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사유로 인하여 생기는 감모(減耗)는 자연감모하여 정리할 수 있다" "이를 도시(圖示)하면 다음과 같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감모(減耗)는 줄어들거나 닳아 없어진다는 뜻이고, 도시(圖示)는 그림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불가피한 사유로 인하여 생기는 손실은 자연손실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처럼 어려운 한자어가 들어간 법률 용어를 알기 쉽도록 바꾸는 내용을 담은 법안 16개를 한꺼번에 발의했습니다.
'감모' '도시' 외에도 '개호(介護)'를 간병, '주류(駐留)'를 주둔, '개임(改任)'을 교체, '어로(漁撈)'를 고기잡이로 각각 바꾸는 법률 개정안도 냈습니다.
해방이후 만들어진 우리나라 법률은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이 수두룩합니다. 오랜 기간 법률 한글화 사업이 진행됐지만 여전히 '감모', '도시'와 같이 무늬만 한글이고 의미를 알기 어려운 단어가 많습니다.
국회에선 이러한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을 고치는 법안들이 매년 꾸준히 발의되는데요.
20대 국회에서 새로 바뀐 법률용어만 해도 ▲보장구(保障具)→장애인보조기구 ▲수진(受診)→진료이력 ▲요존국유림(要存國有林)→보전국유림 등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공문서에서 자주 쓰는 일본식 표현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당해(해당) ▲가도(임시도로) ▲잔임기간(남은기간) ▲계리(회계처리) ▲시달(통보) 입니다. 이런 표현들도 20대 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통해 고쳐졌습니다.
언론기사에도 습관적으로 쓰는 일본식 표현들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1회에 한하여 허용한다(한번만 허용한다) ▲허가를 함에 있어서(허가를 할 때)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운영에 필요한 사항은)과 같은 표현은 괄호안의 문장으로 바꿔도 의미전달에 전혀 문제없습니다.
이러한 문장이 들어간 법률도 20대 국회에서 고쳐졌습니다.
앞서 법제처는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검토' 사업을 통해 법률 용어를 쉽게 바꾸고 있는데요. 법제처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2006년부터 10년간 총 877건의 법률과 3211건의 하위법령에 들어있는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이 고쳐졌습니다.
다만 법제처가 심사하는 법안은 새롭게 발의되는 정부입법안에 한정돼 있어 이미 사용되고 있는 법률용어를 고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따라서 의원입법을 통해서도 많은 개정안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해당 개정안은 법률 내용을 손대지 않고 용어만 쉽게 풀어쓰는 것이어서 정당마다 의견이 다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혼동도 있겠네요. 국회 회기마다 법률안 처리 실적을 따질 때 단순 용어변경까지 구분하지 않고 포함한다면, 해당 회기의 법안 실적이 과장되지는 않을지 말입니다.
물론 어려운 용어를 쉽게 바꾸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 생활에 도움주는 내용을 꼼꼼하게 챙겨서 임기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심사하려는 노력도 잊지 말아줬으면 합니다.