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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 ⑦

  • 2016.11.28(월) 17:16

말이냐, 글이냐
공자와 정조의 공통점은?
소통이 중요해진 3가지 이유
단합대회 마지막 날에 맛보는 소통의 극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진 게 도화선이 됐다. 대통령 연설문이 중요한 것은 연설문의 내용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토씨 하나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대통령 연설문 쓰기의 엄중함을 알려준 책 `대통령의 글쓰기`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2014년 2월에 펴냈다.

 

저자는 같은 해 12월 '회장님의 글쓰기'도 발간했는데, 이에 앞서 비즈니스워치에 40회(2014년 7월~9월)에 걸쳐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를 연재했다.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는 '회장님의 글쓰기'의 초본인 셈이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 2년 전에 게재했던 원고를 10회 분량으로 편집해 다시 싣는다. [편집자]  

  

 
 

말이냐, 글이냐  

만능 엔터테이너 회장이 되려면

 

볼테르는 '말하는 것처럼 쓰라'고 했다. 쓰인 것처럼 쓰지 마라, 자연스럽게 쓰라는 뜻일 게다. 하지만 말을 글로 옮기 듯이 쓰라는 뜻이면 틀렸다. 말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소위 행간이 비어 있다.

회장이 내가 다 불러줬는데 왜 이렇게 썼어? 받아 적는 것도 못해!”

다 안 불러줬다. 회장 머릿속에는 있지만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있는 내용과 실제로 말한 내용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받아쓴 사람이 불성실하게 작성했다고 오해한다. 회장이 말한 그대로 녹음한 것을 들려줄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다.

애초에 말이 있었다. 글은 말에서 나왔다. 말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글이다. 말이 입말이라면 글은 글말일 뿐 글도 말이다. 말을 보관하고 멀리 보내기 위해 고안한 것이 글이다. 그러나 말하느니만 못한 결점도 많다.

메러비안 법칙이란 게 있다. 40년 전,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메러비언은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우리가 대화할 때 말의 내용을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비중은 고작 7%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93%는 비언어적 요소, 즉 말투와 억양 등이 38%를 담당하고, 표정, 몸짓, 자세가 55%를 전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받아 적은 내용만 가지고 글을 쓰려면 93%가 빈칸으로 남는다. 말투와 억양, 표정, 몸짓은 받아 적지 못하니까 말이다.

말과 글은 장단점이 있다.

먼저, 말은 어떤가. 전달력이 글보다 낫다. 현장감이 있다. 그야말로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 절박한 표정 하나로 백 마디 말을 대신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불러 모아놓고 얘기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그러나 남지 않는다. 멀리 있는 사람에겐 전하기 어렵다. 청중 수에 제한도 있다. 전 직원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얘기하는 게 쉬운 일인가. 말을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일단 써야 한다. 후대에까지 기록으로 남기지도 못한다

이에 반해, 글은 동시에 어디든 갈 수 있다. 대대손손 남는다. 차분히 생각하며 읽게 한다. 스스로 곱씹어보고 생각하는 틈을 주는 데에는 글이 최고다. 하지만 글 자체만으로 모든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 물론 글에도 표정과 느낌을 담을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단점은 사람들이 글 읽는 것을 귀찮아 한다는 점이다

글과 말 중에 선택하면 될 일이다. 자신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말에 강한 사람이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잘하고, 하고 싶은 방식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할 수 있는 역량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나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회장도 글이 필요한 때가 있다. 글로 정제해서 내보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생긴다. 여러 번 그런 상황을 접해 봤다. 글을 쓸 수 있으면 그런 때에 회장은 말하지 않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글에 자신 있는 사람도 글만으로는 안 된다. 직접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걸 피해서는 안 된다. 피하지 않으려면 평소 연습해야 한다. 말하기도 기술이다. 내용은 물론 몸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스처와 표정도 연습하면 얼마든지 좋아진다.

, 3의 방법이 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시킬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짬짜면이 있듯이, 동영상이란 게 있다.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전달력과 지속력, 파급력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모두 누릴 수 있다이제 회장은 카메라 앞에도 기꺼이 서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

 

 

공자와 정조의 공통점은?

글쓰기가 회사 품격을 좌우한다

 

글쓰기에 관한 공자 말씀이다.

 

내용이 되는 바탕()이 꾸미는 형식()보다 앞서면 거칠어진다(質勝文則野, 질승문즉야). 아무리 바탕이 훌륭해도 잘 꾸미지 않으면 조잡해진다. 즉 꾸밀 필요도 있다는 말씀이다. 또한 형식()이 바탕()보다 앞서면 공허해진다(文勝質則史, 문승질즉사). 빈약한 바탕을 꾸미기만 하면 겉만 번지르르해진다. 즉 내실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결국, 촌스럽지도 겉만 화사하지도 않아야 하며, 그러려면 바탕과 형식, 내용과 꾸밈이 조화를 이뤄야(文質彬彬, 문질빈빈) 한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인품이란 게 있듯이, 조직이나 집단에도 품격이란 게 있다. 사람의 인격이 배운 것, 가진 것과 무관하듯이, 조직의 품격 또한 규모나 부의 크기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렇다면 집단이나 조직의 수준은 무엇으로 평가하며, 무엇을 보면 알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 가보면 알 수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구성원들의 표정이나 옷차림새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조직의 품격을 보여주는 징표는 많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 수준이 조직 수준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이데거의 말에 빗대어 얘기하면 언어가 존재의 집이듯이 글은 회사의 얼굴이다. 회사에서 쓰는 글이 곧 그 회사다. 글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고,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이 회사니까 그렇다. 그러므로 회사의 깊이는 그 회사가 쓰는 글의 깊이로 나타난다. 회사 수준은 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복도나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공지 문안, 사내 보고서나 이메일, 사보나 대외 뉴스레터, 그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 매뉴얼, 브로슈어 등등에 나타나는 글의 수준을 보면 그 회사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어느 회사의 신문 광고 문구를 보고 이 회사는 공연히 돈까지 쓰면서 자기 밑천 드러낸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의도적으로 광고 콘셉트를 그리 잡지도 않았는데, 참을 수 없이 촌스러운 광고 문안을 보면서 말이다.

 

어느 영업직원이 보낸 제품 홍보 이메일을 받고, 아예 그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 경험은 없는가? 앞뒤 문맥은 물론 오자투성이 메일 내용 때문에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교정에 한 번 가보라. 캠퍼스 곳곳에 있는 게시판을 보면 그 대학의 수준이 대개 보인다.

 

, 속도, 효율을 숭상하는 시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깟 글쯤이야 어찌 쓰든 대수냐, 통하기만 하면 되지. 글을 다듬는 데 들일 시간이 있으면 돈 되는 일에 써라. 실체가 중요하지 겉치레는 필요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 정조대왕의 일화를 전해주고 싶다. 수원 화성을 축조할 당시다. 성의 외관을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이 벌어졌다.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성은 튼튼하게만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이에 대해 정조대왕은 아름다운 것이 강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성곽 문화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 화성이 만들어졌다 


형식은 내용의 종속물이 아니다.
회사 홈페이지를 생각해보라. 외양이 조잡하면 내용은 들어가 볼 생각조차 안하게 된다. 설사 들어갔다 해도 써놓은 글이 시원찮으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내부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내용적으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내에서 접하는 글들이 형편없으면 의식이 그 수준에 맞춰진다. 그 수준만큼 말하고 행동한다. 바야흐로 문질빈빈(文質彬彬)해야 성공하는 시대다.

 

 

소통이 중요해진 3가지 이유

직장에서 행복하려면

 

소통, 소통, 모두가 소통을 말한다. 소통이 중요해졌다. 내 생각에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바야흐로 창조경제의 시대다.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해졌다. 과거 1970~80년 우리는 잘했다. 노동자들이 땀 흘려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잘했다. 1990~2000년대에는 기업인들도 잘했다. 선진 기업 쫓아가기에서 성공했다. 이제는 쫓을 대상이 없다. 뛰다보니 우리가 맨 앞줄에 서 있다.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앞서가기를 잘해야 한다.

 

선구자는 외롭다. 뭔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서로의 생각을 합해서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소통이 중요해졌다.

 

둘째, 연대가 필요하다. 과거 우리 기업은 경쟁의 장에서 성공해왔다. 경쟁에 관한 한 세계 1등으로 잘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는 기업인들의 열정과 노고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제 경쟁만 잘해서는 안 된다. 경쟁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 경쟁에서 뒤쳐진 집단과 함께 가지 않으면 더 이상 앞서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쟁과 함께 연대가 필요해진 것이다.

 

경쟁만 할 때에는 소통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면 됐다. 연대하려면 다르다. 옆도 보고 뒤도 돌아봐야 한다. 소통이 중요해졌다.

 

셋째, 설득을 위해 소통이 필요하다. 한때는 지시와 통제만으로도 기업이 잘 돌아갔다. 그러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바뀌었다. 일방적인 지시가 안 통하게 됐다. 타협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형식적이나마 대화와 타협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세대가 등장했다. 그들을 설득하려면 소통해야 한다. 요구되는 리더십도 변했다.

 

지시와 통제 시대에는 불도저형 리더십이 각광받았다. 두주불사에다 밀어붙이기만 잘하면 됐다. 90년대에 오니까 전략이란 말이 풍미했다. 기획이 필요하고 머리가 중요해졌다. 용장이 아니라 지장이 인정받았다. 이제는 덕장의 시대다.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하이터치 리더십을 요구한다.

 

소통은 직장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다.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소통이 되지 않으면 답답하다. 그런 회사는 공기부터 다르다. 숨이 턱턱 막힌다. 당연히 출근하기 싫다. 누군가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은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와 같은 질문이다. 그만큼 광범위하다. 효율과 성과를 좌우한다. 직원들의 행복 여부도 여기에 달렸다. 소통이 잘 되는 직장에는 휴일에도 나오고 싶다. 적어도 월요병은 없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 서 있다면 어떤가. 답답하다. 30분이 세 시간 같다. 그런데 누군가 몇 미터 전방 앞에 무슨 사고가 나서 지금 막히고 있고, 몇 분 후에 교통사고 처리가 완료되어 통행이 원활하게 될 것이라고 소상하게 알려주면 어떻겠는가? 같은 시간을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그런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축구경기 해설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선수들끼리 대화해야 합니다. 서로 말을 건네서 격려하고 발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소통이다.

 

직장은 언제나 꽉 막힌 고속도로와 같다. 치열한 경기가 벌어지는 운동장이다. 그럴수록 소통을 통해 뚫어줘야 한다. 힘을 북돋아줘야 한다. 소통만 잘해도 실패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단합대회 마지막 날에 맛보는 소통의 극치
소통 수준의 3단계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진리는 3단계를 거친다. 처음엔 조롱당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반대에 부딪치며, 결국은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소통도 그렇다. 처음 입안 단계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한다.’는 조롱을 받는다. 말장난 하지 말라며 비웃는다. 그러다가 실행 단계에 들어서면 여러 반대에 부닥친다. 소통을 위한 정보 공개를 거부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게 불편하다. 효율에 배치된다며 소통 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 대개 이 단계에서 회사는 소통을 접는다.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3단계에는 가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소통 수준에도 대략 3단계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소통 문제가 심각한 단계

 

회장이나 사장이 이 자리 저 자리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원, 대리들을 만나보면 그 내용을 모른다. 도리어 왜 얘기를 안 해주냐며 불만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서는 침묵이 감돈다. 술자리에서는 헐뜯기, 뒷담화가 성행한다. 유언비어도 돈다. 커뮤니케이션 통로 자체가 없거나 막혀 있는 경우다.

 

소통이 그럭저럭 되는 단계

 

윗선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대강은 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제 각각이다. 다시 말해, 같은 말을 해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이해한다. 그래서 각기 딴소리를 하고, 따로 논다. 커뮤니케이션 통로는 만들어져 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빈도가 낮거나 효과적으로 쓰지 않는 경우다.

 

소통이 화끈하게 되는 단계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보라. 회사가 단합대회에 가서 마지막 날 밤에 술 한 잔씩들 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우리 한번 잘 해보자고 으샤 으샤하는 풍경. 이 풍경 안에서는 서로의 대한 배려가 넘쳐난다. 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자신감과 무언가를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아마도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이 술 먹지 않은 맨 정신에, 콘도가 아닌 사무실에서, 일 년에 한두 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소통의 최고 단계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런 조직은 어떻게 해야 만들어지는가. 또 그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기본에 충실한 조직이다. 상식이 지켜지는 조직이다. 이런 조직은 약속을 지킨다. 예의를 지킨다. 법과 절차를 지킨다. 언행이 일치한다. 이것이 소통의 토대다.

 

위임하는 조직이다. 소외를 최소화해야 한다. 최대한 참여시켜야 한다.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한다. 조직생활에서 인정은 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다. 의욕이 생긴다. 조직에 생기가 돈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조직이다.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공개는 보안의 적이 아니다. 공개할수록 보안은 더 잘 지켜진다. 누구나 정보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에 대한 배경설명도 충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석이 제각각이다. 정보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토론하다는 의미의 ‘discuss’ 어원은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접두사 ‘dis~’와 원망을 의미하는 단어 ‘cuss’가 합해진 말이다.

 

배려하는 조직이다. 배려는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따뜻한 시선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다. 나아가, 일과 시간의 공유다. 내가 이만큼 남을 위해서 하면 남도 나에게 뭔가를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돕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길게 얘기했지만 한 마디로 하면 ‘신뢰’다. 신뢰가 있는 조직을 만드는 게 소통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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