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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 ①

  • 2016.11.25(금) 16:00

기업하는 목적이 이윤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3가지 이유
회사에서 비판 잘해 영웅되는 방법
회장님 전상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였으니 움직일 것이라고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진 게 도화선이 됐다. 대통령 연설문이 중요한 것은, 연설문의 내용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연설문 토씨 하나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연설문 쓰기의 엄중함을 알려준 책 `대통령의 글쓰기`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2014년 2월에 펴냈다. 

 

저자는 같은 해 12월 `회장님의 글쓰기`도 발간했는데, 이에 앞서 비즈니스워치에 40회(2014년 7월~9월)에 걸쳐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를 연재했다.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는 `회장님의 글쓰기`의 초본인 셈이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  2년 전에 게재했던 원고를 10회 분량으로 편집해 다시 싣는다. [편집자]

 

 

 

기업하는 목적이 이윤이라고 말하면 안되는 3가지 이유

 

고리타분한 얘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명분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인은 실리를, 일본인은 의리를, 우리는 명분을 중시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분명한 건 있다. 기업 회장이나 사장은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언젠가 회장이 물었다.

 

강 상무, 기업을 왜 한다고 생각합니까?”

돈 벌기 위해서 아닌가요?”

이 사람 큰일 낼 사람이네. 어떻게 돈이 기업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 회장에게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된다. 회장의 목에 거꾸로 박힌 비늘을 건드린 것이다.

 

회사에서 글쓰기는 명분 만들기이다. 회장은 다 가진 사람이고, 더 가지려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존경받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잘 포장해주는 직원을 좋아한다. 더 가지려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직원을 총애한다. 나아가 회장 스스로 자기를 멋있고 훌륭한 기업인으로 착각하게 해주는 직원을 대우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명분이다.

 

명분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리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근거이다. 스스로 납득하고 떳떳할 수 있게 해주는 논리 같은 것이다.

 

명분은 세 가지 용도로 쓰인다. 첫째, 회장 스스로를 다잡는 역할을 한다. 회장은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이다. 회장을 제어할 사람은 회장뿐이다. 바로 그 견제장치가 회장 스스로 표방한 명분이다. 명분은 사적인 욕심만이 아니라 공적인 눈치를 보게 함으로써,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둘째, 임직원을 설득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사람들은 정당하다고 생각할 때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서 행동하는 힘이 강하다. 전쟁도 명분이 없으면 집단 살인 행위가 되며, 여기에 목숨 바칠 병사는 없다. 97년 말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애국이란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다. 경영은 위기관리다. 어느 기업할 것 없이 위기는 반드시 닥친다. 그랬을 때 축적해놓은 명분은 그 기업을 도와주고 살려야 할 이유가 된다.

 

20084삼성사태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이 20103월 경영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큰 저항에 맞닥뜨리지 않고 경영에 복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평소 쌓아둔 명분이 힘을 발휘했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강력한 리더십과 오너 책임경영 체제가 필요하다는 명분이 그것이다. 이 회장은 그것을 일깨우는 내용으로 첫마디를 했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명분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해선 안 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야 하는 것이다.

 

1. 거창하지 않은 게 좋다. 누구나 명분하면 비장함을 떠올린다. 왠지 결연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런 명분은 허울 좋은 수사로 들리기 십상이다. 손에 잡히고 피부에 와 닿는 것이어야 한다.

 

2.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선한 뜻을 입증할 수 있는 팩트(fact)’가 있어야 한다. 수치나 사례가 많고 구체적일수록 설득력이 높아진다.

 

3. 공익에 가까울수록 좋다. 사익에 가까우면 반감을 산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면 명분이 약한 것이다.

 

4.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현실을 도외시해선 곤란하다. 실질과 맥이 닿아야 한다. 그래야 공허하지 않고, 실리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5. 진심으로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뻔뻔한 회장이라도 얼토당토않은 것을 갖다 붙이면 낯 뜨거운 법이다. 그러므로 밖에 내걸기에 앞서 자기 안에서 설득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겉으로만 내세우는 명목과는 다르다. 명분을 만들 일이 있거든 회장이나 사장이 평소 강조하는 말, 실제로 행동한 것에서 찾아보자.

 

사업은 결코 고상한 일이 아니다. 돈 놓고 돈 먹기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실리가 아닌 명분이 필요하다. 사업의 본질을 감추고 포장하고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명분을 잘 만드는 게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다.

 

 

회사에서 비판 잘해 영웅되는 방법

양날의 칼인 '비판'은 트로이 목마를 타고

      

회장이 말했다.

"강 상무는 야당 역할만 잘 하면 되네. 내 주변엔 죄다 여당밖에 없어. 그게 문제야."

적어도 그 순간 회장 말은 진심이었다. 결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강 상무의 비판 수위(水位)였다. 야당 역할에 지나치게 충실한 게 화를 불렀다. 회장은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늘 먹는 음식은 식상하기 때문이다. 가끔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다. 더구나 그 음식이 몸에도 좋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철학자 포퍼(Karl Popper)"인간의 인식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항상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오류 가능성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회장 생각도 다르지 않다. 사리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지시나 결정은 반드시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안다. 독선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을 피하기 위해 비판을 구한다.

 

비판을 허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회장은 민주적인 리더, 관대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고 싶다. 성역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 Maslow)가 말한 5단계 욕구 이론의 네 번째 단계다. 타인에게 존경받고 싶어 하는 욕구 말이다.

 

경영은 정치와 다르다. 굳이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임직원이 반대해도 회장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얘기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비판을 감내한다. 기업에서 비판이 설자리는 바로 이 지점이다. 잘만 하면 회장도 만족시키고 임직원들로부터도 '용감한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만히 보면 큰 코 다친다. 비판은 위험하다. 약이 몸에 좋은지는 한참 두고 봐야 안다. 당장에는 입에 쓴 법이다. 더욱이 이 세상 모든 회장들은 태생적으로 '지적질'을 싫어한다. 그게 본능이다. 그래서 비판은 모험이다먼저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깨어있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는 안 된다. 권위에 맹종하지 않아야 한다. 통념을 거부하고 매사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라고 물어야 한다. 까칠해야 하는 것이다. 매끈하면 걸리는 생각이 없다.

 

비판적 사고 역량이 필요하다. 주어진 조건과 결과의 인과관계를 체계적으로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옳거나 그르다고 얘기할 때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용기도 요구된다. 정을 맞더라도 모난 돌이 되겠다는, 불편함과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삼성 내부에서 편법상속이나 무노조 경영의 문제점에 관해 비판하는 소리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삼성만 탓할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부당하고 불의한 권위에 도전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배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법만 배워왔다.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의문을 갖지 못하도록 교육받은 영향이 없지 않다.

 

그러면 덜 위험하게 비판하는, 말하기와 글쓰기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타당해야 한다. 비판은 손해 보는 쪽과 이익 보는 쪽을 만든다. 그러므로 합리적 근거로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균형 잡힌 시각도 필요하다.

 

둘째, 통렬해야 한다. 기왕하려거든 날이 서고 신랄해야 한다.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독해야 한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비쳐지면 실패한다. 오랜 고심의 결과로 비쳐져야 하고, 실제로 그래야 한다.

 

셋째, 대안을 제시하면 좋다. 총론보다 구체적 각론이면 더 좋다. 결과적으로 생산적인 비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반대하는 것도 대안이다.

 

넷째, 좋은 평가도 비판이다. 세 가지 정도 부정적인 비판을 하면 한 가지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세 번 정도 깎아내렸으면 한 번은 추켜세우는 게 좋다. 그래야 비판이 먹힌다.

 

다섯째, 타이밍이 중요하다. 지나고 나서 하는 비판은 뒷북, 푸념이 된다. 식은 피자,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다. 때 이른 비판 역시 호응을 얻지 못한다. 풋과일은 떫기만 할뿐이다. 찔끔찔끔 질질 흘려서도 안 된다. 해야 할 말은 쌓아뒀다 몰아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덜이'로 낙인찍힌다.

 

여섯째, 자신부터 철저히 돌아봐야 한다. 혹여 비판으로 이득 보는 건 없는지, 불이익 면에서 자신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비판할 자격을 얻는다.

 

회장을 비판하는 데는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1. 예의를 지켜라. 그게 기본이다. 남들이 박수 친다고 기고만장하면 안 된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절도를 지키고 침묵하는 게 좋다.

 

2. 말하라고 할 때 해라. 말하라고 할 때에도 여럿이 함께 있는 장소는 피해야 한다. 튀기위해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면 죽음이다. 당신은 투사가 아니다.

 

3. 떨지 마라. 어차피 도전이다. 떠는 순간 그 도전은 실패다.

 

4.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하라. 이성적 접근은 실패한다. 잘못하면 '비평'하는 훈수꾼으로 비쳐진다. 무한한 애정을 담은 고언, 회장과 같은 방향을 보는 비판으로 느껴져야 한다.

 

5. 호불호를 말하지 마라. 회사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시시비비를 말해야 한다.

 

6. 추측은 금물이다. 근거나 논리가 있어야 한다. 회장의 역질문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차라리 조용히 있어라.

 

7. 역린은 건드리지 마라. 누구에게나 절대 언급해선 안 될 대목이 하나씩은 있다.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나서선 안 된다.

 

8. 가급적 과거는 들추지 마라. 미래에 초점을 맞추기도 바쁘다.

 

9. 고칠 수 없는 것은 언급하지 마라. 책잡는 것밖엔 안 되며, 회장의 사기만 꺾을 뿐이다.

 

10. 두괄식으로 말하라. 첫마디에 승부를 걸어 성공하지 못하면 마무리를 못할 수도 있다.

 

11. 몰아붙이지 마라. 비판과 칭송 비율을 8:2로 하고, 칭송 2를 맨 앞과 끝에 하나씩 배치해야 한다.

 

12. 회장이 천정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쳐라. 아예 입에 재갈이 물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트로이 목마가 되는 게 좋다.

 

겉은 회장과 회사를 향한 충정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아니 실제로 충성과 애사심의 발로에서 비판해야 한다. 회장 역시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만이 목마 안에 감춰둔 비판의 칼로 회사와 회장을 바른 길로 이끌고 함께 성공할 수 있다.

 

 
 
회장님 전상서 "위험을 무릅쓰고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회장님께 고언하는 소통에 관한 오해와 진실 

 

화는 좀 가라앉으셨는지요.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희 판단으로는 소통채널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회장님 말씀대로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댓글이나 달고 있고, 그 내용이 회사 정책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지요. 회장님께서 화내실 만합니다.

 

하지만 회장님, 온라인 소통채널을 당장 닫으라는 지시만은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그 하나는, 소통채널을 닫아도 불평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식자리 안주나 뒷담화로 옮겨갈 뿐입니다. 오히려 그 내용이 과장되고 증폭됩니다. 동의보감에서도 '불통(不通)하면 통()하고, ()하면 불통(不痛)한다'고 했습니다. 귀를 막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조직 안에서 흡수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들의 철없는 소리'를 반영하느냐고요? 그러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들어만 줘도 문제가 절반은 해결됩니다.

 

소통채널을 닫는 데 반대하는 다른 이유는, 회장님께서 손해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멀리 보면 소통채널 구축은 회장님과 조직을 위한 일입니다. 앞으로 조직이 더 커지면 회장님은 매체를 통해서 리더십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소통 인프라를 구축해 가야 합니다. 지금은 다소 소란스럽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할 통과의례입니다. 젊은 직원들의 혈기와 열정이라 생각하고 너그럽게 포용해주실 순 없나요?

 

존경하는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실행과 성과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말보다 실천, 결과로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회사 조직은 그래야 합니다. 기업이 무슨 이념이나 가치를 좇는 데도 아니고, 실적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회장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 자체인 시대입니다. '딴 짓'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이고, 말 잘하고 글 잘쓰는 직원이 일 잘하는 직원입니다. '주둥아리만 살아있는 직원'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직원이 인재입니다.

 

회장님도 아시죠?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더군요.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60%는 커뮤니케이션 잘못에서 비롯된다." 그렇습니다. 회사는 말과 글로 돌아갑니다. 회의, 보고, 지시, 기안, 제안서말과 글 아닌 게 없습니다. 이러한 말과 글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집니다. 결과가 다릅니다.

 

더욱이 지금은 개방과 공유, 융합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야 합니다. 만나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하고, 소통을 위해선 말하기와 글쓰기가 필수입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해야만 자기 것을 표현할 수 있고, 융합과 창조가 일어납니다.

 

말 나온 김에 외람되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회장님부터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하셔야 합니다. 말은 직원들 혼낼 때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런 말로 직원들의 마음을 정복할 수는 있겠지만, 감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에 떠는 것 같은 직원들의 눈동자에 속지 마십시오. 예의상 그러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전혀 겁내지 않습니다. 또 그러신다며 콧방귀 뀌고 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면 기획실이나 홍보실에서 써주는 글들, 그대로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원들은 다 압니다. 알 뿐만 아니라, 그런 회장님을 무얼 믿고 따르겠습니까? 말이 되건 안 되건 직접 쓰시고, 못 쓰시겠거든 말하는 자리 자체를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회장님 잘하시는 방법 있지 않습니까. 몇 명 모이는 밥자리도 좋고, 단 한 명의 직원에게라도 회장님의 마음을 담아 말씀해주세요. 몇 줄의 편지글을 써서 보내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편지를 받는 그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의 회장님 팬을 만들어 낼 테니까요.

 

소통, 참 어렵지요? 소통이 힘들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소통이 실제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소통은 경영 그 자체니까요. 餘不備禮.

 

 
 

머리를 끄덕였으니 움직일 것이라고요?

소통에 관한 회장님의 치명적인 착각

  

오늘 회의에서도 회장이 사장들을 엄청 깼다. 정교한 논리와 적절한 사례, 감성을 자극하는 고성과 육두문자, 그리고 현란한 제스처까지. 본인이 말하면서도 놀라는 눈치다. 내 안에 이런 생각들이 어디 숨어 있었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말빨이 붙는 거야. 흐뭇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 사장들도 열심히 받아 적는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 연발이다.

    

과연 사장들은 회장의 말에 감복했을까. 머리를 끄덕이고 감동 어린 눈동자로 쳐다봤으니 공감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반감만 쌓였다. 오늘 또 한 번의 푸닥거리를 무사히 넘겼다고 안도하는 정도랄까? 회장이 직원들의 표정을 지배할 수는 있지만 생각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혹여 생각을 지배했다 하더라도 마음까지 지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승복이 가능하다. 요즘 유행하는 갑을 관계로 말하자면 이렇다. 의사 결정이나 통상의 업무 처리에서는 회장이 이고, 직원이 이다. 그러나 말과 글을 통해 직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직원이 이다. 회장은 철저히 이다. 회장의 말에 설득 당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권은 듣는 사람에게 있으니까.

    

회장은 왜 말을 하고 글을 쓰는가? 직원들을 감동시키려고? 논쟁에서 이기려고? 아니다.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움직이려고?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실행하게 하는 것, 이것이 회장이 말을 하고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다런던의 애덤 스미스 연구소장 매슨 피리(Madsen Pirie)이 쓴 미시정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상(ideology)에서 이겼다고 사건(event)까지 이기는 것은 아니다.’ 경영은 사건이다. 사상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직원들은 같잖은 상대가 아니다. 굴복의 대상도 아니다. 대화의 상대이다. 항복을 기대해선 안 된다. 설사 항복을 받은들 너덜너덜해지고 의기소침한 직원을 어디에 쓸 것인가.

 

둘째, 나도 설득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설득당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이자 진정한 용기이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설득당하지 않고, 상대방만 설득하겠다는 것은 아집이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을 것이라는 판단을 깔고 얘기해서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최대한 설득당해 봐야겠다, 나도 좀 직원들에게 혼나보자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 신뢰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평소 존경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상사가 아무리 지당하신 말씀으로 설득을 한들 그것이 귀에 들어오든가. 속만 부글부글 끓지 않든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설득을 위해서는 에토스(Ethos, 인간적 신뢰), 파토스(Pathos, 정서적 호소), 로고스(Logos, 논리적 설명)가 필요한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다.’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내 맘 같지 않다. 상사이기 때문에 같은 척 할뿐이다. 결국 평소에 언행일치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설득의 기술이란 없다

 

한 사람이 깊고 어두운 동굴 안에 갇혀 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깜깜한 벽만 바라볼 수 있다. 등 뒤에 켜진 촛불은 벽에 자신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그림자가 그림자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것이 실제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회사라는 조직, 특히 그 안에서 최고 위치에 있는 회장에게 회사는 깊고 캄캄한 동굴과도 같다. 외롭고 고독하다. 사방의 벽에 갇혀 있는 존재다. 그나마 주변 몇몇 사람의 입을 통해 자신을 본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자신은 자신이 아니다.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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