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2.0% 수준에서 유지해 통화정책을 운영하기로 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결을 예상했던 만큼 시장의 관심은 현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 내외 변수에 대한 대응, 이들이 금리결정에 미칠 영향 등으로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 이슈로 떠오른 엔화 약세와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 대외변수의 향방과 우리의 대응 방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금통위 회의후 기자간담회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이들 변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답 내용을 토대로 한은 총재의 생각과 향후 금리결정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본다.
▲ 지난 5일 오후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환율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원·엔 환율은 이날 2008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100엔당 947.95원에 마감됐고 엔저 우려속에 코스피도 사흘째 하락했다. |
◇ 엔화 약세 : 원화의 동반 약세, 어디까지?
문) 정부에서 엔화와 원화가 같이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했다. 원화-엔화 동조화가 경제에 긍정적인가.
답) "10월에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를 하면서 엔화 약세가 급속히 진행됐다. 지난 8월부터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일본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됐다. 일본 기업들이 이를 바탕으로 단가 인하에 나서면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은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일본과 경합이 큰 자동차·기계·철강업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을 가능성이 있다.
원화 환율이 100% 엔화 환율과 동조화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일본과의 수출 가격 경쟁력만 따져보면, 여기선 한국산의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 상당한 약세를 보여 다른 나라와의 가격 경쟁력은 불리해지지 않았다고 본다"
문) 엔화가 계속 가치가 하락한다면, 원화 약세를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나
답) "원화 약세는 일본 엔화가 어디까지 약세를 보일 것인지로 판단해야 한다. 엔화의 과도한 약세는 물가상승률이나 수입기업에게 비용부담을 안길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완화 조치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달 31일 일본은행의 추가 완화 결정을 보면 5대 4로 갈렸다. 추가 완화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변수다.
원화 약세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다는 식의 선을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환율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금리 외에도 대단히 많다. 주요국의 경기 상황, 국제 자금 흐름 등이 더 큰 영향을 준다. 금리로 환율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굳이 따지면 환율 수준이 아니고, 환율 급변이 가져올 경기 영향을 보고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지 환율 수준을 타게팅(targeting)하고 있지 않다"
▲ 최근 엔화약세가 심화된 배경으로는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소비세 인상 연기론 등이 꼽힌다. 아베노믹스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생각만큼 살아나지 않자 돈을 더 풀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소비세 인상 카드는 도로 집어 넣으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외환당국은 '엔화-원화 동조화'를 대비책으로 꺼내들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원화 가치도 떨어뜨려서 달러화를 기준으로 하는 원·엔 재정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한은 총재는 일단 엔화 약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봤다. "엔화의 과도한 약세는 물가상승률이나 수입기업에게 비용부담을 안길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완화 조치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엔화약세로 인한 부정적 효과는 크다고 판단했다. 엔화 약세로 인해 국내 수출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일본과의 경쟁이 심한 기계·철강 업종은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 금리인하 요구가 커질 수 있다. 우리도 돈을 풀어 원화가치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은 총재는 "금리로 환율에 대응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엔화약세의 대응책으로 금리인하 카드를 쓰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굳이 따지면 환율 수준이 아니고, 환율 급변이 가져올 경기 영향을 보고 금리를 결정하는 것이지 환율 수준을 타게팅(targeting)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추가 금리인하 논의를 촉발시켰던 원·엔 환율 하락세는 최근 잠잠해졌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90원 후반대로 오르며 원화약세 속도가 엔저 속도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엔화약세의 부정적 여파가 커질 경우 한은이 내년 상반기중 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 미국 금리인상 : 우리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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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한국이 곧바로 따라서 올려야 하나.
답)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하면서도 상당기간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리 조정을 하더라도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예측 가능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렇게 이뤄진다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할 때 곧바로 따라가야 하는지는 미리 예단할 수가 없다. 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할 것이다"
▲ 미국의 금리인상은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요인이라는 점에서 당국과 시장이 예의주시하는 부분이다.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내리면서 미국발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는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화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를 말하는데, 당초 단기성 외화자금의 과도한 유입을 막기 위한 카드였지만 이를 선제적으로 손봐 유출을 막는 툴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한은 총재는 미국의 통화 정책이 아직 국내에 영향을 줄 만큼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미국이 양적완화 종료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있지만 질서정연하고 예측가능한 수순으로 이뤄진다면 우리도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시작되면 그때 대내외 여건을 판단해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외국인 자금이탈은 글로벌 시장 전체의 문제이고, 특히 신흥국에 미칠 충격파가 크다. 해외시장의 혼란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 부정적 요인이다. '그때 가서 보자'는 말은 지금으로서는 기존의 정책적 수단외에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력에 대해서는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는 성장, 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안정 리스크를 균형있게 고려해야 하며 (금리)방향을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 "가계부채가 많이 늘고 내외금리차가 축소됐으니 금융안정 리스크에 유의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