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약 '젭바운드'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후속 약물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라이릴리의 이 같은 행보로 국내 바이오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지 관심이 모인다. 특히 일라이릴리가 RNA(리보핵산) 기반의 치료제를 집중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국내 바이오기업과의 파트너십이 기대된다.
1년간 기술도입 10건
21일 비즈워치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일라이릴리의 기술거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후보물질을 도입하기 위한 기술이전 및 인수합병(M&A) 거래는 총 10건으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국내기업 두 곳(올릭스·알지노믹스)도 포함돼 있다.
일라이릴리는 올 들어 외부 파이프라인(후보물질)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5월 동안 일라이릴리가 체결한 기술이전 건수는 2건(아이소모픽랩스, 액티스)에 그친 것과 비교된다.
일라이릴리가 파이프라인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지난 2023년 11월 출시한 비만약 '젭바운드'의 시장 흥행 성공으로 투자 여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라이릴리의 지난해 연매출은 450억달러(62조원)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매출 성장을 이룬 주역은 젭바운드였다. 작년 젭바운드는 한 해 동안 매출 115억달러(16조원)를 거두며 같은 기간 124% 성장했다. 올해 1분기에도 일라이릴리는 젭바운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45%의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일라이릴리는 젭바운드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올해 매출 성장률을 시장 기대치인 50%보다 낮은 34%로 제시했다. 미래 성장을 위한 선제적 투자를 감안한 결정이다.
루카스 몬타르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월 열린 연간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혁신과 미래 성장을 이끌기 위한 R&D(연구개발) 투자가 우리 사업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며 "이러한 관점에서 40~50%대 높은 성장률을 목표로 삼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RNA에 꽂혔다
일라이릴리의 파이프라인 투자 확대는 국내 바이오기업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1년간의 기술도입 흐름을 보면 일라이릴리는 RNA 치료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만약 일라이릴리가 또 다른 국내 기업과 손을 잡는다면 그 분야는 RNA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1년간(2024년 5월~2025년 5월) 총 6곳의 기업으로부터 RNA 기반의 후보물질을 도입했다. 지난해 8월에는 RNA를 비롯한 유전자치료제 R&D 센터를 미국 보스턴에 개소했다. 올해 일라이릴리와 계약을 맺은 국내 기업 두 곳 역시 모두 RNA 치료제를 이전했다.
반면 예상과 달리 비만약 파이프라인 확보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젭바운드를 이을 후속 파이프라인을 자체적으로 구축한 상태여서다. 지난 1년간 일라이릴리가 도입한 비만 파이프라인은 하야테아퓨틱스의 RNA 기반 비만 치료제 한 건에 그쳤다.
일라이릴리가 RNA 치료제에 꽂힌 이유는 그동안 주력하던 비만, 당뇨 등의 대사질환 영역에서 RNA 치료제가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노바티스의 RNA 기반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렉비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렉비오의 지난해 매출액은 7억5400만달러(1조400억원)로 전년대비 114%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이 약물은 6개월에 단 한 번 투여로 기존 치료제를 대체할 수 있는 강한 약효를 임상에서 입증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ADC(항체약물접합체)에 이어 RNA 치료제의 시장성이 입증되면서 일라이릴리가 관련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있다"며 "자금 여력이 넉넉해진 만큼 새로운 기업과 파트너십뿐만 아니라 기존 파트너와 협력 관계를 강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