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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맛도 없는 맛 '제비집 수프'

  • 2014.07.04(금) 08:31

 

제비집 수프는 최고의 중국요리로 청나라 황제들은 하나같이 제비집 요리에 빠져 지냈다. 음식사치로 유명했던 서태후의 생일상에 모두 스물네 가지의 요리가 차려졌는데 디저트 네 종류를 빼고 일곱 가지가 제비집으로 조리했다. 서태후의 남편인 함풍제의 섣달그믐날 저녁상에 오른 열여덟 가지 요리 주에서도 여섯 가지도 제비집 소스로 만든 음식이다.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건륭황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제비집 수프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하고 마지막 황제 부의에 이르기까지 청나라 황제들은 하나같이 제비집 요리를 즐겼다. 청나라 황제들은 왜 이렇게 제비집 요리를 좋아했을까?

제비집은 금사연(金絲燕)이라는 바다제비가 절벽에 지은 집이다. 지푸라기나 풀로 집을 짓는 보통 제비와 달리 바다제비는 식용이 가능한 해초를 물어다 자신의 분비물과 섞어 집을 짓는 까닭에 이 둥지를 따다가 가공해서 요리재료로 쓰는 것인데, 주성분은 단백질과 다당류, 그리고 소량의 미세원소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중국인들은 제비집이 장수에 도움이 되는 보양식이라고 믿는다. 호사가들은 여든여덟 살까지 산 건륭황제가 중국 최장수 황제가 된 비결과 서태후가 나이보다 20년은 젊어 보였던 이유로 제비집 요리를 꼽는다. 제비집 요리를 매일 먹으면 그만큼 젊어지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제비집이 좋다고 믿는 또 다른 이유는 귀했기 때문이다. 제비집은 동남아에서 소량만 채취했는데 주로 베트남 등지에서 조공품으로 진상했던 품목이었다. 얼마나 제비집을 귀하게 여겼는지 중국과 교역을 원했던 네덜란드에서는 건륭 60년인 1795년, 제비집 100근을 구해 보내며 중국과 거래를 추진했다. 우리나라 정조실록에 실려 있는 기록이니 당시 아시아에 소문이 쫙 퍼졌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렇게 귀하게 여겼던 재료인데 서태후의 생일상을 비롯해 역대 청나라 황제의 식단을 살펴보면 제비집과 관련해 특별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최고급 요리재료라면서 제비집 자체의 맛을 즐기는 요리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모두 다른 음식을 조리하는 보조 재료로 제비집을 사용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제비집 수프 역시 제비집을 베이스로 상어지느러미인 샥스핀이나 해삼, 죽순, 송이버섯 등의 다른 재료를 조리해 만드는 음식이다.

비싸다는 제비집을 왜 이렇게 이용하는 것일까? 제비집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맛도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이 없는 제비집이 최고의 요리 재료로 대접받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미무미(至味無味)', 최고의 맛은 아무 맛이 없는 맛이라고 한다.

밥은 특별한 맛이 없지만 밥이 있어야 반찬이 진짜 맛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밥이 주식이 되는 이유도 바로 아무 맛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제비집이 황제들이 청나라 황제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제비집이 지미무미의 극치였기 때문이다. 

청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미식가였던 원매(袁枚)가 제비집 요리를 빗대어 "귀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 소문만 듣고 알려진 명성만으로 지레 맛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다. 제비집은 마치 평범한 사람과 같아서 자체만으로는 아무 맛이 없지만 진정한 가치는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뤘을 때 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음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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