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에서 30년간 의류업을 해온 무개념 사장은 최근 몇 년간 불어닥친 '요우커(遊客, 중국 관광객)' 열풍의 수혜자다. 중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은 현금 다발을 내밀며 한국 연예인 풍의 옷들을 끌어간다. 가게 매상이 올라 우선 행복했고, 관광객들의 현금매출은 세금 탈루 역시 쉽다는 점에서 재미가 쏠쏠했다.
깍쟁이 한국인들이야 5000원짜리 면티 한장 사고도 신용카드를 내밀기 일쑤지만,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십만원이 넘는 제품도 달러나 5만원권을 흔쾌히 내어주기 때문이다. 꽤 많은 자금을 모으게 된 무씨는 주상복합아파트나 수익형 상가에 투자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한편, 무씨 가게 근처에서 비슷한 매장을 운영하는 왕배짱 사장은 1년 전에 강남에서 15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였다. 역시 무씨와 마찬가지로 매장이 잘되어 쌓인 돈을 꿈에도 그리던 강남아파트에 투자한 것이다. 그러나 왕씨는 1주일전 세무서로부터 부동산 취득자금에 대해 소명하라는 통지서를 받고 황당해 하고 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사실 국세청 입장에서도 현금매출 누락분을 잡아내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특히 의류업 같이 제품의 다양성이 크고 단가는 낮은 제품들을 취급하는 사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매출원가나 재고자산 등을 조사한다고 해서 뚜렷한 매출누락의 증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업자와 가족들 혹은 직원들의 통장거래내역을 뒤져 수상한 거래내역들을 추적할 수도 있겠지만 관광객들을 주로 상대하며 현금으로만 축적할 경우 아무리 금융자료를 조사한들 헛일이다. 자료상을 쓰지도 않고 의심쩍은 거래내역도 남기지 않은 채 재고자산 감모손실 등으로 매출수량을 맞춰둔다면 종합소득세 신고시 그럴싸한 모양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더군다나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주변 분위기에 맞춰 어느정도 세금을 내는 치밀함까지 더해지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탈세신고납부'가 마무리 된다. 무씨와 왕씨 같은 사업가들이 대규모의 세금을 탈루한채 다년간 국세청의 감시망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평소에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탈세를 일삼다가는 자금운용에 대한 제약을 크게 받게 될 수밖에 없다. 겁 없이 고가의 부동산을 구입했다 세무조사를 받게되는 왕씨처럼 말이다.
IT 강국인 대한민국의 국세청답게 최신 전산시스템이 세정업무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중 PCI시스템은 납세자의 자산(Property)과 소비(Consumption), 그리고 소득(Income)내역을 자동으로 분석하여 세무조사 대상자를 추출한다. 기본적으로 벌어들인 소득범위 내에서 자산의 구입이나 소비지출이 이뤄져야 하므로 일정 한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전산으로 비교 검증하여 소득신고 불성실자로 추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연간 소득은 5000만원으로 신고한 사람이 신용카드로 매년 1억원 이상씩 소비하고 10억원 이상의 고가부동산을 구입한다면 아마도 소득신고 누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왕씨의 경우처럼 말이다.
왕배짱씨는 연간 소득은 5000만원 밖에 신고하지 않았으나 강남 아파트 15억원 짜리를 구입했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부동산을 구입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왕씨는 매년 2억원 이상의 매출누락에 대한 5년간의 종합소득세를 추징당하여 꿈에 그리던 아파트도 되팔고, 뒷 주머니에 챙겨놨던 현금도 탈탈 털리게 된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무개념 사장은 주상복합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분양받으려 했던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깊이 깨달았다. 그저 순간만 피하면 되는 세금이라 생각했는데, 국세청이 이토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씨가 PCI 시스템을 설사 피한다해도 추후 세무조사시 얼마든지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특히 상속세 조사시에는 최대 15년치 금융거래내역에 대한 탈세여부를 검증 받게 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해법은 정당하게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정직한 세금을 성실하게 신고납부하는 것이다. 법인 전환이나 신설법인 창업, 공동사업 활용, 가업승계세제 등을 활용한 합법적인 절세행위를 추구하는 편이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대안이 된다.
아무 개념 없이 눈 앞의 세금만 그저 피하려 하다가는 머리맡에 장작불을 쌓는 꼴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세청이 모를 것이란 기대는 불안감만 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