보, 미래 성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니콘 기업 발굴, 성장 후 과실을 나눌 수 있는 주주친화적 환경 조성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견해다.
K-증시, 2021년은 신기록의 해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증시는 다양한 기록을 새로 썼다.
연초부터 낭보가 들려왔다. 지난 1월6일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초로 장중 3000포인트를 돌파한 데 이어 다음 거래일에 종가 기준으로도 3000선을 넘어섰다. 이후에도 우상향 추세를 이어간 끝에 6월 말에는 3300포인트 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올해 25돌을 맞은 코스닥 시장도 경사를 맞았다. 지난 4월12일 1000.65포인트로 장을 마감하며 2000년 9월 이후 거의 21년 만에 1000선 회복에 성공했다. 시가총액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0년 당시 29조원 수준에 불과하던 코스닥 전체 시총은 440조원을 넘어섰다.
증시에서 시작된 훈풍은 관련 시장에도 온기를 전달했다. IPO 시장에서는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코스피 신규 상장 기업을 배출했다. 올해 코스피 문턱을 넘은 상장사는 총 23개사로 2011년 25개사 이후 최대치다. 올 한 해 코스피 신규 상장사가 공모시장을 통해 모집한 금액은 17조원을 넘어섰고 확정 공모가 기준 시총 또한 87조원을 웃돌며 새 역사를 썼다.
코스닥 또한 다양한 상장 루트를 제공하며 유망 기업들의 증시 합류를 독려한 결과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을 제외한 91개 기업이 코스닥 공모를 통해 3조6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국내외 다양한 종목 및 기초자산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도 희소식이 전해졌다. 2002년 4개 상품, 순자산 규모 3400억원으로 시작한 ETF 시장은 지난 5월 순자산 60조원을 넘어섰고 불과 7개월 만에 10조원 이상 불리며 70조원대 몸집을 갖췄다.
검증받은 스타 기업 등장해야
올해 국내 증시가 질적·양적인 성장을 거뒀지만 지금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에서도 뉴욕 증시의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과 'MAGA(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 등과 같은 대표기업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는 "FAANG이나 MAGA와 같이 사업의 확장성, 창의성, 기술력 등을 검증받은 스타 기업들이 계속 등장해야 증시의 근간이 튼튼해질 수 있다"며 "회사의 잠재력에 높은 점수를 주는 투자 풍토와 함께 기업들이 투자자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선순환적인 구조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미래 시장을 대표할 수 있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보다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쉬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기업 배양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특성은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쉬크 연구원은 "전 세계 스타트업 인재들이 모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특징은 국제화(Globalization)"라며 "단순한 자금 지원보다는 회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인재 영입 등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생 회사의 성장 이후 행보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기업 특유의 소위 '짠물' 배당, 주주 의사에 반하는 회사 정책 결정부터 개선해야 한국 주식이 다른 나라 주식 대비 상대적으로 싸게 거래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식시장을 통해 성장한 신생 기업들은 기존 주주와 적극적으로 성과를 공유해 자사 주식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며 "이런 기업들이 늘어나야 한국 증시의 전반적인 밸류에이션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적 변화 진행 중…긍정적 신호 주목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국내 증시의 전반적인 흐름이 글로벌 추세를 쫓고 있는 만큼 너무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시가총액 상위 그룹에 진입하는 등 현재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신흥국 지수에 포함돼 있는데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밸류에이션을 차별받는 등 글로벌 기업이 나오기 어려운 한계성이 존재한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시총 상위권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카카오 등이 들어오면서 과거에 비해 증시의 색채 자체가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의 FAANG이나 MAGA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세는 큰 틀에서 미국 대표 기업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며 "기업 성장의 초기 단계에 있는 유니콘 기업 발굴, 자금 조달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내 증시를 너무 자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