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목적 외의 석연찮은 계열사간 주식거래, 유상증자, 합병과 분할, 그러면서 실적과 무관하게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주가. 오너 일가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가를 누르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사는 이런 행동을 시장에선 '주가 누르기'라 불러왔다. 합리적인 의심만 있을 뿐, 마땅한 대책이 없어 한국 증시마저 눌러왔던 오너 일가의 '주가 누르기'에 대한 해결방안이 마련됐다.
재정경제부는 이른바 '주가 누르기'를 통한 상속세와 증여세 회피를 막기 위해 주가 누르기에 해당하는 행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에 대해선 별도의 방법으로 상장주식을 평가하도록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담은 세제개편안을 추진한다고 3일 밝혔다.업종별 PBR 최하위 그룹은 '주가 눌린 기업'
개정안의 핵심은 오너 일가에 의해 '눌러진 가격'이 아닌 '정상 가격'으로 상속주식 및 증여주식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 최하위 수준이거나 중복상장 및 교환사채(EB) 발행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상속 및 증여 시가평가액이 최근 3년간 주가평균보다 30% 이상 낮은 경우에는 별도의 주식 평가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PBR이 6년 연속해서 업종 최하위인 경우 주가 누르기로 추정한다. 코스피는 업종별 하위 25%, 코스닥은 업종별 하위 10%이면 주가가 눌린 저PBR기업으로 본다.
또 저PBR 기업이 아니더라도 최근 1년 내 중복상장, 교환사채 발행 등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기업 중 시가평가액이 3년 평균 주가보다 30% 이상 낮으면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본다.
조만희 재경부 세제실장은 "(저PBR 기업의 경우) 장기간 주가를 누른 사례로 보고 있고, PBR이 상당히 높더라도 주가를 누르는 경우가 있다"며 "중복상장이나 교환사채 발행 등으로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행위가 존재하면서 최근 3년간 시가보다 30% 이상 하락한 기업은 일단 주가 누르기를 한 기업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일단 주가 누르기 기업으로 구분되면 그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상속·증여세 평가심의위원회에서 주가 누르기 여부를 심의해 주식평가방법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납세자가 스스로 조세회피 목적이 없었음을 입증하면 현행 평가방법을 적용하지만, 입증하지 못하면 새로운 평가방법으로 국세청이 세금을 결정한다.
새 평가방법을 적용하면 상속증여일 전후 각 2개월 평균인 현행 주식 평가방법보다 납부할 세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저PBR 대상인 경우에는 현행 평가기준에 1.3배를 곱한 금액, 그리고 6개월,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6년6개월간의 각각 주식평가액 평균 중 가장 큰 금액을 주식 평가액으로 적용한다.
중복상장 등 부정행위 기업 중 현행 시가평가기준보다 30% 이상 주가가 하락한 기업도 6개월, 1년, 2년, 3년간 각각의 평균액 중 최대금액을 평가기준으로 삼아 세금을 계산한다.
정부는 새로 도입하는 '주가 누르기 기업'의 주식평가방법을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자간에 주식을 싸게 팔거나 비싸게 사주는 방식의 '저가양수 및 고가양도에 대한 이익증여 과세'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기로 했다.저PBR 업종별 차등, 이소영 의원안과 달라
정부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을 마련했지만, 관련 입법안을 가장 먼저 공론화한 것은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지난해 5월에 PBR 0.8 미만인 상장사의 상속증여 시 주식평가액 하한선을 순자산가치의 80%로 제한하는 내용의 상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첫 등장이다.
하지만 상법개정 등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 속에서도 1년이 넘도록 논의되지 않았다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입법속도 주문과 함께 세제개편안 의제에 포함됐다.
정부 세제개편안은 이소영 의원안을 보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의원안은 업종 구분 없이 일괄적으로 PBR 0.8배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업종별 고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지난해 11월 이 의원안의 입법검토보고서에서 "2025년 5월 기준 부동산업 평균 PBR은 0.32배, 금융업 평균 PBR은 0.65배로 낮지만, IT서비스업은 1.4배, 제약산업은 2.59배로 높다"며 "일률적인 PBR지수 기준으로 평가 방식을 달리하는 것은 업종 특성에 따라 상이한 PBR지수 성향을 고려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세부담 수준 형평성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주가 누르기 기업 판단 기준이 되는 저PBR 기업을 '업종별 최하위그룹'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업종 구분은 국제산업분류기준(GICS)를 활용해 국세청이 고시하는 구분을 따를 예정인데 구체안은 법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 담을 계획이다.저PBR기업, 주가부양책 쏟아낼까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실현될 경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가 하락을 유도 또는 방치해 왔던 기업들이 주가 부양책이나 주주환원책을 쏟아 낼 거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시행되면 펀더멘털은 안정적지만 기존에 주주환원이나 IR활동 등 외부소통이 거의 없었던 저PBR 기업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 연구원은 특히 "오너 지분율이 높으면서도 상속 및 증여를 계획하고 있는 저PBR 기업은 향후 적극적인 주주가치 제고 활동을 통해 저평가 해소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의 경우 납세의무의 현실적인 지원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분할납부(연부연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효과 역시 장기간에 걸쳐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속세는 일반적인 경우 최대 10년,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중소중견기업은 최대 20년, 증여세는 최대 15년까지 연부연납을 신청할 수 있다"며 "상증세법이 개정되면 과세표준이 많게는 몇 배나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납세의무자가 신청하는 연부연납 기간이 대게 늘어날 것이고, 연부연납 기간 동안 주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을 방지할 유인도 극대화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