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큰손' 국민연금이 오는 3월 국내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기주총에 앞서 열린 현대백화점 임시주총에서 이사회가 추진한 인적 분할에 제동을 건 것이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오명을 벗어던진 지 오래다. 자금을 대신 운용하는 위탁운용사들에게도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당부한 만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이목이 쏠린다.
인적분할 저지한 국민연금
16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탁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10일 열린 현대백화점 임시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에 따라 찬성이 64.9%에 그치며 '참석 주주 3분의 2이상(66.7%) 찬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을 무산시키는데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알짜 회사 한무쇼핑을 현대백화점에서 떼어내 지주회사(현대백화점홀딩스)로 이전하는 방안에 대한 주주들의 우려가 제기된 상황에서 국민연금(지분율 8.03%)이 소액주주 측에 힘을 실으며 안건 통과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2018년 18.82%, 2019년 19.07%, 2020년 15.75%, 2021년 16.25%로 10%대를 쭉 유지하다가 지난해 20%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1~9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이 주식 투자한 국내 기업 수는 1185개사이며, 이들 주총에서 총 3364개의 안건이 다뤄졌다. 이중 국민연금은 23.72%에 이르는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10개의 안건이 나오면 2건 이상에 반대의 뜻을 나타낸 셈이다. 오히려 위임운용만 따져보면 25% 상당이다.
작년 국민연금이 반대를 행사한 안건 중에서는 이사·감사 선임이 98건, 31.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사유는 다양했다.
반대 이유는 이해관계로 인해 독립성이 취약하거나,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이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와 중요한 거래관계에 있거나 과도한 겸임, 감시의무 소홀, 이사회 참석률 저조, 장기연임 등도 이유로 들었다.
주총 시즌 앞두고 의결권 행사 강화 예고
이번 주총 시즌에도 국민연금의 이사회를 향한 견제가 이어질 전망이다. 기금운용본부는 KT 등 소유분산기업 대표이사의 '셀프연임'을 조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최근 개최한 의결권 관련 설명회에서 위탁운용사들에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요구한 상황이다.
내달 15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주총 시즌이 시작되는 가운데 상장사들은 '큰손'의 움직임을 긴장감 속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주총에서 경계현, 박학규 후보의 사내이사 선임과 김한조 후보의 사외이사 선임에 반대해 관심을 모았다.
해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월엔 코스트코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해밀턴 제임스 코스트코 이사회 의장과 찰스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의장이 이번에도 이사로 선임될 경우 재직연수가 과도하게 길어진다는 이유다. 이들은 각각 1998년, 1997년부터 코스트코 이사회 멤버를 지내고 있다. 다만, 이 안건들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더라도 원안대로 주총을 통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존재하는 종목이 상당하고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의결권 행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주식 종목이 264곳에 이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면 일반 주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는 있다"며 "단순히 반대표를 행사한 사실보다 '무슨' 사안에 '왜' 반대했는지 살펴보는게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