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경영쇄신위원장)가 시세조종 의혹으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카카오그룹 계열사 카카오페이로 인해 도입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가 24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지난 2021년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이 스톡옵션을 행사한 뒤 대량의 주식을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매도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임원, 직원 등 회사의 내부자가 회사 주식을 매수·매도할 예정이라면 이를 반드시 사전에 공시해 주가 급락 등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겠다는 조치다.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먹튀 논란이 계기
그동안 임원, 주요주주 등 회사 내부자의 주식거래는 매수·매도 행위 이후에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대량의 주식을 매각하면서 주가가 급락하는데도 일반투자자들은 사전에 내부자의 매도 사실을 알 수 없어 고스란히 주가 하락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단순 주가 하락 문제만은 아니다. 내부자는 다른 일반투자자보다 상대적으로 미공개정보 접근이 쉽다. 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불공정거래 논란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내부자거래를 사후에 공시하면서 주가하락, 불공정거래로 인한 여파 등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투자자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페이 스톡옵션 먹튀 사태 이후 금융위는 스톡옵션으로 취득한 주식도 상장 후 6개월 간 매도를 제한하도록 했다. 하지만 6개월 이후 진행하는 주식 처분에 대해서는 규제할 수 없었다. 또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내부자 주식거래에 대해 일반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금융위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으로 지난 2022년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을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이미 미국은 내부자의 주식거래 시 사전거래계획을 제출하고 있다는 점도 제도 추진의 바탕이 됐다. 이후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는 당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바탕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거쳤고 해당 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매매예정일 30일 전에 사전 공시해야
24일부터 시행하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의 핵심은 임원 및 주요주주 등 내부자가 보유한 '주식 등'을 매수 또는 매도하려는 경우 거래하려는 날짜를 기준으로 30일 전에 매매의 목적, 가격, 수량, 매매예정기간 등을 공시해 일반투자자에 알려야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주식 등'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는 물론 우선주,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교환사채, 증권과 관련된 증권예탁증권 등을 모두 포함한다.
가령 A회사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보통주) 1000만주를 매도했다면 지금은 실제 매매가 이루어진 날을 기준으로 5일 이내에 거래내역을 공시하면 된다. 이때 일반투자자는 최대주주가 이미 거래를 다 끝내고 나서야 주식을 얼마나 팔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로 도입하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를 적용하면, A회사 최대주주는 거래를 시작할 날짜(거래계획 개시일)로부터 30일 전에 주식 매도계획을 사전 공시해야 한다.
이후 최대주주는 거래계획 개시일로부터 한 달 동안 주식을 팔 수 있다. 만약 주식을 팔았다면 기존과 마찬가지로 주식을 매도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거래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제도도입으로 일반투자자는 최대주주의 거래계획을 사전에 파악하고 사후 결과도 알 수 있게 된다.
사전공시제도는 24일부터 시행하지만 실제 사전공시의무 대상은 오는 8월 23일부터 매매결제가 이루어지는 거래부터 공시의무가 발생한다. 사전공시제도는 투자자에게 미리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이므로 법 시행일로부터 30일이 지난 매매거래부터 공시해야 한다.
국민연금·외국인 투자자 등 사전공시의무 면제
사전공시를 해야 하는 내부자는 누구일까.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모든 내부자를 사전공시의무 대상으로 본다. 다만 일부 예외를 뒀다.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 임원과 주요주주 등을 내부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사·감사 및 사실상 임원(업무집행책임자)이 임원에 해당한다. 또 의결권 있는 주식을 10% 이상 가지고 있거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주요주주에 해당한다.
다만 금융위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상대적으로 내부통제수준이 높고 미공개정보 이용 가능성이 낮은 재무적 투자자(펀드 등 집합투자기구, 은행, 보험사, 여전사, 금융투자업자, 벤처캐피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들은 사전공시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내 재무적 투자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도 사전공시의무 예외대상으로 분류했다.
금융위는 "투자전략 노출 위험이 있는 국내·외 재무적 투자자에 대해선 사전공시의무를 면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총 발행주식 1%, 50억원 미만은 사전공시의무 면제
또한 내부자가 소량의 주식을 팔때도 모두 사전공시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통해 일정 규모 미만의 소규모 매매 및 특정 거래유형에 대해서는 사전공시의무를 면제했다.
과거 6개월(거래개시일 기준)과 거래기간 중 합산한 특정증권 등의 거래 수량이 그해 상장회사 총 발행주식수의 1% 미만이고 거래 금액도 50억원 미만이면 사전공시의무를 면제 받는다. 총 발행주식수의 1%미만, 50억원 미만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 법령에 따른 매수·매도이거나 안정조작 및 시장조성을 위한 매매 등은 사전공시의무에서 제외했다. 아울러 상속, 주식배당, 주식 양수도 방식의 인수합병, 분할·합병에 따른 취득·처분, 담보가치 하락으로 인한 반대매매 등도 사전공시의무 대상이 아니다.
원칙적으론 거래계획 철회 불가... 주가 급변동땐 가능
사전공시를 올렸다면 내부자는 올린 계획대로 매매를 이행해야 한다. 또 원칙적으로는 사전공시로 올린 거래계획은 철회할 수 없다.
다만 금융위는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한 때는 거래계획을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사전공시를 한 보고자가 사망하거나 파산하고, 시장변동성이 커져 매매거래를 하면 과도한 손실(주가가 거래계획 보고일 전일 종가 대비 30%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이 예상되면 거래계획 철회가 가능하다.
또 거래 상대방의 귀책 사유로 매매거래를 이행할 수 없을 떄, 상장폐지·매매거래정지 등 시장상황이 급변할 때도 거래계획 철회가 가능하다.
아울러 사전공시한 내용과 다르게 매매규모를 줄이거나 늘리고 싶다면 거래금액 기준 최대 30% 내에서 변동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시장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사전공시의무자가 시장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만약 사전공시를 기간 내에 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하고 계획대로 매매거래를 이행하지 않을 시엔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위반자에 대해 시가총액, 거래금액, 위반행위 경중 등을 감안해 과징금을 차등 부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