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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강원국의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 ⑤

  • 2016.11.28(월) 07:51

회장은 왜 매주 회의를 할까?
갈등을 허(許)하라
'글쓰기 참모'의 역할과 책무
글쓰기에 관한 5가지 오해와 진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에 손을 댄 사실이 알려진 게 도화선이 됐다. 대통령 연설문이 중요한 것은, 연설문의 내용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연설문 토씨 하나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연설문 쓰기의 엄중함을 알려준 책 `대통령의 글쓰기`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은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2014년 2월에 펴냈다.   


저자는 같은 해 12월 `회장님의 글쓰기`도 발간했는데, 이에 앞서 비즈니스워치에 40회(2014년 7월~9월)에 걸쳐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를 연재했다. `직장인의 말하기·글쓰기`는 `회장님의 글쓰기`의 초본인 셈이다.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  2년 전에 게재했던 원고를 10회 분량으로 편집해 다시 싣는다. [편집자]

 

 

회장은 왜 매주 회의를 할까?
700번은 '반복'해야..어떤 효과 있길래

 

회장은 매주 계열사를 순회하며 회의를 주재한다. 매주 하다 보니 지난주에 한 말을 이번 주에 다시 하게 된다. 한 주라는 짧은 기간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하는 본인도 지겹고 임원들도 짜증난다. 그럼에도 회장은 주간회의를 고집한다. 반복의 효과를 기대해서다.

 

반복을 꺼리는 회장도 있다. 직원들이 한 얘기 또 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고, 자기 자신도 잔소리꾼이 되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같은 말의 반복이 콘텐츠의 빈곤으로 비쳐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설마 회장이 말했는데, 잘 알아들었겠지 하는 믿음도 있다.

 

착각이다. 직원들은 회장 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회장과 눈높이도 다르다. 한 마디로 코드가 안 맞는다. 그래서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반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반복해도 된다. 자기는 여러 번 말하지만, 듣는 사람은 처음이다.

 

잭 웰치가 이런 말을 했다.

 

“10번을 얘기하지 않으면 한 번도 얘기하지 않은 것과 같다. 핵심가치를 직원들 마음속에 새기려면 700번은 반복해야 한다.”

 

그렇다. 반복해야 한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야 한다. 리더라면 직원들이 싫어할지라도 반복해서 말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반복의 마력을 믿고 매번 처음 말하는 것처럼 뻔뻔하게 말하자. 반복, 반복, 또 반복하자. 

 

반복은 오늘 얘기하고, 내일 또 얘기하는 반복도 있지만, 같은 자리에서 단 5분을 얘기해도 세 번 정도는 반복해줘야 전달이 분명하게 된다. 반복은 각인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반복은 믿게 만드는 효과도 크다.


사람들은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게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맥스웰하우스가 1915년에 만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어요.’라는 광고 카피를 백 년 동안 고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복은 자기 최면효과를 가져다 준다. 한번 말한 것은 단순한 희망이지만, 반복해서 말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한 말에 책임감을 느낀다. 결국 말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추동하게 된다. 거짓말도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그것이 실제라고 믿어 버리는 ‘리플리 증후군’도 있지 않는가.

 

반복해야 할 것은 말뿐이 아니다. 한때 모신 회장의 ‘도사론’이란 게 있다. 하루에 1Cm씩 높여가며 뛰어내리는 훈련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누구나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장은 있지만 일리가 있는 얘기다. 반복해서 훈련하다 보면 머리가 아닌 몸이 체득하게 된다.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습관의 반복은 기적도 만들어낸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인공도 대부분 반복의 달인이다.

 

기업 전략에서도 반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최고의 전략은 무엇인가』란 책에서 크리스 주크와 제임스 앨런은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 전략을 구사하려고 하기보다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을 반복해서 재현하라.”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는 '반복성(Repeatability)'이다. 반복성이 기업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도 같은 원리를 차용하고 있다. 각 코너마다 포맷은 매주 똑같다. 그 안에 사례가 바뀔 뿐이다. 성공한 기본 틀을 반복해서 계속 쓰는 것이다.

 

글쓰기도 반복에서 나온다. 반복해서 읽고 반복해서 쓰는 수밖에 없다. 서당개가 풍월을 읊게 되는 것도 반복의 힘이다.

 

 

갈등을 허(許)하라
글로써 갈등을 드러내고 치유해야

 

나 같이 나이 50을 넘긴 세대들은 ‘갈등’이란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남과 북, 경상도와 전라도,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대립이 첨예했던 시기를 살아온 세대여서 그런지 모르겠다. 갈등은 나쁜 것,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갈등이 없는 상태를 좋아한다. 갈등이 없는 상태, 우리는 그것을 화목이라고도 말하고, 일사불란한 상태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갈등을 피하려는 경향은 말하기와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말과 글로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말과 글의 억압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오히려 말과 글을 통해 갈등을 드러내고 치유해야 한다.

 

갈등에는 좋은 갈등과 나쁜 갈등이 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냥 감정적으로 싫어서 생긴 갈등,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거나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어 생긴 갈등, 이런 것들은 나쁜 갈등일 것이다. 이 경우는 대개 배척과 타도, 분열, 대립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며, 조직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전한 경쟁과 견제에서 비롯되는 좋은 갈등도 있다. 정도가 지나쳐 나쁜 갈등으로 변질되는 것만 주의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오히려 갈등을 두려워하는 데서 비롯되는 조직 내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화목을 빙자(?)해서 서로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은 문제다.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가급적이면 갈등 상황을 안 만들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문제점이 보여도 지적을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하지만, 안으로는 곪아가고 있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조직 전반에 침묵현상이 벌어진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데도 누군가 나서기 전까지는 각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그것을 ‘침묵의 나선형’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회사 조직이 조용~한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조용한 조직일수록 미래보다는 과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옛날에는 이랬는데... 요즘은...’ 이러면서 말이다. 현재의 갈등을 복고주의로 푸는 식이다.

 

둘째, 더 큰 문제는 집단사고(思考)를 가져오는 경우다.

1986년 챌린저호 폭발사고가 나기 전, 발사를 연기해야 하는 여러 부정적 신호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사 성공에 대한 집단적인 열망에 묻혀 그런 신호들이 무시되고 발사가 강행되었다. 그 결과는 참사였다.

 

집단사고는 ‘동네축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몰려다니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낼 엄두조차 못 낸다. ‘경비절감’이 회사 이슈가 되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것의 부작용은 없는지... No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다른 의견 내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응집력이라고 착각한다. 다른 소리를 하면 단합을 해치는 사람, 애사심이 없는 사람,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찍히기도 한다. 한 마디로, 왕따 되기 싫으면 묻혀가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된다. 특히 ‘우리’를 강조하고, 혈연, 지연, 학연 등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조직 풍토에서는 더 그렇다. 그 폐해는 심각한다. 집단사고가 횡행하는 조직에서는 책임감도 필요 없고, 창의성은 더더구나 발을 붙이지 못하니까.

 

셋째, 결과적으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혁신은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변화하려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런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의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논쟁해서 발전적인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있는 것을 없는 척 눈 감는 게 능사일 수 없다. 흙탕물은 휘저어야 실체가 드러난다. 시간이 되면 스스로 가라앉아 깨끗해진다. 침묵의 장막을 거둬라. 갈등을 허하라. 말하기와 글쓰기 장을 제공하라. 갈등 회피가 최선이라는 가짜 프레임부터 깨자. 말과 글이 자유롭게 마음껏 뛰노는 그곳에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있다.

 

 

'글쓰기 참모'의 역할과 책무
연예인 매니저라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글쓰기 강연이 끝나면 상담을 신청하는 분이 간혹 있다. 사장이나 회장의 연설문, 기고문을 작성하는 일을 맡고 있는 분이다. 중압감이 말할 수 없이 크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어떻게 하면 ‘윗분’ 비위를 맞출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의 일 같지 않다. 글쓰기 참모가 갖추고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첫째, 회장이 한 말을 회장보다 더 잘 정리하고 있어야 한다.
말은 회장이 하지만 회장은 자신이 한 말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도 않는다. 그래서 참모가 필요하다. 회장의 말을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해서 지속적으로 축적해가야 한다. 일종의 어록집 같은 거다.

 

어록집은 용도가 다양하다. ▲회장 연설문이나 기고문을 작성할 때 수시로 찾아보고 기초자료로 쓴다. ▲회장이 일관성 있게 발언할 수 있도록 유사한 행사나 회의가 있을 때 참고자료로 보고한다. ▲회사 안에서 의사결정의 판단자료로 쓸 수 있도록 다른 부서에 제공한다. ▲회장이 말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을 때 반박자료로 활용한다. ▲사사나 회장 저서를 저술할 때 귀중한 자료가 된다.

 

둘째, 회장의 말과 관련한 조언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회장의 발언과 그 반응, 수정 또는 추가했으면 하는 내용 등을 수시로 보고, 제안한다. ▲문제되는 내용을 짚고, 대안을 제시한다. ▲회장 발언에 대한 언론이나 사내여론 반응을 파악해 보고한다. ▲발언 내용에 보완했으면 하는 사례나 통계자료를 제공한다. ▲회장이 공사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얘깃거리를 주기적으로 제안한다. ▲핵심 오피니언 리더의 발언을 취합하여 보고한다.

 

이를 위해 회장 발언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물론, 신경을 곤두세우고 회장의 말과 글 속에 빠져 살아야 한다. 주제넘은 일이 아닐까? ‘지적질’하다가 한 소리 듣는 것 아니야? 기껏 제안했는데 채택되지 않으면 어쩌지? 염려할 필요 없다. 채택하지 않아도 회장 스스로 생각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과감하게 지적하고 기탄없이 제안할수록 회장은 좋아한다.

 

셋째, 회장의 이미지 메이커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미지는 회장이 하는 일과 말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가운데 일은 어찌할 수 없다. 회장 스스로 감당할 몫이다. 하지만 말은 글쓰기 참모의 역할이 크다.

 

우선, 만들어가야 할 목표를 세워야 한다. 단기적, 장기적으로 회장을 어떤 사람으로 비쳐지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연설문이나 기고문을 작성할 때마다 목적의식을 갖고 여러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영인’이란 이미지 목표를 세웠다면 ▲일 년 중 해외 체류 기간 ▲세계경제 동향에 관한 전문적 식견 ▲회장 기업의 해외 활약상과 평가 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홍보 파트와 협력해서 해외 유수 언론과의 인터뷰나 기고를 적극 추진한다.

 

넷째, 회장에게 용기와 믿음을 줘야 한다.
회장은 잘하고 싶다.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내심 초조하다. 또 아래 직원들이 자신을 잘 보좌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의문을 갖는다.


회장을 안심시켜라. 지금 잘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줌으로써 자신감을 갖도록 해라. 회장은 지금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믿음을 줘라. 보다 나은 회장의 말과 글을 위해 불철주야 준비하고 꼼꼼히 찾아봤다,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회장이 우려하는 것도 잘 챙기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좋은 것은 없는지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혹시라도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결과적으로 서로 피곤해진다.

 

글쓰기에 관한 5가지 오해와 진실
글은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글로 행세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글씨로도 한몫 보던 때가 있었다. 군대에서 차트병이란 걸 했다. 기껏해야 상장과 휴가증을 붓으로 쓰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구타 없는 행정반에서 호의호식(?)했다. 

 

하물며 글을 쓰는 일이야 말해 뭣하리오. 회장이나 사장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특별대우를 받는다. 글을 대신 써주는 일은 사적인 서비스로 치부됐다. 다른 일에서는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글을 써주는 데 대해서는 고마워한다. 

 

잠깐 모셨던 회장 한 분은 글에 심혈을 기울였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교육을 수차례 했다. 회장 스피치라이터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기도 했다. 글쓰기에 과도하게 공을 들이는 회장을 사장들이 만류한 적도 있다. 그때 회장이 그랬다. 글은 내 자존심이라고. 그 이후 회장의 글쓰기는 성역이 됐다. 아무도 가타부타 못했을 뿐 아니라, 모두가 회장 연설문을 한 번씩은 썼다. 글을 회장 맘에 쏙 들게 쓰는 게 눈에 띄는 가장 빠른 길이 되었다.

 

글은 글쟁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실은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글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에 글쓰기를 주저하고 있는 사이, 글 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그 밥상을 독식하고 있다. 글에 관한 금기의 성채를 쌓아놓고서 말이다. 글재주는 타고나는 것이다. 글쓰기는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니 아무나 넘보지 말라고 하면서.

 

이제 성채를 허무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부터 풀어보자.

 

첫째, 글은 재능이 아니라 훈련으로 잘 쓸 수 있다.
모든 작가들의 글을 보라. 초기작품은 형편없다. 연습과 훈련으로 잘 쓰게 된 것이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고쳐 썼고,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를 35년간 퇴고했다. 저명한 칼럼리스트 진 파울러가 그랬다. ‘글쓰기는 쉽다. 백지를 응시하고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이마에 핏방울이 맺힐 때까지’.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다고? 노력이 없었겠지. 글쓰기에 있어 유일한 재능은 피나는 노력이다.

 

둘째, 글쓰기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다.
작가가 되려는 건 아니지 않는가. 문학이 아니라 실용 글을 쓰려는 것이지 않는가. 그러니 글로써 ‘감동’ 줄 필요 없다. 그저 목적에 맞게 쓰면 된다. 명문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한다. 글의 ‘효용’만 있으면 된다. ‘작품’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제품은 매뉴얼대로 만들 수 있다. 글도 매뉴얼로 만들 수 있다.

 

셋째, 글쓰기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지 마라. 그게 형식이다. 멋있게 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찾아라. 글에서 중요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당신 안에 분명히 있다. 그것부터 찾아라.

 

넷째, 글쓰기는 창조가 아니라 모방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영감? 직관?’ 그런 것 믿지 마시라. 기존에 있는 것을 비틀거나, 둘을 합치면 새로운 것이 나온다. ‘창조’라는 말에 주눅 들지 마시라. 대신, 자료를 많이 찾아라. 쓰려고 하는 답이 분명 어디엔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찾아라. 실제로 답은 어딘가 있다. 열심히 찾아보지 않았을 뿐.

 

다섯째, 글쓰기는 정신노동이 아니라 육체노동이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 손으로 사유하는 행위이다. 시간을 들여야 한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야 써지는 게 글이다. 양이 질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일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가? 그럼 써라. 하루 10줄이라도 꾸준히 써라. 

 

미국 사람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은 싱클레어 루이스란 작가가 있다. 그가 하버드대 초청으로 글쓰기 특강을 갔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글을 잘 쓰고 싶습니까?” 학생들이 “네”라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럼 왜 여기 앉아 있습니까? 집에 가서 글을 써야죠.” 그것으로 특강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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