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가 불 지핀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 폭락 후폭풍이 증권가에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연일 가상자산 리서치에 열을 올리던 증권사들은 최근 석 달 가까이 관련 분석 보고서를 단 한 건도 내지 않을 정도로 부쩍 몸을 사리고 있다.
'비중 10% 편입' 의견 내놓고 최근 리서치 '전무'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가상자산에 대해 분석한 보고서는 지난 5월 중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앞서 연초 대형 증권사는 물론이고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가상자산 투자와 운용 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선보이기 바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작년 말부터 증권사들은 가상자산 분석 보고서를 대거 선보였다. SK증권은 지난해 12월부터 가상자산 시장 점검 보고서를 4차례 시리즈로 냈고, 유진투자증권은 새해 첫 거래일부터 가상자산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자산으로 추천했다. 비중을 10% 이내로 편입할 경우 수익률 개선에 주효할 것이란 과감한 분석이었다.
비슷한 시기 하나증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가상자산 보고서 제목으로 내걸었다. NH투자증권은 가상자산에서 증권사의 신규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랬던 증권가에서 가상자산 리서치 보고서가 뜸해진 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와 자매 코인인 루나 가격이 연쇄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자산이 일주일 만에 50조원 넘게 사라진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 가상자산 헤지펀드와 거래소, 대출업체들은 연달아 도산했고 비트코인은 개당 2만달러선까지 무너지며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가상자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관련 생태계도 같이 추락하고 있다"며 "업계 상황이 '붕괴' 수준으로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을 연상하게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토막 난 가상자산 시총…증권가도 한파 감지
특히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는 가상자산 시장에도 한파를 불러왔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최근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물가상승률은 41년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그 영향에 전 세계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최근 1371조82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작년 말 3093조4849억원 대비 절반 이상 급감한 것이다.
이처럼 가상자산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증권가도 리서치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됐다는 평가다. 더욱이 최근에는 국내 주요 은행들이 가상자산 불법 자금세탁의 창구로 이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장 분위기 자체가 가라앉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장 안팎에서 가상자산 시장이 혹한기라고 우려하는 마당에 리서치를 적극적으로 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 "여기에 은행권에서 비정상 외환 송금 사건까지 터지면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불과 얼마 전 사모펀드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증권가는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로 얽힌 법적 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며 "지금으로선 취급 상품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