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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신약개발 베테랑, 우주의학 꽂힌 이유

  • 2025.02.06(목) 08:30

김병호 스페이스린텍 본부장
JW그룹 신약연구센터장 출신
"우주 의약품 개발, 생산 잠재력 커"

김병호 스페이스린텍 우주의학사업본부장이 지난달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스페이스린텍 기흥사업장에서 비즈워치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윤화 기자 kyh94@

"당신은 우주정거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가?"

지난 2023년 한국을 방문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15년 뒤면 우주에 연구원이 상주하며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워즈니악은 1976년 모든 가정집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자리잡을 것이라며 애플을 창업했다. 사람들은 허황된 생각이라며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한 모든 일은 모두 이뤄졌다. 1998년 미국의 개인용 컴퓨터(PC) 보급률은 50%를 넘었고 이후 애플은 스마트폰 혁신마저 선두하며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머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20년 전부터 우주정거장(ISS)에서 신약을 개발했다.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미세중력환경에선 고품질의 의약품을 쉽게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ISS가 2031년 퇴역하면 민간 우주정거장이 들어선다. 우주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우주의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워즈니악의 한국 방문 기념 강연회 한켠에는 김병호 스페이스린텍 우주의학사업본부장(전 JW중외제약 C&C신약연구소 신약연구센터장)도 있었다. 김 본부장은 당시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찾으라는 특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제약기업 한 곳에서 23년 동안 신약개발 업무를 하며 임원 자리까지 올랐으나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워즈니악의 꿈 같은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지난달 15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스페이스린텍 기흥사업장에서 김 본부장을 만났다. 우주의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눈은 원하던 직장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처럼 빛났다.

김 본부장은 "연구원 생활을 23년간 하며 건강이 많이 상했다. 퇴직을 한 후 도서관에 있는 우주의학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다. 그러던 중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로부터 제안이 왔다"며 "우주의학산업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은 새로운 도전을 축하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윤학순 미국 노퍽주립대 신경공학과 교수가 2021년 세운 신생 벤처기업이다. 사업모델은 한 마디로 '우주 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이다. 지구의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위성이나 우주정거장에서 신약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우주 저궤도에서 단백질 결정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한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의 '위네바고 1호(W-1)'./사진=바르다스페이스인더스트리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우주의학기업인 바르다 스페이스는 이미 우주에서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는 전용 캡슐(모듈)을 개발했다. 이 캡슐은 지난 2023년 6월 300kg에 달하는 에이즈 치료제 리토나비르를 싣고 우주로 떠났다. 이어 지난해 2월 기대했던 결과물을 들고 귀환했다. 

김 본부장은 "머크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우주정거장에서 실험한 논문에서 미세중력환경에서 더 균일한 항체를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우주로 의약품 생산모듈을 보내는 비용을 고려해도 지구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퍼스트무버"

김 본부장은 미세중력 환경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스페이스린텍과 관련 니즈가 있는 제약사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입사 이후 여러 전통 제약사를 만나며 기술을 소개했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던 중 동아에스티의 ADC(항체약물접합체) 개발 자회사인 동아앱티스가 스페이스린텍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함께 하기로 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인하대병원 등 다른 연구기관과 컨소시엄을 꾸렸고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국책 과제('제2차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성과를 냈다.

김 본부장은 "벤처기업이 한국형 ARPA-H 과제의 주관기업으로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우리의 모듈에 동아앱티스와 KIST의 단백질을 탑재해 우주에서 결정을 만들고 이를 인하대병원, 하버드 의과대학 등이 평가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올해 하반기 누리호 4차 발사에 자체 개발한 신약개발 연구 위성을 함께 실어 보낼 예정이다. 국내 우주의학업계 최초로 2개월간 우주에서 단백질 결정 성장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자금은 강원도에 미세중력환경을 일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드롭타워 등의 개발에 쓰일 예정이다. 실제 우주에서 사용할 모듈을 평가하기 위한 시설인데 최근에는 세포유전자치료 분야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드롭타워에서 미세중력을 구현할 수 있는 몇초동안 세포에 유전자를 주입하는 트랜스펙션이 중력환경보다 효율적인 것을 확인했다"며 "만약 성공하면 트랜스펙션이 어려운 CAR-NK(키메릭항원수용체 자연살해) 등의 여러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이스린텍은 한국에서 우주의학을 선도하는 퍼스트무버"라며 "연구원으로 입사해 임원이 됐던 것처럼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목표다. IPO(기업공개)를 통해 회사의 가치를 인정받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도 마련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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