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주식 투자의 가장 기본 원칙이자, 시장에서 돈을 버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이 원칙을 체계화한 벤자민 그레이엄과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은 이를 실천해 투자 대가로 자리 잡았다. 이들이 강조하는 '가치투자'란 좋은 기업을 싼 가격에 사서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이다. 이를 따르는 가치투자자들은 지금도 주식시장의 숨겨진 보석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보석을 찾았다고 끝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 보석이 언제 빛을 발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저평가 상황이라고 판단한 기업이 제 가치를 인정받고 주가가 오르기까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끝까지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투자 방식이 특수상황(스페셜 시츄에이션스, Special Situations)투자다. 인적분할, 인수·합병(M&A), 행동주의, 공개매수 등 기업이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 시장은 이에 반응해 가치를 재평가한다. 즉, 기업의 숨겨진 가치를 깨울 '명확한 촉매'가 발생하는 상황을 포착하는 전략이다.
해외에서는 특수상황 투자가 오랫동안 존재했다. 미국과 유럽의 헤지펀드들은 기업 이벤트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적극적으로 투자해 왔으며,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전략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비즈워치는 이 분야 전문가인 주종륜 미래에셋자산운용 헤지펀드운용본부장을 만나 특수상황전략에 대해 물어봤다.
주종륜 본부장은 컬럼비아 MBA 과정에서 특수상황투자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엘 그린블라트에게 직접 배웠으며, Allard Partners, Briarwood Chase 등 해외 헤지펀드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특수상황투자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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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세장에도 수익 추구…기업 주목받을 때 투자
주종륜 본부장은 "특수상황투자란 시장 상황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기업 고유의 이벤트로 움직이는 종목들에 대한 투자 방식"이라며 "이벤트를 통해 기업의 내재가치 가까이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시장이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주식은 시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기업이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상황에서는 약세장, 강세장 구분 없이 투자자의 이목이 쏠리므로 시황 영향을 덜 받는다. 실제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고려아연은 국내증시가 부진한 상황에서도 주가가 계속해서 급등했다.
기업의 이벤트로는 인적분할, M&A, 구조조정, 행동주의, CEO 변경, 공개매수 등 여러 상황이 있다. 주 본부장은 몇 가지 투자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주 본부장은 "인적분할 이벤트에 투자할 때는 2개 이상의 사업부문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분할하면서 재평가를 받는 상황을 주시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제조사업과 생수병 제조사업을 하는 기업이 있다면 사업간 연관성이 떨어져 제값을 받기 어렵다. 스마트폰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들은 생수병에 투자하기 싫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때 사업부를 분할하게 되면 각각의 사업부가 시장에서 제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되기에 분할 전 투자하고 분할 이후 매각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본부장은 "이 경우 만약 생수병 사업부가 스마트폰 사업부보다 규모가 작다면 분할 이후 기관투자자의 기계적 매도에 의해 주가가 회사 내재가치보다 떨어질 수 있는데 이 때 투자에 나서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례도 들었다. 주 본부장은 "글로벌 화장품 제조업체 록시땅은 실질적으로 유럽 기업이지만 홍콩에 상장돼 유럽의 애널리스트들이 분석을 하지 않고 있어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가 심했던 종목이었다"며 "그런데 최대주주가 공개매수를 시도했다가 자금부족으로 보류한 특수한 상황이 벌어져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홍콩에 상장해 있어 록시땅이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최대주주가 공개매수로 자진 상장폐지를 진행하고, 미국이나 유럽에 재상장해 차익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록시땅의 산하 브랜드 '솔데자네이로'는 2023년 한해간 900%의 성장을 기록했는데 이는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은 미국 화장품 기업 '엘프 뷰티'보다 높은 성장성을 기록한 것이었고 재상장시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 본부장은 "최대주주가 싸게 살 수 있을 때 공개매수를 다시 시도해 자진 상폐한 후 해외시장에 재상장해 차익실현을 거두려할 것으로 판단해 투자에 나섰다"며 "만약 공개매수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기업 가치평가 결과 '솔데자네이로' 가치만으로도 현재 시총의 1.7배를 가졌다고 분석해 향후 내재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란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의 판단대로 최대주주는 공개매수를 다시 시도했으며 주가는 상승했고, 차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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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지 않는 투자'가 기본…안정성 높은 전략
다만 그는 특수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무조건 투자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주 본부장은 "이벤트가 발생하더라도 기업 자체의 가치는 무조건 분석해서 투자해야 한다"며 "잃지 않는 투자를 원칙으로 삼고 내재가치 분석 후 하방경직성이 잡혀있다고 판단한 후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상황투자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들은 인적분할, M&A, 공개매수 등 이벤트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높은 투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 본부장은 가치투자를 기반으로 한 만큼 내재가치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해 오히려 안정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에 따라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에서도 그는 접근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분쟁이 치열해지면서 그가 평가한 기업가치 대비 주가가 크게 올랐고 투기의 영역에 올랐다는 판단에서다.
특수상황투자는 기업에 이벤트가 발생했다면 지역 구분없이 투자가 가능하다. 다만 일부 상황에선 차이점이 존재한다.
주 본부장은 "국내와 해외 특수상황투자에 큰 차이는 없지만 세부적으로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며 "해외기업이 인적분할을 할 때는 경영효율화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국내에서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계열사 간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거나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전략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어 "M&A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외국은 소액주주 지분도 함께 사들이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국내에서는 소액주주 보호장치가 잘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감안해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국내에서 특수상황투자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얼라인파트너스, 차파트너스 등 행동주의펀드들이 기업들에 주주환원을 요구하고 있고, 이 또한 특수상황에 속한다. 한국앤컴퍼니, 고려아연 등에서 진행된 M&A를 위한 공개매수도 특수한 상황이다. 주 본부장이 운용하는 펀드도 미국주식 비중이 가장 크지만 다음은 국내주식일 정도다.
개인이 접근하려면?…직접투자보단 펀드 활용이 유리
이 같은 특수상황투자는 개인이 직접 투자하긴 어렵다. 개인의 정보력과 기업의 내재가치 판단과 리스크 분석 등을 고려하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특수상황투자를 하는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투자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주 본부장은 "특수상황투자에 접근하고 싶은 개인투자자들은 역량을 갖춘 펀드에 투자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수상황 투자는 기회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또한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 본부장도 항상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장례서비스 기업 '캐리지 서비스'에 캐나다 장례기업 '파크 론'의 인수제안이 들어와 접근했는데, 추후 인수제안이 철회됐고 이후 업황이 꺾이면서 주가가 하락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투자에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한다. 따라서 여러 기업에 분산해 투자할 필요가 있는데, 개인이 여러 개의 기업 이벤트를 모두 추적해 분석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주 본부장은 "매달 초 글로벌 이벤트를 취합하고 재무제표, 유동성, 분식회계 등 기업가치 평가를 진행해 종목을 걸러내는 작업을 진행한다"며 "헤지펀드운용본부 내 인력뿐만 아니라 미래에셋자산운용 내 리서치인력을 활용해 특수상황을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서 특수상황에 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수상황펀드가 희소할뿐더러 주 본부장이 운용하는 '미래에셋글로벌특수상황펀드'가 있지만 사모펀드라 일반투자자의 접근이 어렵다.
해당 펀드에 간접투자를 하는 재간접형 공모펀드도 존재하지만 다른 사모펀드도 편입한 상품이라 100% 특수상황 투자에만 투자하는 방식은 아니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특수상황에 투자하는 공모펀드 출시를 구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