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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불황기의 비상출구

  • 2015.02.04(수) 11:10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불안을 막기위해선 사회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또 경제력집중으로 약화된 소비 수요기반을 복구하려면 불가피하게 후생과 복지가 확대돼야 한다. 불황기 일수록 사회안전망 확충과 복지후생 확대는 경제적 약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하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요즘 논란이 일고 있는 `증세 없는 복지`는 기왕의 지출을 줄이고 그만큼 복지 지출을 늘이겠다는 뜻이지만, 한번 지출되기 시작한 예산을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현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이다. 아니면 유명무실한 이름만의 복지가 된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시민으로서 절대 의무인 담세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는 조세정의(tax justice)는 공정한 사회의 출발점이다. 특정인이나 계층에게 차별이나 이익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평등한 사회라고 해서 봉건사회의 인두세(人頭稅)처럼 사람, 가구 숫자에 따라 똑 같은 세금을 매기는 것은 플라이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를 같은 링 위에서 싸우게 하는 불평등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불평등도 문제지만, 부동산소유 비중, 주식보유 비중, 거액예금 같은 자산 보유 현상을 관찰할 때, 소유의 불평등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사회전반에 걸쳐, 소득불평등보다 소유의 불평등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은 이래저래 조세정의가 확보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지금처럼 경제력 집중이 극심해지는 환경에서는 초과누진세율을 과감하게 높이는 일이 바로 조세정의를 확보하는 길이다. 초과누진세(超過累進稅)는 각 과세단계의 경계에 있는 한계소득자(限界所得者)의 세 부담을 불리하지 않게 하여 불만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초과누진세 상승에 대한 당위성을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공동체가 성장하고 발전해야 소비수요가 창출되고 결과적으로 기업가는 그만큼 돈을 벌 수 있으며 근로자도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 포드자동차나 GM이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자동차를 살 여력이 있을 만큼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동시에 고속 도로망을 발달시켜 자동차가 내구소비재가 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고속도로는 포드나 GM의 돈이 아니라 국민세금으로 건설한 것이다. 자동차회사들은 사회발전의 혜택을 받아 돈을 많이 번만큼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그만큼 더 많이 부담해야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다.

워런 버핏 같은 부자들이 스스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자본이득(capital gain) 세율을 높이는데 앞장선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보유자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탁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커다란 부를 축적한 것은 그들 자신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발전한 결과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음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이 돌게 해야 빈부격차를 줄이고 소비수요 창출을 통해서 좋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까닭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어 누구도 미래를 장담하지 못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는 공동의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금리를 시장 상황에 맞추어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조치와 함께 합리적 증세를 통한 조세정의 확보는 오늘날 한국경제 주변에 어른거리는 불황의 그림자를 헤쳐 나가기 위한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다.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이 초과누진세율을 최고 80%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올려 그 재원으로 복지 후생에 진력하여 유효수요를 진작시키고 결국 대공황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본주의 역사의 커다란 교훈이다.

사회가 안정돼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소비 수요가 확장돼야 기업가도 돈을 더 벌 수 있고 가계도 튼튼해진다.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 좌고우면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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