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보들이 각종 공약을 내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ICT 정책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장기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 속 새로운 경제도약을 위해선 4차 산업혁명에 발빠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정책 및 정부조직의 한계점을 진단하고 새로운 정책 비전을 살펴봤다.[편집자]
지난 4월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방송통신위원회 차관급 상임위원 인사를 단행했다. 방통위원장을 비롯해 위원 3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행정 공백이 우려돼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불과 한달 뒤면 차기 대통령이 뽑히고 위원 3명이 공석될 것을 우려해 방통위가 이미 주요 결정사항을 앞당겨 정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돼 여야가 바뀔 것이란 계산을 염두하고 소위 '알박기 인사'를 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방통위가 여야 추천 위원들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라는 합리성도 있지만 이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쟁이 끊이지 않는 점은 한계다. 또 정책 결정에서 합리성 보다 정치적 목소리가 가미될 때가 많아 빠르게 변하는 ICT 기술변화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 ICT 역사에 획을 그을 중요 결정을 내렸다. SK텔레콤이 CJ오쇼핑과 체결한 CJ헬로비전 주식매매 계약을 불허한 것이다.
발단은 2015년 11월 SK텔레콤이 CJ오쇼핑 보유 CJ헬로비전 지분 30%를 5000억원에 사고, 남은 지분 23.9%를 5년 안에 사고파는 옵션을 보유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부터다. 같은 해 12월 SK텔레콤은 정부에 인수합병 승인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정부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종의 숙제였다. 이동통신사가 케이블TV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가 나올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정책과 법·제도가 기술변화를 못따라 간 사례다. 미래창조과학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의 고민은 무려 8개월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해당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경영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더욱이 정부의 고민이 'ICT 산업의 미래 관점에서만 이뤄졌을까'라는 의구심이 남았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 건에는 무수한 정치적·외부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견해가 정설로 남아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인 'ICT 산업정책'을 이끄는 정부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지 궁금하다.
◇ '민간 AI연구소 설립'…숨은 리더는 정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변화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진다. 향후 수 년내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고, 인공지능(AI)이 알아서 문제해결하는 시대가 온다. 사물인터넷(IoT) 서비스가 대중화돼 개인 생활은 물론 산업현장에서도 스마트 디바이스 의존도가 높아지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을 홀로그램 화면이 허공에 나타나 대화하는 일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관(官)이 민간기업 기술력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간 바둑대결로 AI가 부각되자, 정부가 들고나온 카드가 '기업형 지능정보기술연구소' 설립 추진이었다. 겉모습은 '기업형'이었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정부주도' 냄새가 강하다. 일각에선 정부가 개별 기업 연구개발(R&D) 활동의 걸림돌만 치워주면 됐지 왜 기업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비췄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창조센터)도 마찬가지다. 창조센터에 대한 공과는 다양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정권이 바뀐 뒤에도 대기업들이 투자한 창조센터가 지금처럼 존속될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창조센터 관계자는 "앞으로 추진하는 사업에서는 되도록이면 '창조경제'라는 단어를 빼기로 했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유지될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창조센터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 "이건 미래부, 저건 산업부, 아! 그건 문체부야"
현재 정부조직 구조상 4차 산업혁명 정책을 이끌 주무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다.
그러나 ICT 콘텐츠 개발지원은 미래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쪼개진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여기에 방통위는 또 다른 시어머니 격이다.
ICT 정책을 이끌어가는 정부기관이 산재해 있다보니 법·제도가 기술변화를 못따라 갈 수 밖에 없다.
ICT 기술의 기반이 될 기초과학 문제도 나온다. 현재 미래부가 과학기술과 ICT 정책을 통합하고 있지만 두 영역이 물리적으로만 결합됐을 뿐 화학적 결합은 안되고 있다. 미래부 내 공무원끼리도 과기부 출신과 정통부 출신으로 갈리는 분위기다.
박진호 숭실대 소프트웨어융합센터장은 "현재 ICT 정책은 미래부, 방통위, 산자부, 문체부, 행자부 등으로 파편화 된 상태"라면서 "새 정부의 ICT 컨트롤타워는 4차 산업혁명과 ICT를 통해 국가 사회전반을 혁신시키는 부처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요금규제까지 우리가"…정부의 막강파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의 규제 범위도 좁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ICT 산업의 상당수가 국가기간 산업인 만큼 정부규제는 필요하나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작동돼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적 사례가 요금·가격 규제다.
오는 9월 일몰제가 다가온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은 불법 보조금 문제를 해결했다는 긍정요인도 있으나 소비자 편익 대신 통신사 배만 불렸다는 부정요인도 존재한다. 즉 법·제도로 강력한 규제를 만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도 또다른 부적용을 낳는다는 원칙이다.
선거철만 되면 표심을 등에 업고 나타나는 통신요금 할인 공약도 마찬가지다. 통신요금을 낮출 경우 당장은 소비자 이익으로 계산되지만 이익이 줄어든 기업입장에선 다른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을 얻어내려 할 것이고 기술개발·투자요인이 감소할 수 있어 전체 효용을 떨어질 수 있다.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규제범위도 좁히고, 규제방법도 사전규제 대신 사후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는 지적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ICT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면서 "방송통신시장과 인터넷 시장을 통합적으로 규율하는 규제체계를 설계하는 동시에 사업자 자율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