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이 경쟁하는 유료방송산업은 연간 매출 규모가 5조원에 달하는 작지 않은 시장이다. 그러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IPTV-케이블TV의 대형 인수합병(M&A)이 무산되는 등 불확실성이 어느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를 둘러싼 쟁점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 그래픽 : 유상연 기자 prtsy201@ |
미래창조과학부는 종합유선방송(SO·케이블TV)의 전국 78개 사업권역 제한(지역 사업권)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료방송 발전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등 유료방송의 대체재가 증가하고 있으나, SK텔레콤-CJ헬로비전 등 IPTV-케이블TV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시장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졌다. 때문에 관련 업계의 투자·경영 위축을 해소할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배경을 좀 더 살펴보면, 케이블TV의 위기감은 꽤 오래됐다. 케이블TV, IPTV 등 유료방송업계 전체의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4조7000억원 규모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나, 케이블TV 매출액만 보면 지난 2013년 2조3792억원을 정점으로 작년 2조2590억원으로 감소세다. 이와 달리 IPTV는 같은 기간 1조1251억원에서 1조9088억원으로 성장했다. IPTV는 OTT 등 스마트폰 환경에 맞는 서비스를 도입해 유료방송시장 파이를 키웠다고 말하고, 케이블TV는 IPTV가 유료방송과 휴대전화 상품을 끼워팔면서 불공정한 경쟁을 해왔다고 본다.
이런 상황 속에서 1위 케이블TV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이 IPTV에 피인수되는 시도가 나왔으나, 그마저도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불허 의견에 의해 불발됐다. 이때부터 대책 마련에 나선 미래부는 케이블TV의 사업 권역 제한을 폐지해 사업자들의 경쟁과 M&A를 유도, 시장 활성화를 꾀한다는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다. 전국을 사업구역으로 하는 케이블TV 사업자를 내년 7월(3분기)부터 허용하고, 케이블TV 업계의 디지털 전환 완료 시점이나 2020년 상반기 중으로 권역제한을 폐지한다는 로드맵이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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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TV "권역제한 폐지 강행 문제다"
그러나 케이블TV 업계는 미래부의 방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권역제한을 폐지해 전선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자본과 마케팅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케이블TV는 도태되고, IPTV와 휴대전화를 함께 파는 통신사 위주로 산업이 재편될 것이 뻔하다는 이유다. 케이블TV와 비교해 체급도 특기도 뛰어난 사업자를 같은 링에 올리는 셈이므로 불공정한 경쟁조건이 조성된다는 얘기다.
피인수를 원하는 사업자도 반대한다. 특정 지역에서 독점적인 사업을 할 권리를 뜻하는 권역제한이 사라지면 기업가치가 떨어져 헐값에 팔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국 케이블TV 사업자를 허용하는 방안은 미래부 주도로 추진할 수 있는 고시개정 방식이 검토되고 있어 '강행'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래부는 유료방송발전방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두차례 공개 토론회를 열긴 했으나, 이번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케이블TV 사업자와 지역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미래부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이런 방안을 추진한다지만, 고시개정을 할 경우 그 과정이 필요 없으므로 강행에 가까운 것"이라며 "미래부 주도의 정책 달성과 IPTV 발전에 초점이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유료방송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SK텔레콤-CJ헬로비전 불허 의견에 속수무책이었던 점을 만회하려는 속내가 담겼다는 지적이 미래부의 유료방송발전방안을 논의한 연구반에서도 제기된다.
이와 함께 지역 MBC 광역화 선례에서 보듯, 지역 지상파 방송의 역할이 크게 축소된 상황에서 케이블TV 마저 IPTV에 흡수될 경우 지역 여론을 수렴하고 지역 권력을 견제하는 방송 채널이 사라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MBC 관계자는 "지역성 정책 축소와 관련 충분한 논의와 토론, 숙고, 논리적 타당성이 확인됐다고 할 수 없으므로 섣부른 정책 판단을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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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역 광역화는 대세다"
미래부의 정책 방향성이 타당하고, 시장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려면 오히려 정책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는 반박도 만만찮다.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OTT 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유료방송사업자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유료방송 보급률이 137%에 달하는 등 과포화 상황이라 가입자 증가 둔화는 불가피하다"며 "이런 어려움 속에서 유료방송 사업자는 인프라와 콘텐츠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나, 현재와 같이 파편화된 경쟁 구조에선 미래 전망이 불투명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인 KNN 관계자도 "OTT 서비스가 대세인 걸 알면서도 지역방송이 그것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비용절감은 한계가 있으나, 다른 지역 방송사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키우면 신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며 타 지역 방송사 지분 인수와 관련한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또 여러 개의 SO를 거느린 CJ헬로비전, 티브로드, 현대HCN 등 복수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도 대기업을 모회사로 두고 있으므로 자본력 부족을 권역제한 폐지 반대의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반박도 있다. 미래부는 "5개 MSO별 1개 SO 지역채널 평균 투자액은 11억9000만원으로, 전년보다 4억4000만원 감소했다"며 케이블TV도 지역성 구현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 심사숙고해야..결과는?
미래부의 유료방송 발전방안은 이처럼 한계를 노출하면서도, 피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 등 타당성도 갖고 있다.
다만, 이해 관계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점은 충분히 검토한 후 정책 대안이 추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케이블TV와 같은 유료방송을 돈벌이 방송산업으로만 볼 것인지, 여론 다양성과 지역성을 구현하는 매체로도 볼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의견 조율도 요구된다.
유료방송 발전방안 연구반 소속 한 교수는 "연구반 내에서도 권역 폐지 방안은 합의된 적이 없어 최종 폐지 여부가 미래부의 결정에 달린 상황"이라며 "기업형 슈퍼마켓(SSM) 정책 사례를 참고해 효율화만 추구하지 말고 사회적 필요가 있을 경우 지역방송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역제한이 풀린 이후를 가정해 대형 기업이 유료방송시장을 장악했을 경우 요금인상 등 시청자 피해를 예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이와 관련 "유료방송 사업자도 대형마트처럼 상품가격을 올릴 수 있다"며 "시청자가 요금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