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정거장을 지나자마자 운전자가 핸들을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는다. 누구의 손도 올려져 있지 않은 자동차 핸들이 홀로 부드럽게 돌아간다. 불법 주·정차된 차량이 있으면 차선을 바꾸기도 하고, 보행자와 도로 위 다른 차량을 비롯한 교통 상황에 따라 운전한다. 승객들이 볼 수 있는 내부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주변을 지나가는 차량과 차선이 표시된다.
27일 오전 경기 안양시 스마트도시센터에서 출발한 자율주행버스 '주야로'가 주간노선을 달리는 모습이다. 주야로는 약 15분이 되지 않는 시간 내에 동안구청, 안양시청, 종합운동장을 거쳐 비산체육공원까지 약 6.8km를 달렸다. 라이다 센서 4개와 레이다 센서 1개, 카메라 5개가 주야로의 눈이 된다. 안양시 곳곳에 설치된 방범·교통 CCTV를 관제하는 '통합관제센터' 인프라도 주야로의 주행을 돕는다.
아직까지 주야로가 완벽하게 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출입문을 열고 닫는다거나 돌발 상황, 눈·비 등 궂은 날씨에는 운전자가 수동으로 조작한다. 자동차가 대부분 스스로 운전하지만 특정 환경에서 사람이 개입하는 '조건부 자율주행', 레벨3 단계다. 지금까지 주·야간노선을 통틀어 자율주행 거리는 2155km, 수동주행거리는 494km다.
거친 운전기사가 모는 시내버스를 탔을 때처럼 순간적으로 급정거를 할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일반 버스와는 다를 바가 없었다. 최대 속력이 시속 40km로 제한되어 있어 일반적인 시내버스에 비해 운행 속도는 느린 편이다. 동승한 KT 관계자는 "안전을 더 먼저 생각하도록 설정한 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고 말했다.
안양시 ITS 기반 자율주행…사고율 0% 목표
KT는 2016년부터 자율주행 승용차와 버스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자율주행 사업을 추진해왔다. 지금까지 총 14개 지자체와 1만340km에 달하는 디지털 도로를 구축했으며, 안양시뿐만 아니라 판교신도시와 서울 등에서 다양한 자율주행 서비스를 구현했다.
안양시가 KT와 함께 추진한 이번 시범사업엔 KT의 자율주행 기술이 대거 접목됐다. 과거와 현재 데이터를 AI(인공지능)로 학습해 교통상황을 예측한 '로드 마스터'와, V2X(차량·사물통신)와 자율주행차량, 도로 인프라 위치관리가 가능한 클라우드 기반 운영 플랫폼 '모빌리티 메이커스' 등이다. 빠른 데이터 분석을 위한 5G 네트워크,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자율주행 IVI(차량용 인포테인먼트)도 갖췄다.
최강림 KT 모빌리티사업단장(상무)은 KT가 보유한 기술 중 RTK 초정밀측위에 특히 자신을 드러냈다. RTK 초정밀측위는 기준국으로부터 위성신호를 받아 AI 플랫폼이 GPS 오차를 보정하는 기술이다. 최 단장은 "KT는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KT 자체 기준국 20곳을 구축했는데, 전국 커버리지가 99%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주야로가 타 자율주행 사업과 차별화되는 점으로 안양시와 구축한 ITS(지능형교통체계)를 통해 안전성을 높였다는 점을 꼽았다. 대부분 자율주행 셔틀버스가 정확한 경로를 답습해 움직인다면, 주야로는 ITS 기반으로 도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일반도로에서도 안전하게 주행한다는 설명이다. 최 단장은 "자율주행은 안전성 95%, 98%가 아니라 100%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타는 자율주행 버스는 사고율 0%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주야로, 대중교통 사각지대 달린다
주야로는 지난 4월 22일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오는 8월 14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경기교통공사의 '똑타' 플랫폼을 통해 예약을 받는다. 시범사업을 마치고 나면 민간 운수사에 위탁해 마을버스 수준의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자율주행버스가 '반짝' 체험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운송을 대체하는 수단이 되겠다는 포부다.
지자체인 안양시가 자율주행버스 사업에 뛰어든 이유 중 하나는 대중교통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인덕원에서 출발해 평촌역까지 가는 야간노선은 평소 유동인구가 많아 시민들의 수요가 충분하다. 그러나 심야버스의 특성상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데다 수익이 나지 않아 운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운전자 없이 운행하는 자율주행버스는 이러한 대중교통의 허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
KT는 미래에 운전자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차량인 '레벨 4' 단계까지 주야로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최 단장은 "기술적 측면에서 제한된 구역 내 자율주행차량 운행은 2027년이면 충분히 준비가 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레벨 3이지만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고도화하면 레벨 4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