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동파육에 담긴 진짜 이야기

  • 2013.12.13(금) 08:31

유명한 중국 돼지고기 요리 중에 동파육(東坡肉)이 있다. 삼겹살 덩어리를 통째로 소흥주로 삶아 간장에 장시간 조려 만드는데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고, 입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동파육은 소동파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소동파의 마음이 담긴 것으로 유명한데, 전설을 자세히 보면 미처 몰랐던 여러 상징적 의미가 있다.

다음은 동파육의 유래다. 송나라 때 소동파가 장쑤성 쉬저우(徐州) 지사로 있을 무렵, 큰 물난리가 났다. 이때 소동파가 병졸과 백성을 지휘해 제방을 쌓아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것을 막았다. 홍수가 지나간 후 백성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돼지를 잡아 보내자 소동파는 주민의 마음만 받았을 뿐 돼지고기는 돌려보냈다.

소동파는 이후 지금의 저장성 항저우(杭州) 자사를 역임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양자강이 범람하자 제방을 쌓아 도시를 구했다. 소동파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백성들이 역시 감사의 표시로 돼지고기를 보냈고 이번에는 소동파 자신이 개발한 요리법으로 고기를 요리해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동파육은 이때 생긴 이름이다.

소동파가 처음 돼지고기 요리인 동파육을 만든 것은 1080년이다. 소동파가 필화사건에 얽혀 지금의 후베이성 황저우(黃州)에 좌천되어 갔을 때 '돼지고기 예찬'이라는 시를 쓰면서 돼지고기 요리를 해먹었다는 것이다.

"황주의 맛좋은 돼지고기, 값도 아주 싸지만 / 부자들은 먹지 않고, 가난한 자는 먹을 줄 모른다 / 매일 아침 일어나 한 그릇씩 먹으면 / 배가 불러 천하가 태평스럽다"

그런데, '돼지고기 예찬'이라는 시에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소동파는 중국인들이 마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처럼 묘사했다. "부자들은 먹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먹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식과 많이 다르다.

사실, 소동파가 살았던 11세기 송나라 때 상류층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송은 당시 주변 강대국인 거란족의 요(遼), 여진족인 금(金)의 압박을 받았는데 군사적 영향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향도 많이 받았다. 유목민인 거란족은 돼지고기를 싫어하고 양고기를 먹었기에 한족 사회에서도 상류층은 돼지고기를 멀리하고 양고기를 즐겼다. 부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값이 형편없이 싸다고 소동파가 노래한 이유다.

또 하나, 동파육이 발달한 지역도 특징이 있다. 소동파가 처음 백성들이 바친 돼지고기를 돌려주었다는 쉬저우는 지금의 장쑤성(江蘇省)이다. 처음 돼지고기를 요리한 황저우는 후베이성(湖北省), 그리고 동파육의 이름이 퍼진 항저우는 저장성(浙江省)이다. 이들 지역은 후난성(湖南省)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농경지역인 강남지방이다. 송나라 때 북방 이민족과 대치했던 지역들이다.

동파육의 탄생배경, 동파육의 전설이 만들어진 이면에는 이렇게 한족인 농경민족과 북방의 유목민족, 그리고 그들의 음식문화인 돼지고기와 양고기 문화의 대립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송나라가 이민족에 핍박당할 때, 그들과 타협하며 무기력했던 지배층과는 달리 돼지고기로 상징되는 한족의 백성을 돌보고 동시에 그들의 음식인 돼지고기까지 사랑했던 소동파에 고마움의 표현이 들어 있다. 백성들에게 눈높이를 맞춰준 지도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