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장은 전통적으로 외생변수가 많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 마다 케이블TV, DMB, 위성방송, IPTV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거나 활성화 됐다. 사업권 자체가 인허가 사항이라 대표적 규제사업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수 년 새 상황이 급변했다. 기술환경이 발전하면서 규제가 시장환경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떠오르는 미디어 플랫폼 이라 선전했던 것이 현재 폐업 직전에 놓이는 등 정부·정치권의 부채질이나 가이드가 맞질 않고 있다. 때문에 미디어 시장은 각자도생을 위해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격변기에 놓인 미디어 시장 환경과 기업들의 생존 전략을 살펴봤다. [편집자]

지난 2007년말 국내 미디어 업계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M&A)이 성사됐다.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보유한 국민유선방송투자(KCI)가 그해 8월 골드만삭스가 보유한 씨앤앰(현 딜라이브) 지분 28.48%를 약 6250억원에, 11월 이민주 당시 씨앤앰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65.15%를 1조4500억원에 각각 인수했다. MBK파트너스와 맥쿼리 컨소시엄이 씨앤앰 지분 92.63%를 총 2조750억원에 인수한 셈이다. 당시 씨앤앰 케이블TV 가입자수가 208만명 이었음을 감안하면, 가입자당 인수금액은 120만원을 넘어섰다.
MBK파트너스와 맥쿼리 컨소시엄은 씨앤앰의 투자가치를 왜 이렇게 높게 봤을까. 2007년 씨앤앰은 연결기준 매출 3681억원에 영업이익 915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률 25%에 달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케이블TV는 지역 독점사업이다. 게다가 씨앤앰의 방송권역은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가입자당매출(ARPU)가 높다는 점도 감안됐다. IPTV·모바일 방송 플랫폼이 등장하기 이전이라 사업성도 확실해 보였다.
상황은 불과 수 년만에 뒤집혔다. 지지부진 했던 IPTV특별법이 2009년 통과되고 서비스가 본격화 되면서 전국방송 경쟁자가 생겼다. IPTV와 위성방송뿐 아니라 방송과 통신 결합상품이 활성화 되면서 소비자의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또 2009년 스마트폰 보급과 2011년 4G LTE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모바일 방송 이용자가 급증했다. 급기야 2015년 씨앤앰 매출은 6029억원으로 2007년 대비 2배 가량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38억원으로 20%나 줄었다. 영업이익률로 보면 12%에 불과해 절반수준으로 떨어졌다. 영업이익 감소세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씨앤앰은 올초 딜라이브로 사명까지 바꾸면서 2조원 대 매각가격을 유지하려 하지만 시장이 보는 매입가치 1조원 대 수준과는 격차가 심하다. 최근에는 대주단과 인수금융에 대한 출자전환 및 만기연장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나 반대하는 기관들도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심영섭 박사는 "통상 투자기간을 3∼5년으로 보는 재무적투자자가 씨앤앰을 인수했으나 시장상황 판단을 잘못한 상황에서 재무적 성과를 올리기 위한 무리한 경영으로 퇴각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무적투자자는 늘어나지만 전략적투자자의 인수합병이 감소, 대신 기업 분할매각과 분할상장 등이 빈번해지는 추세"라면서 "전체적으로 생산성 향상이나 노동환경 개선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재무적투자자의 이익만 보존하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즉 MBK파트너스와 맥쿼리 컨소시엄의 투자회수 난항은 돈 냄새를 잘 맡는다는 사모펀드 조차 국내 미디어시장 환경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 "사업 접을 수 밖에 없다"
딜라이브 매각이 주춤한 틈을 타 CJ그룹이 선수를 쳤다. 작년말 케이블TV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현재 정부부처 심사과정에 있는데, 그 결과를 떠나 업계에 충격을 줬다. 1위가 사업을 접는 마당에 누가 생존할 수 있겠느냐는 하소연이다.
실제로 경남·마산·통영지역 케이블TV를 운영하고 있는 하나방송 이덕선 대표는 CJ헬로비전 매각 발표 직후 고민해왔던 속 마음을 털어놨다.
이 대표는 "우리는 CJ헬로비전과 경쟁을 오랫동안 해 온 만큼 CJ헬로비전을 편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도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은 아무 조건없이 허용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예상 외의 발언이다. 케이블TV 최고경영자(CEO)로서 통상적으로 CJ헬로비전 보다 더 큰 경쟁자가 들어서는데 대해 반대했어야 했다.
그가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찬성한 이유는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한 불신과 더이상 케이블TV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09년 전국 사업자인 IPTV가 출범했을 때 케이블TV는 전국 77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당시에는 동일서비스가 아니어서 동일규제를 할 수 없다며 특별법까지 만들었다"면서 "하지만 결국에는 (IPTV와 케이블TV가) 완전 대체제임이 판명났다. 오늘날 IPTV 사업자가 케이블TV 업체를 인수하게 된 것은 결국 정책실패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이블TV는 전국 77개 권역을 나뉘어 규모의 경제를 올리기 힘든 반면 IPTV는 전국사업권을 허용했으며, 케이블TV가 그동안 육성했던 콘텐츠도 '시청자의 볼 권리'라는 핑계로 IPTV에게 모두 넘겨주면서 통신을 기반으로 한 결합상품까지 허용했으니 더이상 경쟁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이 왜 매각을 결정했을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면서 "1위가 포기하고 나간 사업을 하위업체 게다가 개별SO들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미래부, 방통위는 이번 인수합병 여부를 심사하면서 케이블TV 산업의 존폐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법·제도를 바꿔 케이블TV가 생존할 수 있는 규제완화책(권역제한 완화, 통신사의 알뜰폰 사업불허 등)을 만들든지, 아니면 케이블TV가 M&A를 통해 엑스트(Exit) 할 수 있는 방안을 허용하든지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건은 단순 기업간 결합이 아니라,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법·규제가 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와 함께 앞으로는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책당국의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자료=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
◇ "법대로 합시다"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는 법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난 3월2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는 지상파방송 3사(KBS·MBC·SBS)가 케이블TV방송사인 CMB를 상대로 제기한 판매금지가처분 항고심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지상파방송 3사는 지난해 지상파 재송신 계약이 종료된 유료방송사들과의 재계약 협상과정에서 가입자당 재송신료(CPS) 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CMB를 상대로 디지털지상파방송 채널을 비롯한 방송상품 신규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기각 명령을 내렸고, 이번에 항고심에서도 기각결정이 선고된 것이다.
이처럼 지상파방송 또는 지역민방과 케이블TV 또는 위성방송(KT스카이라이프) 업체간 걸려있는 소송건수만 현재 53건이다. 소송 쟁점은 모두 재송신료다.
지상파방송이 비용을 들여 만든 콘텐츠를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이 가입자에게 돈 받고 재전송하려면 합당한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는게 옳다. 그러나 이는 전후사정을 모르는 단면이다.
불과 수 년 전까지 만해도 케이블TV가 지상파방송에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아무도 잘못이라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유료방송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은 정부로부터 공짜로 주파수를 받아 직접 방송전파를 송출하는 구조다. 통신사의 경우 수 조원 씩 주파수 비용을 지불하는데 반해 공짜로 주파수를 쓸 수 있는 이유는 방송의 공공성·공익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체 가정 중 지상파방송을 직접수신(유료방송을 통하지 않고 공시청 설비나 실내외 안테나를 통해 수신하는 형태)하는 가정은 10%도 안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시청 설비나 안테나를 달아도 수신되지 않거나, 수신되더라도 화질이 안좋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이론상으론 공짜로 지상파방송을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매월 수 천원에서 1만원 이상씩 돈을 지불하고 유료방송을 통해 지상파방송 및 기타 채널을 시청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만 됐으면 지상파방송과 케이블TV는 상호 윈윈한 구조다. 지상파방송은 직접 수신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케이블TV가 나서서 해결해 주니 광고매출을 올리는 등 재원마련을 쉽게 할 수 있고, 케이블TV는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지상파방송 콘텐츠를 무료로 서비스 할 수 있는 시스템 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료방송이 케이블TV 이외에도 위성방송, IPTV 등으로 늘었고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방송을 시청하는 형태도 증가하면서 부터 발생했다. 지상파방송 입장에선 이젠 케이블TV 만이 직접수신률 문제를 해결해줄 대안이 아닌 셈이다. 더구나 후발주자로 등장한 IPTV 업체들은 초반 시청자 확보를 위해 지상파방송에 콘텐츠료를 순순히 주기 시작했으니, 지상파 입장에선 케이블TV에게도 돈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유료방송 측 해석이다. 물론 지상파 측은 지금까지 돈을 받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니냐는 생각이다.
양측이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규제기관도 돈 문제는 소관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서니, 모든 분쟁이 법정으로 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유료방송간 소송문제는 단순한 법적 마찰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